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자유 외면한 헌법재판소의 대체복무법 합헌 결정
헌법재판소가 2021년 이후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등에 제기된 약 60여 건의 헌법소원에 대해 지난 5월 30일(목요일) 합헌 결정(찬성 5, 반대4)을 내렸다.
수십 건에 달하는 헌법소원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1) 현역 육군 병사 복무 기간의 2배에 달하는 대체복무 요원들의 복무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 2) 복무 기관이 교정시설로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 3) 그리고 건강 등 개인적인 사유를 고려해 다양한 복무 형태가 대체복무요원들에게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합숙 복무만 강제한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복무기간, 복무 기관, 합숙 복무 형태가 모두 징벌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결정에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
첫째, 복무 기간과 관련해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는 대체복무 기간은 군복무 기간과 비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길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이를 징벌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대체복무제는 36개월이라는 긴 기간과 현역 육군 병사의 두 배라는 비율도 문제지만,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이렇게나 길어야 할 타당한 근거를 국방부가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국방부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현역 군인의 박탈감만을 되풀이하지만, 이는 자의적인 추론일 뿐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가 아니다.
실제 현역 복무의 2배에 달하는 대체복무 기간이 징벌적이지 않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국방부의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인 추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인권 의무 및 유엔 자유권위원회의 권고에 어긋날 뿐더러, 양심의 자유라는 권리 행사에 대한 사실상의 처벌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정부는 하나의 특정 복무 분야가 아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이유에 부합하는 다양한 복무 분야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복무의 내용 면에서는 실질적으로 완전히 민간 성격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 민간 행정의 관할 하에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교정시설로만 국한된 복무 기관과 합숙만을 원칙으로 하는 복무 형태에 대해서도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를 조화시키고, 현역 복무와 대체복무 간에 병역부담의 형평을 기하여, 궁극적으로 안전보장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적 법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의 법조항들이 “대체복무요원들의 불이익에 비하여 작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여전히 국방의 의무에 양심의 자유가 침해당한다는 청구인들에 대해 둘을 조화시키고 있다는 대답, 복무기간은 군법무관 혹은 공중보건의와 같고 급여나 복무 형태는 육군 사병과 같은 등 고무줄 같은 기준으로 기계적 형평성조차도 어긋나 있는 상황을 무시한 채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간의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인식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안전보장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적 법익 또한 그것이 대체복무 기관이 다양해지고 복무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과 왜 반비례 관계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이 쟁점들은 대체복무가 도입되기 전부터 국내외에서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던 사안들이다. 대체복무 입법이 되기 전인 지난 2019년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유엔 종교·신념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현역 육군 병사 복무 기간의 두 배에 달하는 ‘36개월’의 대체복무에 대해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지나치게 긴 복무기간에 대해 차별적이라고 지적하며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 기간 단축과, 복무영역 확대, 현역 군인의 병역거부권 인정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방부에 대체복무 기간 단축과 교정시설 이외의 복무기관 확대를 권고했고, 대체역심사위원회 또한 자체 연구에서 복무기간 단축과 예외적인 출퇴근 복무 도입, 복무 영역의 다변화를 내용으로 하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4명의 헌법재판관이 합헌 결정에 반대하며 조목조목 합헌 결정 논리를 반박하는 의견을 낸 것도 이처럼 현 대체복무제의 문제점들이 사실상 징벌로 작용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역병과 대체복무요원들을 견주어 누굴 더 열악한 처지에 둘지를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라, 복무하는 개인들의 삶과 우리 사회의 인권과 평화가 향상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논의하기에도 이미 늦은 시기에 오히려 시계를 되감는 퇴행적인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이번 합헌 결정을 강하게 규탄한다.
헌법재판소의 아쉬운 결정과는 별개로 대체복무제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제도로 개선되어야 한다.
대체복무제 시행에 대한 우려가 지난 3년 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22대 국회는 4명의 헌법재판관들과 유엔자유권위원회 등 다양한 의견을 고려하여 징벌적 성격의 대체복무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2024년 6월 3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천주교인권위원회, 참여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