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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착취의 먹이 사슬 속 북한 농장원의 삶

2023년 태풍 6호로 큰 피해를 입었던 북한 강원도 안변군 월랑농장에서 당해 9월 24일 벼수확이 한창인 가운데 새겨진 글귀

북한 농업의 고질적 문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의 농업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에도 침체된 상황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연이은 정책 실패, 부실한 자연재해 대비, 대북제재 및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한 비료, 연료, 농기구 등 외부 물자 유입 부족, 낙후된 기술 수준, 낮은 보상에 따른 농장원(협동 농장 소속 농민)의 근로 의욕 저하 등은 농업 발전을 저해하는 고질적인 원인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식량(쌀) 분배 과정에서의 각종 비리 및 부정 행위 만연, 그리고 농장원이라는 계급에 대한 사회적 차별 또한 북한 농업이 가진 문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식량 생산에서 가장 핵심적인 축을 담당하는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 비참한 환경 속에서 식량 불안에 시달려 왔다.

2023년 10월 15일 북한 남포시 온천군 증악농장에서 진행된 결산분배

명목상의 구호

최근 당국은 만성 식량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과학 농사 제일주의’를 우선 정책으로 놓고 농업 생산성 증대를 위해 각종 신기술 도입 및 제도 개혁을 추진해 왔다. 또한, 농민 문제(생활 환경)와 농업 문제(식량 생산)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 건설 강령’을 발표하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며 농업 부문을 다그쳐 왔다. 하지만 사회 기반 시설부터 필수 기본 물자에 이르기까지 제반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기에 실제 현장에서는 명목상의 구호에 그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농장원을 포함한 농업 근로자의 고생과 혼란만 더욱 가중시킬 뿐 농업 생산성 증대에 있어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9월 29일 북한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새집들이 행사 중인 주민

자유와 권리가 제한된 농장원

북한의 농장은 형태를 불문하고 사실상 모두 국가 소유이다. 북한 농업 부문에서 농산물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협동 농장은 집단 농장으로 국가의 지도 아래 농장원이 중심이 된 지역 공동체에 의해 돌아간다. 협동 농장은 지역(일반적으로 리) 단위로 나뉘며, 수 개의 작업반 아래 수 개의 분조(대략 10명 내외의 농장원으로 구성)가 있으나, 이를 더 축소한 가족 단위로 운영되기도 한다.

농장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대를 이어 계속 농장원을 해야 한다. 농장원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직업을 가지거나 자신이 속한 농촌 지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단지 농장원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뿐만 아니라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릴 권리도 제한되는 등 각종 인권 침해에 마주하게 된다.

모내기가 한창인 북한의 한 농장 풍경

열악한 처우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농장원이 받는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농업이 마주한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매년 농장에서 생산되는 산출물은 목표 대비 낮은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농장 수확물은 우선적으로 국가 납부량(군 공급분 포함)을 제한 후 농장원에게 분배된다. 하지만 대개 수확량이 기대치에 비해 저조하다 보니 각 농장에 할당된 국가 상납분을 채우지 못하면 농장원이 받게 될 양에서 차감될 수밖에 없다. 결국 농장원 가족에게 돌아가는 식량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마저 분배 과정에서 부패한 중간 간부에 의해 상당량이 뒤로 빼돌려 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로 인해 춘궁기에 농촌 지역에서 농장원이 고리대를 쓰거나 식량을 도둑질하는 것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사실상 무한한 착취의 굴레 안에 갇혀있다 보니 농장원은 매년 반복되는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코로나19 이후 북한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위축된 상황임을 고려할 때, 최근 농장원이 처한 현실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라 짐작이 가능하다.

북한 남포시 강서구역 청산협동농장에서 과학농사방법을 체득하고 있는 농장원

북한 농장원의 삶

아래는 북한 농장원의 삶에 대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만난 여러 탈북민이 증언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 착취의 먹이 사슬 속 제일 아래 위치한 농장원이 마주한 열악한 인권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나는 농장원이었다. 국가에서 일단 정한 것은, 농장원 자식은 농장으로, 탄부 자식은 탄광으로 가도록 했다. 그러니까, 부모의 직업을 자식도 대대손손 따라 가는 거다. 그 중에서도 기본, 농장원이 가장 세게 직업을 되물림해야 한다.

