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칼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함께 살자”는 외침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반대해서 지난 2009년 5월 22일,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에 돌입했다. 그리고 77일 동안 “함께 살자”고 외치며 싸웠다. 그리고 그 해 8월 6일 회사 측과 노사합의를 하고 공장을 나왔고, 그런 뒤 그들은 해고되었다. 희망퇴직자 2020명, 정리해고자 158명, 무급휴직자 468명, 총 2642명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았다.

그들이 옥쇄파업을 하고 있던 중에 벌써 노동자와 가족들이 5명이나 죽었고, 그 뒤로 다시 17명이 더 죽었다. 목을 매거나 자동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했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돌연사하는 일도 생겼다.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아내도 그렇게 죽어갔다. 유서도 한 장 없이 어떤 외침도 없이 조용히 죽어갔다.

지난 3월 30일, 서른여섯 살의 이윤형씨가 자신이 사는 임대아파트의 23층에 올라서 투신했다. 그는 정리해고자로 노조에도 나오고 함께 투쟁을 했던 이다. 그가 당진에서 취직을 하고자 했으나 쌍용자동차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국 취직을 하지 못하였고, 그런 뒤 연락을 끊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회사와 사회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었다. 출구가 없는 해고자의 신세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회사는 1년 뒤에 무급휴직자부터 복직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복직된 경우가 없었다. 어떤 이는 회사가 기술이 필요하니 임시직으로 고용하여 부려먹다가 재차 해고한 뒤에 심적 고통을 겪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6개월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서 아는 이들의 연락처를 하나하나 지우다가 자살을 택했다. 노동자가 죽고, 아내가 죽고 결국은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겨진 경우도 있었다.

자살이거나 스트레스성의 돌연사이거나 한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와 가족의 죽음이 22명이나 이어져왔다면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원인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할 일이다. 지난해 5월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있던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씨는 쌍용자동차에서 15명이 죽은 뒤에 “질병으로 15명이 죽어갔다면 원인도 찾고 처방도 찾아내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누군가가 15명을 연쇄 살인했다면 온 국민이 나서서 범인을 잡아 법정에 세웠을 것이다. 원인도 알고 범인도 아는 살인에 대한 거대한 묵계.”라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극심한 배신감과 고립감에 시달려야 했다. 회사를 위해서 온갖 고통을 감수한 대가가 해고였기 때문이고, 회사가 약속한 복직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갱이’라는 사회적 낙인에 괴로워했다.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전업도 어려웠다. 출구마저 봉쇄된 채 절망감에 사로잡힌 이들이 택할 길은 죽음 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이런 죽음들이 이어졌지만 세상은 너무도 조용하다. 동물이 학대 받거나 죽임을 당하는 일 하나에도 떠들썩한 사회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22명이나 죽었는데도 조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 해에 1만5천 명이 자살하고, 산업현장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2,500명이므로 사회적 죽음에 대해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옆에서 죽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끔찍한 죽음의 체제로 변해 버렸다. 지난해에만 10만 명이 정리해고되었고, 정부가 나서서 양질의 일자리를 없애고 임시직과 일용직 일자리만 늘려온 통에 자신의 천대받는 노동마저도 전전긍긍하며 지켜야 하는 생존의 절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잔인하게도 노동자의 죽음과 일방적인 희생 위에서 지탱되고, 유지되는 야만적인 자본주의다. 그 본질이 쌍용자동차 문제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먹튀자본’ 상하이차는 기술만 빼돌린 채 자본을 철수해버렸고, 그런 뒤에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동자들은 임금도 반납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은 잔인한 경찰의 진압 끝에 정리해고자가 되어 버렸다. 상하이차의 먹튀자본이 철수한 뒤에도 법정관리를 신청할 때만 해도 회사는 우수한 실력을 가진 노동자들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M&A를 의식해서인지 회사의 부채비율을 한 해 사이에 5백 퍼센트 높게 책정하는 회계조작과 부정을 통해서 대규모 해고를 동반한 구조조정에 착수했고, 옥쇄파업 뒤 정부가 나서서 인도 마힌드라 자본에 쌍용자동차를 넘겨 버렸다. 자칫 상하이차처럼 먹튀자본의 행태를 반복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묵살 당했다. 여기에 노동자들의 잘못이 무엇일까? 지금 회사는 정상적인 경영을 하고 있지만 결코 사회적 합의사항을 이행하려고 들지 않는다.

4월초부터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에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는 합동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그곳을 밤낮없이 지켜왔다. 벌써 석 달을 넘겼다. 지난해 평택에 와락센터가 만들어졌다.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려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치유를 위한 곳이다. 그리고 희망텐트와 희망뚜벅이가 쌍용자동차로 향했고, 지금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쌍용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월 9일부터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쌍용자동차 문제와 함께 용산참사, 강정마을 문제를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힘을 아래로부터 결집하려고 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에는 “노동자가 하늘이다. 구럼비가 하늘이다. 쫓겨나는 사람이 하늘이다”는 구호를 앞세운 SKY(쌍용, 강정, 용산의 앞 글자를 따서 조합한 조어) 공동행동이 시국회의를 갖고 출범했다. 8월 중순 이후에는 SKY공동행동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연대투쟁을 전개하게 된다. SKY공동행동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 가장 극심하게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이 외치는 인간 존엄성 회복 선언운동이다. 용산의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이 “함께 살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외침과 이어지고, 제주 해군기지를 막고 평화를 얻고자 하는 강정투쟁과 함께 하게 된다. 노동자가, 쫓겨나는 사람들이 하늘처럼 대우받고, 자연까지 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행동, 여기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 나선다.

* 이 글은 지난 5월 23일 <창비주간논평>에 실렸던 필자의 글을 재구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2년 003호 여론에 실린 글로서 무단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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