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올해 인권입문과정의 첫 수업이 시작했습니다. 수업이 열리는 홍대 앞으로 가다보니 불목을 즐기는 먹고노세 인파들은 왜이리 많은겁니까 ㅠㅠ ‘하루종일 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인권수업까지 듣겠다고 신청하다니. 잘한 짓일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7시 30분이 가까워질수록 수강생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일찌감치 도착한 저는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거르고 헐레벌떡 달려온 회사원들도 많고, 연령대도 다양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5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의실을 꽉 채우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고작 불목 홍대앞 따위에 마음이 흔들렸던 제가 잠시 부끄러웠습니다.
첫 시작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김희진 사무처장님께서 열어주셨습니다. 앰네스티의 역사와 하는 일을 하나씩 소개해 주신 후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설명해 주셨어요. ‘나’를 둘러싼 모든 현상들을 둘러보고, 그 속에서 불편한 진실들을 서서히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찾아보는 시간이 바로 앞으로 6주간 마주하게 될 과정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후의 순서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문명진 상임활동가가 이끌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2011년, 평화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여 수감 생활을 하셨는데요, 이때 국제앰네스티 양심수로 선정되어 전 세계 앰네스티 회원들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구 곳곳에서 온 수많은 편지들을 읽으며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솔직히 저는 요즘 같은 시대에 편지를 쓴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니, 김희진 사무처장님이 말씀하셨던 ‘인터넷에 올라오는 댓글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쓰는 글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편지쓰기 캠페인의 울림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
오늘은 첫 시간인만큼 인권 감수성을 늘리는 워밍업 워크숍이 진행됐습니다. 6명씩 모둠별로 앉아서 내가 요즘 ‘안녕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한 사람씩 이야기 해 보기로 했어요. 단통법 시행 때문에 크게 오른 요금 때문에 새 휴대폰을 구입할 수가 없어서, 맞벌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늘 남편 보다 육아를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한 마디 논의도 없이 수업에 집중하라며 휴대폰 반납을 강요한 어린이집의 원장님 때문에, 나이를 활동 범위를 재단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등등 일상 생활에서 나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은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일 뿐일까요?
사회적약자=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란 장애인이나 노약자, 실업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부당한 질문을 받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누구나 사회적 약자일 수 있는 셈이지요.
‘육아는 당연히 여자가 더 신경써야지’ ‘상사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게 사회생활이지’ ‘나이가 마흔이 넘었으면 당연히 이러이러해야지’ 라는 말들처럼 우리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당연’과 ‘물론’의 세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권이란 개인의 인권뿐만 아니라 그 개인이 속한 사회 전체의 인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라면 상무에게서 배운 것
작년에 큰 화제가 되었던 일명, ‘라면 상무 사건’ 기억하시나요? 이번에는 수강생 두 명을 즉석에서 섭외하여 라면 상무 상황극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라면 ‘상무’와 항공 승무원 역할을 맡은 두 분이 혼신의 연기를 펼쳐주셨어요. 별다른 지시 사항이 없었음에도 두 분은 ‘거만하고 명령하는 말투의 남자’ 상무와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의 여자’ 승무원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상무와 승무원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가장 익숙한 모습이지요. 하지만 높은 지위의 임원은 ‘당연히’ 남성의 권력자라는 것, 승무원은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해야 하는 여성’이라는 편견은 이미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직장 여성이 느끼는 유리벽이나 항공 승무원에 대한 성희롱 사건들처럼요. 익숙한 상황을 낯설게 바라보는 노력을 통해 사회적 흐름을 바꾸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하는 인권운동의 시작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사건에서 라면상무가 끝까지 당당한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 분과 우리가 가진 인권 감수성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문명진 선생님은 인권친화적 사회란 옆 사람이 지금 무엇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지,물어볼 수 있는 사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권감수성이 잘 발달해 있을 때 가능한 거고요.
쭉쭉 늘어라 인권감수성
사실 어색한 분위기에서 가만히 앉아 ‘받아 적다’오는 시간일줄 알았는데, 모둠활동과 상황극까지 참여 하다보니 시계 한번 보지 않고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앞으로의 남은 수업들을 통해 저의 인권 감수성이 더 많이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수강생 분들하고도 ‘안녕하지 못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도 싶고요.
두근두근.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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