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조효제 교수의 강의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하는 인권’을 요약한 것입니다.
조효제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비교사회학을,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0년대 앰네스티에서 활동을 시작, 이후 한국조절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며 한국지부 재건을 이끌었다.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과 연구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하버드 대학 로스쿨 인권 펠로와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인권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들판에 적이 있는데, 파수꾼이 잠이 들면 적이 온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입장에 대해 깨어있으면서 자기 비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이야기 할 것은 인권의 내러티브(서사구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권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로 볼 수만은 없다. 그동안의 일반적인 인권의 내러티브는 인권이 평탄하게 성장하고 발전했다는 승리사관(史觀) 혹은 성공사관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권은 직선적으로 평탄하게 성장하지 않았다. 사실 인권은 시작부터 많은 어려움 속에서 발달 장애를 겪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시냇물로 치면 굽이굽이 돌아서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점에서 이런 내러티브를 겪은 인권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인권운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먼저 인권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해도 다시 이슈화되고 좌우되기도 한다. 세계인권선언에 나오는 ‘참정권: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은 과거의 여러 날 동안 끊임없이 투쟁해서 얻어온 권리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여성참정권을 외치면서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투쟁하여 얻었던 참정권이 이제는 선거 날만 되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상황은 과거에 참정권을 가지려고 목숨까지 걸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역설적이다.
이렇듯 인권은 모세의 십계명과 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인권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정치상황과 시대상황과 역사의 흐름 안에서 굉장히 많은 흔들리는 과정을 겪는다.
다음은 인권의 발전에 장애를 미친 3가지 변수이다. 1)냉전 2)개발(발전) 3)지구화(세계화)
1) 냉전 cold war
1945.8.15 |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
1945.6.26 | 유엔헌장 작성 |
1946.12.10 | 유엔인권이사회 설립 |
1946.3.5 | 냉전 시작 |
1947.1.27 | 유엔인권위 1차 회의 시작(세계인권선언에 대한) |
1948.12.10 | 세계인권선언 완성 |
1950.6.25 | 한국전쟁, 냉전 구도 고착 |
냉전하고 관련해서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종전 후 46년이 되면서 미국, 소련 등에 틈이 벌어진다. 지금까지는 공동의 적 앞에서 서로 단합했지만 전쟁 끝나고 나면서 전후 이해관계로 인해 싸우기 시작한다.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냉전구조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냉전이 이미 시작한 시점에서 서로 체제가 다른 국가들이 모여 세계인권선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적적인 사건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또한 세계인권선언은 당시의 인권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내용 자체도 매우 저항적이고 혁명적이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전문에서부터 저항권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경제사회적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극렬히 저항하게 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전문>에서
세계인권선언문은 매우 점잖게 표현돼있지만 매우 혁명적이고 저항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 초안에 참여한 존 험프리는 ‘세계인권선언은 인도주의라는 몸통에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양 날개를 지닌 새‘라 표현했다. 이 말은 인권이 단지 인류역사의 작은 부분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인류의 미래 청사진으로서 인권으로 인도주의와 사회주의, 자유주의 모두를 통합하려 했던 것이다.
한편 냉전구도는 인권에 발달장애를 가지고 오게 된 큰 역할을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자유주의에 관한 권리를, 소련권을 비롯한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인권을 상대방 체제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했다. 인권의 정치화를 시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북한인권을 가지고 정치화해서 진영 논리에 이용하고 있다. 성 아누구스티누스는 “악마도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인권의 특정 조항만 이용해서 공격의 도구로써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61년 국제앰네스티는 처음으로 정치의 진영 논리를 떠나 오직 인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초기 국제앰네스티는 보고서를 발행할 때 양쪽진영에서 일어난 모든 인권 문제의 수적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그러자 양쪽진영에서 모두 국제앰네스티를 비판했다. <AI in Quotes>는 동서 양 진영에서 국제앰네스티를 비판한 것을 모아둔 책인데, 이러첨 양쪽에서 고르게 비판받고 있다는 것은 국제앰네스티가 인권의 양 날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이렇듯 세계인권선언 제정과 함께 인권이 가장 잘 성장해야 할 시기에(1948~1990-91) 인권은 냉전체제로 인해 큰 발달장애를 겪었다.
