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1년 앰네스티 국제대의원총회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회원 권연재입니다.
앰네스티 국제대의원총회(ICM)이란, 2년에 한 번 열리는 앰네스티의 최고의사결정기구입니다. 지난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5일간,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이 행사를 위해 앰네스티 세계 각 지부의 활동가들이 모였는데요, 모인 수만 500여명이 된다고 하니, 규모가 짐작이 가시지요?
저는 이번 ICM 에 자원봉사로 참여했지요. ICM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 투입된 자원봉사자들은 크게 4팀(Transportation/Conference Support/Registration/Printing)으로 나뉘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던 ‘Transportation’ 팀! 말 그대로 교통수단을 책임지는 단위로, 600여명의 활동가들이 무사히 회의장소로 도착할 수 있도록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부터 행사장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모든 회의 일정이 끝난 후 이들이 공항 혹은 기차역까지 가는 제각각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것 또한 저희 팀의 역할이었지요.
<스키폴 공항의 앰네스티 데스크. 각자의 출구에 서서 ICM 참가자들을 만나면 이곳으로 집결시켰다. 집결인원의 정원수가 채워지면, 호텔까지 대형버스, 미니벤 혹은 작은 승용차로 회의장소까지 이동했고, 공항에서부터 회의장까지는 차로 약 25분이 소요됐다.>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은 한국의 인천공항 정도의 크기로 규모가 꽤 크답니다.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는 그 넓은 곳을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는 이야기겠지요. 동양인이 드문 스키폴 공항에서 앰네스티 팻말을 들고 혼자서 주구장창 서 있는 일이란, 처음에는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시지요? 100미터 전방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앰네스티의 상징, 밝은 노오란색!! 하지만 제가 적응력이 빠르다는 것이 장점인지라, 앰네스티의 회원으로서 자랑스럽게 그리고 때론 진지하게, 그곳을 지키며 공항에서 빵빵 터지는 사건들을 무사히 해결하고 다니게 됩니다. 이를테면, 모 지부의 활동가들이 입국수속에서 문제가 있었나봅니다. 키가 무지 큰 네덜란드 경찰이 제게 다가와 이들이 어딜 가는 것이고, 앰네스티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맞는지 증명해달라며 따라오라고 합니다. 다행히 제게는 활동가들의 자세한 리스트가 있었고, 그들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지요. 비행기가 연착되어 발을 동동 굴렀던 건 그나마 쉬운 일입니다. 짐을 잃어버려 빈손으로 공항에 도착한 분도 있었지요! ICM 회의 축사를 하기 위해 도착하는 VIP 들을 맞이할 때도 어찌나 떨렸는지요. 특히 말로만 듣던 우간다의 LGBT 활동가 카샤를 처음 만나게 됐는데, 그녀는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ICM에 참석하는 수 많은 활동가들을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에 도착했습니다. 그녀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한 기억이 납니다.
<Kasha Jacqueline Nabagesera : 우간다의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녀는 우간다의 TV매체에 종종 등장해 성적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이슈를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올해 1월 26일, 그녀의 동료이자 Gay 활동가인 David Kato가 우간다 극우단체의 ’gay list’에 오르며, 살해를 당한다. 현재 그녀의 이름도 그 리스트에 올라있다. 그녀는 2011년, 우간다의 성적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헌신으로 Martin Ennals Award for Human Rights Defenders 상을 받았다.>
그래도 즐거웠던 순간은 오랜 비행시간으로 지친 분들이 앰네스티 팻말을 보고, 너무나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눌 때였지요! “Welcome!”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요.
