저는 2006년 독서모임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습니다. 모임 친구들과 늘 논쟁을 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제가 사랑하는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와 실천, 행동을 가까이서 보며 자랐습니다. 이 친구가 태어난 지 10개월 되었을 즈음 아버지가 ‘8888 민주항쟁’으로 체포되셨어요. ‘8888 민주항쟁’은 1988년 8월 8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생들이 거리를 매웠고 그 결과 당시 정권의 수장이 물러났습니다. 이후 장인어른은 아내가 16살 되었을 때 풀려나셨습니다.
친구는 버마학생연합의 사무총장이에요. 버마학생연합은 버마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섰던, 버마의 역사에서 중요한 연합입니다. 2007년에는 물가 상승에 대항하며 샤프란 혁명에 참여했고 저희 둘 다 체포되어 3년 넘게 감옥에 있었어요.
2014년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교육법에 반대하며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를 앞두고 친구가 준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천여 명이 거리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며 외쳤습니다.
“우리는 민주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는 독재적 교육시스템에 반대한다!”
행진이 미얀마 수도 양곤에 이르렀을 때 경찰은 양곤 진입을 막아섰습니다. 곧 시위대를 에워쌌고, 그 자리에서 아내는 체포되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긴 했습니다. 이전에도 이 법에 대해 여러 차례 조율을 시도했지만, 정부는 우리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이번 시위의 결과가 안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친구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습니다. 시위에 나서면서 연락할 수 있는 휴대폰과 약간의 돈, 먹을 것과 약을 챙겼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저 또한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해온 이유로 수배 중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린 탓 나잉도 체포되었습니다)
결국 아내는 체포되었고, 아주 지난한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법원은 피고 47명을 한 명씩 심문하고 있는데, 아직 한 명도 제대로 심문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재판이 다 끝나는데 3년이 넘게 걸릴 것이고, 형 선고를 받기라도 하면 9년은 넘게 감옥에 갇혀야 합니다.
감옥에 가진 않았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나 다른 활동에 참여해온 학생운동가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대학과 교수들에게 학생들을 감시하고 수업을 듣지 못하도록 압력을 주고 있습니다. 부모들을 찾아가 협박하기도 합니다. 저와 아내도 이런 이유로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미얀마는 총선 이후 기대에 들떠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제 친구와 같은 정치수는 잊혀지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감옥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