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제앰네스티의 설립자인 피터베네슨 변호사(83세)가 한국시간으로 26일 토요일 오전 8시 런던의 John Radcliffe 병원에서 사망 하였습니다.
2. 피터베네슨은 1921년 7월 31일에 출생하였으며, 학창시절 히틀러가 통치했던 독일에서 피난 나온 유태인들을 영국으로 데려오는 운동과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전쟁고아들을 입양하는 운동에 참여 하면서 인권운동에 발을 들여 놓았고,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그가 40세가 되던 해인 1961년 포르투칼 리스본의 한 술집에서 두 명의 학생이 ‘자유를 위하여’ 건배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구속 수감 되었다. 이 신문기사를 읽고 분노한 피터베네슨은 5월 28에 영국 신문인 Observer지에 ‘잊혀진 수인들 (The Forgotten Prisoners)’ 이란 제목으로 기고를 하게 되고, 이 두 학생을위한 탄원 활동을 함께 전개해 나갈 것을 호소하였다. 그 글을 읽은 수 천명의 사람들이 피터베네슨에게 편지를 보내왔고, 함께 탄원 활동을 벌였다. 이것이 국제앰네스티 운동의 첫 출발이 되었고, 이후 국제앰네스티는 이미 보편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양심수’란 단어를 사용하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는 인권 단체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그가 택한 운동 방식은 ‘한 사람의 한 사람의 힘은 나약 하지만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힘은 놀라울 정도로 커진다’는 것에서 출발 하였고, 이는 국제앰네스티가 현재 전 세계 160여 개국에 180만명의 회원과 후원자들로로 구성된 가장 큰 국제인권단체가 되게 하였다. 피터베네슨과 전 세계 모든 회원들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수 천명 이상의 양심수와 정치범을 위한 탄원과 석방운동을 벌여 나갔고, 고문과 사형 등의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를 박탈하는 인권침해들에 맞서왔다. 그 공로로 국제앰네스티는 1977년 노벨 평화상과 1978년 유엔 인권상을 수상 하였다.
3. 국제엠네스티의 25주년을 위한 기념식에서 피터베네슨은 단체의 상징이 되어버린 철조망에 둘러싸인 촛불을 키고 다음과 말 하였다. “이 촛불은 우리를 위해서 켜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도소에서 구원해 주지 못한 모든 사람들, 교도소에 가는 도중 사살된 사람들, 고문을 받은 사람들, 납치된 사람들, 실종 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이 촛불의 의미이다.”
수신 | 각 언론사 국제부/사회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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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
제목 | 국제앰네스티 설립자 피터베네슨 변호사 별세 |
날짜 | 2005년 2월 27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