내가 있을 때도 북한에서는 6달 농사 지으면 최고 4달이나 먹을 수 있을까 한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국경을 다 막아 놓은 상황이다. 농사 짓는 것도 땅이 좋지 못하니까 퇴비를 많이 써야 해서 중국에서 비료를 많이 수입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데 지금 비료를 수입하지 못하면 아마 수확이 적게 나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연선(북중 국경 지역)에 있었는데 중국 옥수수 종자를 가지고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 종자도 못 받고 그럴 거니까 북한 농업은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농촌에서는 농장원이라면 부부가 모두 농장에서 일하게 되어 있고, 농장원들도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 하다 보니 고리대를 이용해 살아야 했다. 고리대가 뭔가 하니, 춘궁기때 1kg 빌리고 가을에 2kg씩 돌려주는 거다. 이 고리대는 개인 중에서도 그나마 조금 더 상황이 나은 사람이 힘든 사람을 대상으로 놓는다.

탈북민 A 씨, 량강도 출신, 2019년 탈북

평안북도랑 평안남도에 엄청 큰 평야가 있는데 거기 농사 짓고 나오는 걸 가을쯤 되면 각 군수공장에 배급을 해 주게끔 되어 있다. 군수공장에서는 그때 되면 차를 몰고 논이면 논, 밭이면 밭, 현장으로 나가서 벼나 곡식을 다 인수를 한다. 농장원들이 탈곡해서 주는 게 아니고, 군수공장 사람들이 직접 와서 탈곡한 후 다 인수를 한다. 그거를 자기네들이 직접 가져다가 자체적으로 배급을 해서 자기들이 먹는 것이다. 이건 사실상 농장원 것을 뺏아가는 거다.

나도 내가 살던 곳 근처가 군수 공장이어서 젊었을 때 군수공장을 다녔다. 실제로 농촌에 곡식을 걷으러 갈 때 보면 각 농장원 집을 보안원들이 일일이 수색을 해서 들춰내 보고 걷어 갈 만한 게 있는지 다 확인하더라. 그런 식으로 농촌 사람들 먹을 것을 빼앗아 낸다. 그래도 그 지역에서 사는 주민들은 또 자기네가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장이나 길거리에 늘어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팔고 사고 하면서 자기네 생계를 유지하더라. 나라에서 일체 받는 게 없는데도.

탈북민 B 씨, 자강도 출신, 2019년 탈북

북한 농장 실태를 통해 북한의 비극을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남자들의 경우 부모가 농장원이라면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들까지 농장원으로서 평생 농사일을 해야 한다. 자기 희망대로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가 없다. 무조건 농장일만 해야 한다. 농장원의 자식이 군대에 가서 10년 군 복무를 하고 왔다고 해도 농장으로 복귀해서 일해야 한다.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농촌 진지 강화’라는 명목 하에 일한다. 그래서 농장원의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은 보통 ‘왜 다른 부모들은 다 노동자인데 왜 아버지는 농장원이 되어서 자식들까지 이런 농장에서 일하게 만드나’라는 식으로 불만을 느낀다. 이렇듯, 농장원은 자기 희망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농장원의 자식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공부를 더 하고 싶고 대학에 가고 싶어도 나라에 의해 제한되기에 하기 힘들다.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으나 10명 중 1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일부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돈이 있어야 하는데 북한에서 농장원은 가장 가난하기 때문에 돈도 없다. 남보다 지식이 월등히 높지 않은 이상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다. 일반 노동자 계급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만, 농장원의 자식들은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는 풀 자체가 적다. 성분에 따른 차별이 명확하다.