2) 개발 development
51개국의 가입국으로 시작한 UN이 지금은 193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다. 이렇게 추가된 가입국의 대부분은 과거에 식민지였던 나라들이다. 전쟁이 끝나자 동서진영에서 조금 떨어진 곳인 중립주의, 비동맹권에서 제 3개국이 독립한다. 이 국가들이 독립을 위해 내놓았던 정당화 기재가 바로 개발, 발전의 논리였다. 신생독립국들은 사회계약적 관점에서 국가성립의 정당성을 ‘개발’을 들어 설명했다. 지금 개발의 의미는 경제발전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지만 당시의 개발은 ‘시민권의 완성’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권의 완성도 냉전상태에서 제대로 꽃피우지 못했다.
3) 세계화 globalization
1990-91년에 냉전이 끝나자 1970년 초부터 세계화, 자유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시작된다. 냉전의 종식 후, 사회주의 진영이 사라지자 세계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흐름 속에서 경제적으로 많이 우경화되었다. ‘자유주의’라고 하는 것도 과거 인도적 자유주의가 아닌 초기의 자유방임형 자본주의의 모습으로 2008년까지 지속된다. 2012년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이야기, 경제민주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인식한 흐름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이후, 60년 만에 양 날개를 가진 인권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60년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이야말로 균형 잡힌 양 날개를 가진 인권이 날개 짓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권의 내러티브는 먼 길을 돌아 힘들게 자라오긴 했지만 이제 기회를 맞았다. 좋은 시대에 인권이라는 희망의 새를 날릴 수 있길 바란다.
Q. 전세계적인 인권의 담론이 이제 냉전에서 벗어나서 양쪽의 의견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이에 대해 평가해주길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이 최근 5년 동안 썩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길게 보면 우리가 우여곡절이 있지만 점점 인권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민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이 한 예이다. 우리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사고하기 어렵다. 우리 현실에서의 많은 부조리와 인권침해 상황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인권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Q. 앞으로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에 종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은 자신이 어느 쪽에 관심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 목표를 국제기구 진출로 두면 전후가 바뀐 거다. ‘내가 어떤 인권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영역에서 일하고 싶다.’ 라는 것을 가지고 국제 단체로 방향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일단은 여러 경험과 활동을 통해 열정부터 발견해 보는 것이 좋겠다.
Q. 교수님 책에서 인권이라는 것이 냉전 이후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나서 자유주의를 대항하는 기능적 등가물로서 ‘인권’이 쓰였다고 하는데 이 점에서 인권이 정치스펙트럼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신자유주의에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보면,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좌파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지금 세상은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냉전 당시에는 사회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동서가 서로 견제할 수 있었지만, 냉전구도에서 한쪽 진영이었던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졌다. 때문에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인권’이라는 단면이 채우게 된 것이고 따라서 ‘인권을 기능적 등가물이다’ 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Q. 인권이라고 하는 것이 시민이 중심으로 생각되는데, 시민이 아닌 사람들, 법적으로는 시민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법 밖에 사람으로 취급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권의 이론이 더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실천적 방안이 필요한 것인가?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굉장히 강한 이론이 나오게 된다. 심플한 이론이어도 실천이되면 되는데 한국의 경우도 실천이 되지 않아 과거 굉장히 극단적인 사상들을 향유했다. 전통적인 인권이론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지금 이 시대에 인권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촉매제가 무엇이 있을까?
학생인권을 예로 들어보면 저는 학생인권에 대해 200%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성장해야 하는 곳에 인권이라는 중병상태에 써야 하는 강한 약을 투입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어릴 때부터 사회화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민감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출발점을 인지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인권이라는 말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2012 인권입문과정 들숨날숨,인권과 호흡하기’ 블로그 연재를 마쳤습니다. 다음주(11/8)부터는 인권이슈과정 ‘거짓말같은 표현의 자유’ 6주차 강의가 시작됩니다. 블로그 연재도 계속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