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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국제앰네스티 前 한국지부장 허창수 신부님 선종,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91년 부터 10년간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장 역임하신 허창수 헤르베르트 신부님께서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선종하셨습니다.

 

    허창수 신부님 약력

1991년 ~ 2002년 3월 한국지부 지부장

1941년 2월 1일 체코 Prag대교구 Seifen에서 출생
1962년 9월 17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첫서원
1968년 9월 1일 사제서품
1972년 10월 8일 선교파견
1974년 8월 성주 본당 보좌
1975년 4월 가천성당 주임(임시)
1976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지도 신부
1976년 8월 대구가톨릭신학원 강사
1979년 1월 1일 - 1985년 9월 14일 구미 인동성당 주임
1985년 - 1991년 대구가톨릭신학원 원장
1985년 9월 5일- 2009년 8월 26일
                               구미 노동 사목 연구소 소장(현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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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헤르베르트 보타바 신부님은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역사 속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1968년 9월 1일 신품성사를 받고 독일을 떠나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유신헌법이 공포되기 하루 전인 1972년 10월 16일이었습니다. 거리의 탱크 모습 등 한국의 첫인상에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의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성직자가 교회만 가르쳐선 안되며 인권과 민주화도 종교인의 사명임을 피부로 느끼시고 1975년 국제엠네스티에 가입하여 서슬퍼런 유신정권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당시 신부님이 계시던 대구가톨릭신학원은 전투경찰들이 철통같이 에워싸 신학원과 같이 있던 대명성당이 ‘데모성당’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 였습니다. 90년대 초까지 관계당국의 감시를 받아온 신부님은 “외국인 신부라서 인권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고, 인권운동을 하는데 유리한 점도 많았다”고 회고하시고, “아직 국가보안법 등에 독소조항이 많이 남아 있지만 한국의 인권은 엄청나게 개선됐다”고 평가하십니다.

신부님은 노동자의 인권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으셨습니다. 1985년 가톨릭근로자센타 2대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구미공단에 노동조합을 태어나게 한 것도 신부님이십니다.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이론을 소개하고 노동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경제윤리세미나를 여시는 등 현재까지도 노동자의 인권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외국인 신부가 한국의 노동조합 간부 앞에서 이론적인 교육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으나 신부님은 대단한 이론가이기도 합니다. 로마대학 철학과 석사, 민헨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가졌으며 76년부터 지금까지 가톨릭신학원에서 사회윤리를 강의하고 계십니다.
1990년대 이후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미에서도 증가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이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시하면서 1996년 ‘외국인노동자상담소’를 설립,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보호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도움과 법과 제도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또 실업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쯤 실업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독일의 폭스바겐자동차회사 관계자들을 초청, 실업극복모델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교수와 노동조합 간부 중심으로 독일연수단을 10여회 조직했으며 금년 9월에도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추진 할 예정입니다.

신부님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단어인 ‘이산가족’이기도 합니다. 아버님은 어릴 때, 어머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형님께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베네딕트수도원 원장신부로 계시고 당신은 한국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참고- 형님인 게르노트 아빠스는 2007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별세하셨다.)
성직자로서 활동은 성주본당 보좌신부와 인동천주교회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며 85-91년까지 대구가톨릭신학원 원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지금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도움과 신부님께서 외국으로부터 받은 후원금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신부님은 10여년 전부터 파킨스병을 앓고 있어 예전만큼 활발하게 활동을 하시기 쉽지 않지만 “이 병은 운동을 많이 해야 좋아진다”며 더욱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 신부님께서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그랬듯이 남은 여생도 노동과 인권을 위해 활동 할 것이라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참조: 허창수 헤르베르트 신부님의 언론 인터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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