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헤르베르트 에릭 보타바) 신부님은 독재시절 양심수를 숨겨 주었고
의사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했고 사형제를 반대하였고
노동자의 인권에 남다른 관심을 쏟으셨고
오랜 시간 동안 앰네스티를 사랑하시고 이끌어 오셨습니다.
한국의 인권운동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신 허창수신부님이 일년 전 오늘(8월 26일) 선종하셨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으셨던
신부님의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유신독재 평화통일 인권 등의 말이 자주 나와 허신부님을 생각나게 만들었지요. 유신직전인 72년여름 왜관 베네딕토수도원의 신부로써 한국에 들어와 2009년까지 37년중 전반 20여년을 사목을 하시면서 이 땅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하셨지요. 지난해 왜관에 이어 서울 장충동 베네딕토수도원에서 추모미사가 끝나고 한승헌, 윤현 전지부장님들과 강기종 전사무국장 대행, 그리고 박계동 국회사무총장등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미사후 박계동총장은 유신시절 고대시위를 이끌다가 수배되어 대구의 허신부님의 비호로 대명동성당으로 피신한일,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허신부님이 거액의 도피자금을 주어 도망갔었다는 일화를 밝히고 그 이자로 장충동족발을 사겠다고 해 회원20여명이 신부님덕분에 저녁을 잘 먹었지요. 이후 신부님의 삶은 엠네스티지부장으로써, 구미 외국인근로자회관을 꾸리는데 모두 바치셨지요. 한국지부가 10여년간 대구에 사무국을 두고 오완호사무국장 이주영간사등과 함께 날품을 팔아 집기를 장만하고 신부님의 후원요청 성탄카드로 독일의 지인들에게 후원금을 받아 활동비에 보태기도 했지요. 지병이셨던 파킨슨병으로 몸도 말도 불편하셨지만 언제나 ’썰렁한 개그‘를 즐기셨고 환한 웃음으로 일에 피곤했던 모든 회원들의 마음을 밝게 만드셨지요. 90년대부터 구미에 와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교육회관을 만드셔서 노동권과 이주노동자문제에 대한 책을 직접 지어 강의하시고 이들 지도자들을 독일로 연수시키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셨지요. 벌써 1년이 되었네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남영진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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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2월 1일 체코 Prag대교구 Seifen에서 출생 1962년 9월 17일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첫서원 1968년 9월 1일 사제서품 1972년 10월 8일 선교파견 1974년 8월 성주 본당 보좌 1975년 4월 가천성당 주임(임시) 1976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지도 신부 1976년 8월 대구가톨릭신학원 강사 1979년 1월 1일 - 1985년 9월 14일 구미 인동성당 주임 1985년 - 1991년 대구가톨릭신학원 원장 1985년 9월 5일- 2009년 8월 26일 구미 노동 사목 연구소 소장(현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