북한에서 제일 불쌍한 집단이 농장원이다. 나도 부모에게 원망을 많이 가졌다. 북한에는 ‘농부 팔자는 무한정’이라는 속담이 있다. 한 마디로 농장원은 자식, 손주 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평생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장원 자식들은 결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농장원 집안 출신 여자의 경우 시집가기도 힘들다. 농장원 딸이 노동자 아들과 결혼할 경우 노동자 집안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촌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서 먹는 게 부족해지다 보니 나라에서는 농장원을 보충해 어떻게든 농장원의 수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농장원 집안의 여자와 결혼한 남자 노동자에게 농사까지 떠맡게 해 농장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농장원들은 농장 일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었다. 오랫동안 나라를 위해 힘들게 살아왔지만, 워낙 받는 게 없다 보니 사람들도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법에서 통제한다고는 하나 어쩌겠는가? 사람이 먹지 못하는데… 사람들도 이제 ‘나 일 못 하겠소’하고 반항한다. 그렇다고 해도 농장에서 일하지 말라는 식으로 사정을 봐주고 그러지는 않는다. 농장도 어쨌든 법대로 움직여야 하기에 그렇다. 대신, 나라에서는 개인에게 소토지(개인 텃밭)를 경작하는 것을 어느 정도 눈감고 허용해 줬다. 국가에서도 농장원이 1년 12달 열심히 일해도 실제로 받는 것은 2달 먹고 살 식량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일은 시켜야 하는데 사람들이 먹지 못해 일을 못 한다고 하니 때리거나 로동단련대에 보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토지가 자연스럽게 퍼져 나가게 되었다. 농장원들은 이렇게라도 해야 나머지 10달분의 필요한 식량을 겨우 보충할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양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입에 풀칠할 수준은 되었다.

탈북민 C 씨, 량강도 출신, 2018년 탈북

농장원은 농사를 지어 나온 생산물을 나라에 ‘바치지’ 않는다. ‘바친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토지가 농장원 것이 아니기에 자기 생산물이 아니지 않는가? 나라 땅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일 뿐이지 자기 땅에서 나온 자기 생산물을 나라에 바치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친척도 농장원이었다. 친척의 경우에는 전혀 돈을 받지 못했다. 쌀을 조금 받는 것 빼고는 아무런 배급도 없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쌀 농사를 지으면 1년 중 가을철 추수 때 자기가 먹을 쌀을 훔친다. 추수 기간 탈곡은 보통 밤에 한다. 그래서 정미소에서 몰래 자기 가족이 먹을 쌀을 빼돌린다. 그런 식으로 1년 먹을 식량을 홈쳐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4, 5월이 오면 먹을 것도 떨어지고 그래서 풀뿌리를 캐서 먹어야 한다. 농사를 짓지만 목표한 만큼 생산량이 나오지도 않기에 보통 1년에 1인당 100kg를 배급 받는다고 한다면 실제로는 50kg도 못 받는다.

탈북민 D 씨, 강원도 출신, 2017년 탈북

농장원들이 왜 농촌에서 나가고 싶어하냐 하면, 농장원들이 애써 농사 지은 것은 대부분 국가에 다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와서 개인제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기본적으로 협동조합 체제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요구하는 수확률이 있는데 논밭 한 정보(약 9,917.4㎡, 3,000평)면 벼를 기본적으로 8톤 정도 생산해야 된다는 이런 기준이 있다. 그래서 농장원들은 애써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정부에서는 농사를 위해 내어 주는 비료라든가 영농에 필요한 공구라든가 그런 것을 잘 지원해주거나 보상해 주지 않는다. 아예 지원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지원해주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비료가 충분하지 못하니까 농사가 잘 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사를 잘 짓자면 농장원들이 사비를 들여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다른 영농 기구나 비료 같은 부족한 것을 사야 한다. 그렇게 해서 농사를 다 짓고 나면, 농사 짓는 기간 농사를 위해 냈던 빚을 다 물어줘야 하지 않나?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농사 지은 것의 일부를 떼어서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농촌에서 제일 먼저 거둬가는 게 군량미다. 군인들이 와서 군량미를 제일 먼저 가져간다. 그렇게 하도록 정부에서 아예 규정했다. “너희들은 올해 어느 부대에 얼마만큼의 식량을 납부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계획이 내려오면 농촌에서는 그 계획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 농촌에서도 봄, 여름에 먹고 살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으로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들이 배를 제일 많이 곪고 있다. 나라에서 배급을 준다고 하지만 그게 1 년 중 두, 세 달 치밖에 안된다. 그러면 그 나머지 9, 10 개월 동안은 먹을 게 아예 없다. 농촌 사람들은 먹고 살 길이 없어 개인적, 개별적으로 산을 일궈서 밭을 만들어 먹고 살곤 한다. 살기 힘들어서 농장원들은 다 농촌을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탈북민 E 씨, 량강도 출신, 2018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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