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땅’이라는 말은 더 이상 기름진 대지를 뜻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땅’의 의미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황금 투자처 혹은, 전략과 정보를 통해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복덕방이 사라진 자리에는 부동산과 부동산중개업이 반짝이는 간판을 달기 시작했고 ‘남보다’ 더 발빠른 정보를 가지고, ‘남들보다’ 더 윤택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사람들은 투자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투자금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집을 가지게 되고 생계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피붙이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할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조차 내몰리게 되었다. 이건 분명 한국에서 벌어졌고, 벌어져 왔고, 벌어지고 있고, 아무래도 계속해서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이야기이지만, 집을 잃어버린 박탈감과 절망감은 한국의 퇴거민만이 경험한 것은 아니다.
불시에 불도저나 포크레인이 기습하여 퇴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을 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기약하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잠재적 퇴거민에게 미래는 하루하루 이어지는 고통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침묵할 수 없어 주거권 활동가로 나선 소피Bov Sorphea 씨를 만났다. 그녀는 다음 주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서 비명조차 재가 되어야 했던 한국의 철거민을 만날 예정이다. 이 글은 한국을 찾아 강제 퇴거, 재개발, 이라 불리는 이 시대의 끝나지 않은 비극, 그것의 고통을 공유하고 개발의 논리로 사람들의 숨통을 끓는 참극이 아닌,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개발이 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다.
소피는 토지 소유권 증명서(Land Title)을 가지고 있지만 벙깍 강제 퇴거에 반대하고, 2011년 캄보디아 정부가 지급을 약속한 12.44헥타르의 명확한 구획을 요구하는 시위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끓는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어서 안쓰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회 현장은 정오가 되기 훨씬 전인 오전에도 햇살이 어김없이 살 속을 파고들듯이 이글거리기 때문이다. 꽤나 넓은 평수의 공간에 2층 건물을 자신의 집으로 소유하고, 토지 소유권(Land Title)까지 받은 그녀는 왜 자청해서 시위에 앞장서는 것일까? 소피와의 인터뷰를 통해 캄보디아 프놈펜 강제퇴거의 현실을 이해하고 동시대인인 우리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모색해본다.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해 소피가 벙깍에서 체포된 15인 가운데 한 명임을 밝혀둔다.[i]
1.지난해 삼십여 일간 수감되어 있으면서 건강이 많이 상했다고 들었어요. 지금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건강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어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많은 타격이 커서 지금도 그때의 기억으로 고통을 겪을 때가 있어요. 이따금 잠에서 깨어나서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잠시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생각을 해요. 이런 이유로 현재 246일째 프레이 사 교도소(Prey Sar prison)에 수감되어 있는 욤 보파 Yorm Bopha가 너무나 걱정스러워요.
2. 1994년부터 벙깍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들었어요. 2012년 5월 22일 벙깍 15인으로 체포되기 전에 주된 생업은 무엇이었나요?
미트볼을 만들어서 식당에 납품하는 일을 했어요. 단골이 많아서 수입도 좋았는데, 감옥에 있다가 나오니까 고정 손님이 거의 다 끊겼어요. 고정적으로 손님이 찾지 않게 되면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구요. 지금은 여동생이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상태예요.남편은 베트남 국경 지역인 캄퐁참에서 일하고 있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죠.
3. 2012년 5월 22일에 어떻게 체포되었나?
그날 빌리지 1에서 벙깍 커뮤니티 리더가 주민들과 철거된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었어요. 마을 일이니까 주민들은 서로 도왔고, 저는 빌리지 1에 살진 않지만 돕기 위해서 그곳에 있었어요. 경찰이 기습적으로 몰려왔고 저항하기가 역부족인 상태에서 잡혀 갔어요. 심문을 받기 전에, 아무래도 수감이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남편에게 여동생은 집회에 참가하지 말고, 집으로 가 있으라고 전했어요.. 저는 감옥에 있어서 나갈 수가 없으니 여동생이라도 붙잡히지 말아야 아이들을 지킬 테니까요.
4. 갑자기 경찰에게 체포되어 있을 당시에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걱정과 슬픔이 컸어요. 그리고 나서는, 나는 잘못이 없는데 갇혔다는 생각이 들어서 억울했어요.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워요. 특히, 가족, 아이들이 눈에 많이 밝혔어요. 이제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을 거라는 공포가 엄습하면서 눈앞이 깜깜해지고, 감옥에 있는 내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요.