이틀간 새벽 4시에 일어나, 도착하는 이들을 맞이한 우리들.. 3일째에는 거의 녹초가 되어있었어요. 하지만 ICM의 첫 시작을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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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M 2011이 5일간의 일정으로 시작됐다. 짐을 채 풀지 못한 채 첫날 회의에 참가자들도 있었고, 저마다의 기대와 흥분으로 회의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특히 올해는 앰네스티가 50주년을 맞이했기에 세계 각지의 인권 활동가들이 영상으로 축사를 보내주기도 했다. 축사 중에는 아웅산 수치 여사도 있었다. 그녀는 감옥에 있을 때 세계 각지의 앰네스티 회원들이 보내준 수 많은 편지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앰네스티같은 조직이 인권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지부의 자리도 그곳에 있었다. 한국지부를 대표해 온 네 분의 참가자는 5일 내내 의결을 위한 많은 회의에 나누어 참석했으며, 한국지부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우리의 역할을 알리기 위해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ICM 2011의 회의는 8월 14일부터 19일까지 5일간이었지만, 봉사자들의 임무는 8월 10일부터 시작이었습니다. 8월 10일과 11일, 이틀간 교육을 받게 되는데, 교육은 쉽고 재미있게 진행됐습니다. 저마다 다른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할 시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이러한 이해가 바탕이 됐을 때, 우리는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어떤 상황에서건, ICM 참가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이 궁금한지 주의 깊게 듣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앰네스티의 거버넌스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팀별 게임도 있었는데, IEC(International Executive Committee), Section&Structures, ICM, International Secretariat, Group 등 앰네스티의 캠페인을 만들고,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세계 각 지부들은 어떻게 나뉘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밖에 우리가 이곳에 왜 오게 되었는지, 흩어져있는 사진들 중 하나를 골라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으며, 서로를 알기 위한 빙고게임도 짧게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팀별로 새로운 나라를 창조해 (국명, 국가, 국가의 규칙 등을 스스로 창조) 팀워크를 도모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저희 팀이 창조한 새로운 나라의 이름은 ‘마히모키!’ 발음이 좀 어렵지만, 각 팀원들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창조한 나라의 예의는 서로가 협력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협동을 뜻하는 춤을 직접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총 4팀이 각자의 나라를 창조해 경연을 펼쳤는데, 단연 ‘마히모키’ 팀이 1등을 했지요. 팀워크는 훌륭했습니다. 첫 출발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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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별 인사법을 익히는 시간, 서로 코를 비비는 에스키모식 인사에 모두가 가장 즐거워했다. 우리가 프랑스식 인사로 알고 있는 양볼에 키스를 하는 것은 대륙마다 그 횟수가 상이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기 전날 저녁, 큰 파티가 진행됐습니다. 바로 앰네스티 50주년 기념파티였는데요,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기념 케잌을 자르며, 앰네스티의 50주년을 축하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파티의 준비를 돕느라, 끝까지 분주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3개 언어로 앰네스티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참가자>
바로 다음날이 회의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이지요. 마지막 날은 모두가 정신이 없을 테고, 회의가 끝나는 오후 5시 이후 바로 떠날 사람들도 있기에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50주년 파티가 열리는 중간에 빠져나와 작은 축하파티를 가졌습니다. 앰네스티 자원봉사 인증서를 받고, 모두가 끌어안으며 저마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연락처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아무도 떠나지 않았기에 헤어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헤어짐이 바로 코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ICM 자원봉사 증서를 한 사람씩 수여받고, 모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에필로그
8월임에도 네덜란드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비가 내리고, 기온은 15도 밑으로 내려가 서늘했다.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멋쩍은 날씨가 계속됐다. 그곳에 적응할 새도 없이 우리는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고, 친해질 새도 없이 우리는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는 어떻게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 우리의 작은 행동이 어떤 나비효과가 될지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자원봉사 코디네이터인 리즈가 제안을 했다. 헤어질 때 우리는 ‘Good bye’ 말 대신 이렇게 말하자고. ’See you!’
그렇게 서로 뜨겁게 포옹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2011년 네덜란드에서의 짧고도 긴 ‘ICM 2011’ 열흘간의 일정이 마무리 됐다.
회원 권연재(femis5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