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 올림픽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페이사 릴레사.
결승선을 통과하며 수갑이 채워진 손 모양을 시늉하는 세레머니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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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적 평등의 기회를 요구하며 시위에 참여한 ‘오로모’ 사람 400명 이상을 살해한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는 의미로 펼친 세레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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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정면 비판한 그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면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게 될 것이기 뻔하기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
IOC는 올림픽에서의 ‘정치적 표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그의 메달 박탈 여부에 관심이 쏠렸는데, 워낙 세계적인 이슈가 되어버렸기 때문인지 경고만 하고 실제 메달 박탈에 이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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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메달 박탈의 위기에 처한 ‘은메달 시상대에 선 달리기 선수’는 48년 전의 다른 한 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200미터 달리기 시상식
인종차별에 저항하고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미국의 두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검은 장갑을 끼고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은메달 자리에 서 있는 호주의 피터 노먼은 이 사진에서 그저 들러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피터 노먼은 이 계획을 시상식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나아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호주 출신으로서) 인종차별 문제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스스로 자원하여 OPHR, “Olympic Project For Human Rights”라는 뱃지를 똑같이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섰다.
장갑을 한 쪽씩 나눠서 끼라고 제안한 것도 노먼의 아이디어였다.
결과적으로 피터 노먼은 이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도 함께 손을 들지는 않음으로써 두 명의 권리보유 당사자를 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사진 한 장은 스포츠에서 가장 상징적인 저항이자 인권운동의 표상이 되었다.
피터 노먼은 행위하지 않음으로써 행위했고 인종평등을 위해 강력한 연대를 실천했다.
이 “Black Power Salute” 퍼포먼스를 펼친 두 명의 아프리칸-아메리칸 선수, 존 카를로스와 토미 스미스는 시상식이 끝난 바로 다음날 올림픽 숙소에서 쫓겨난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공항에 들어오면서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의 야유 섞인 토마토 세례를 받아야 했으며 “순수한 올림픽을 정치화했다”는 언론의 비난과 함께 미국육상연맹에서 제명 당했다.
이 둘과 연대한 피터 노먼이 호주에서 당한 대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행위로 인해 피터 노먼은 동료선수들로부터 규탄 받았으며 사회적으로 배척 당했다. 몇몇 언론은 그의 처벌을 요구했다. ‘괘씸죄’에 걸린 피터 노먼은 다음 올림픽 선발에서 제외되었다. (호주 올림픽 위원회는 이에 대해 부정하고 “피터 노먼을 부당하게 대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과할 것도 없다”며 노먼의 가족과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열렸지만, 피터 노먼의 영웅적인 행위를 기리거나 그가 겪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어떠한 회복과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 San Jose 주립대학에 이 역사적인 시상식을 기념하기 위해 조각을 세웠는데, 피터 노먼은 자신이 설 자리가 아니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비어있는 은메달리스트의 자리는 역설적으로 피터 노먼의 가장 강력한 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피터 노먼은 200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운구를 38년 전 검은 장갑을 끼고 같은 시상대에 섰던 두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맡아 그의 가는 길을 함께했다.
2012년 호주 의회는 피터 노먼에게 행해진 부당한 처우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하고, 운동선수로서의 그의 성취와 인권을 위해 연대한 그의 용기, 인종평등에 기여한 역할을 기리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2등 ⓒAngelo Cozzi
피터 노먼의 200미터 20.06초는 지금도 여전히 호주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사인 볼트 이전의 200m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육상영웅 마이클 존슨은 피터 노먼이 자신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미국 육상연맹은 피터 노먼이 죽은 10월 9일을 그의 날로 선포했다.

“왜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는지, 같은 버스를 타거나 같은 학교에 갈 수 없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올림픽 헌장에 의하면 올림픽의 목적은 “스포츠를 통해 평화로운 사회와 인간 존엄의 유지와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에 있다. 또한 “스포츠는 인권이다. 모든 개인은 우정, 연대, 페어플레이의 상호이해에 기반한 올림픽 정신에 따라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스포츠를 할 수 있어야”한다고 밝혀두고 있다. 이러한 말이 단순히 올림픽과 스포츠를 그럴듯하게 꾸미기 위한 공허한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인가?
인권을 요구하는 선수들의 표현을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해치는 정치적 행위”라고 폄하한다면 거꾸로 올림픽과 스포츠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수들은 국가 이데올로기를 위해 메달을 따는 운동기계가 아니다. 오직 스포츠만 존재하는 진공의 스포츠 세상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는 세상과 분리될 수 없고, 스포츠를 하고 보는 모두가 사람인 이상 인권은 당연히 스포츠의 가장 앞 자리에 와야할 가치다. 피터 노먼과 페이사 릴레사 같은 대담하고 용기 있는 선수들이야말로 올림픽을 빛내는 사람들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