5. 자녀가 3명 있다고 들었는데 이 아이들은 엄마의 주거권을 얻기 위해 활동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 애들은 제가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별 걱정이 없었어요. 아직 어리고 또 엄마가 하는 일이니까 그냥 지켜보기만 했지요. 하지만 제가 감옥에 있다가 나온 후에는 다시 수감될 것을 걱정해요. 아이들은 물론 제가 경찰에게 다시 체포되지 않기를 바라죠.
6. 이렇게 앞장서서 Free Bopha! 캠페인과 12.44헥타르의 구분을 요청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집은 저에게 모든 것이에요. 이곳에는 여동생 가족 등을 비롯해서 5가족이 같이 지내고 있어요. 줄잡아 20명의 식구가 함께 사는 거예요. 캄보디아에서는 이렇게 친인척이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이 전통이에요. 제가 만약 투쟁을 하지 못한다면 이 집에 머무는 가족과 친척들은 모두 노숙자가 되어 거리로 나앉아야 해요.
또 저는 현재 퇴거 되지 않았고 랜드 타이틀도 있는 상태이지만, 정부가 지급하려는 보상금으로는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이만한 크기의 집, 20여 명이 함께 생활할 곳을 구할 수 없어요. 만약 구한다면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면 학교나 병원, 장사할 수 있는 시장이나 직장에 닿기가 어려워져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도 어렵고, 생계를 유지하지도 어려운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특히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감옥에 수감된 보파를 생각하면 많이 힘들어요. 보파도 9살 난 아들이 있는데 마음이 어떻겠어요? 이렇게 240일이 넘게 감옥에서 지내는 고통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어요. 제가 집회에 나가는 것은 벙깍 시위를 멈추게 하려는 정부에 대응해서 벙깍 커뮤니티를 돕고, 또 제 이웃을 돕기 위해서예요. 현재 벙깍 지역에는 779가구가 잔류하고 있어요. 기존 4,252가구 가운데 3천여 가구인 85%가 이주한 셈이죠. 전체 벙깍 주민 가운데 보상금을 받거나 대체지역으로 이동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재 이곳 벙꺽 지역에서 거주권을 요구하는 비율은 그러니까 15%예요, 하지만, 아직도 언제 퇴거될지 알 수 없어 모두가 불안한 상태로 하루하루 지내고 있어요.
캄보디아에서 엄마들은 가사와 육아, 생업을 짊어진다. 급여 수준이 낮아서 노동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한다. 따라서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월세가 일반화되어 있어 다달이 집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중교통수단이 전혀 없어서 아이들을 통학시키기 위해서는 오토바이에 휘발유를 채워야만 한다. 외국인 여행객에게는 이렇게 저렴한 공산품과 과일들이 캄보디아 현지인의 주머니 사정에서는 그림의 떡일 때도 다반사이다. 아이를 셋이나 기르면서 주거권을 사수하기 위해 버티는 것은 이런 모든 생계 비용에 대한 부담도 함께 감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함께 이웃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고 함께 방패가 되려는 소피의 역할은 눈부시다.
미트볼을 만들어 팔아, 아이들을 먹이고, 옷을 해 입히고, 학교에 보내는 엄마의 기쁨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하얀 쌀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것은 부모의 다 같은 심사일 것이다. 어린 피붙이와 함께 별 탈 없는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 또한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강제퇴거는 이런 모든 기쁨과 보람, 계획을 정지 상태로 만든다
우리가 함께 그녀의 손을 잡는다면, 그녀의 불의에 대항한 용기는 버팀목을 갖게 될 것이고,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2009년 1월 한국에서 있었던 용산참사가 재현되지 않길 기도한다. 타협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관대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i] 2012년 5월 22일, 철거된 집을 다시 손보려고 했던 마을 주민 대표와 벙깍 여성 13인이 체포되었는데, 소피는 이웃 마을 주민이지만, 그곳에 일손을 돕다가 붙잡혔다. 100명 이상의 경찰과 보안 경비대가 들이닥쳐 긴급하게 여성들을 연행했다. 이틀 후 13명의 여성은 한 시간 동안 심문을 받고, 기소 당하고,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 받고 결국 형을 선고 받는다. 재판 과정에서 목격자로 나서려던 주민 2명이 추가로 구금되면서 벙깍 주민 총 15인이 수감된다. 그들의 34일 수감 기간 동안, 벙깍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집회와 시위, 국내외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 결국 전원 모두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벙깍 커뮤니티의 주권 활동가 소피(Bov Sorphea)와 인권단체에 몸담고 있는 소쿤롯(Sek Sokunroth)이 한국을 방문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를 참고하세요.
연대로 만들어가는 캄보디아, 아시아, 그리고 우리의 미래
http://amnesty.presscat.kr/6864/
캄보디아, 용산을 만나다
http://amnesty.presscat.kr/6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