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있어야만 가볼 수 있는 곳. 미얀마를 알고 계신가요? 아니 어쩌면 미얀마보다는 버마가 더욱 친숙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호를 변경한 것이 1989년의 일입니다. 1988년 일어난 민중항쟁을 폭압적으로 진압한 독재 군사 정권이 과거 영국 식민지 지배의 잔재를 걷어내고, 버마 민족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 구성비를 반영하기 위해 ‘미얀마 연방(Union of Myanmar)’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미얀마는 70%에 이르는 버마 족 외에도 샨 족 등 100여개의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을 하는 반체제인사들은 군사정권에서 붙인 국명을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들은 다시 국호를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로 변경하고 국기도 바꾸었습니다.아마도 20년만에 실시되는 선거를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요, 세 차례에 걸친 이번 포스팅에서는 미얀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다루게 될 내용은 바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과 2010 선거입니다. 우리나라가 힘겹게 민주화를 얻어냈던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미얀마는 한국의 70~80년대와 무척 유사하다고 느끼실겁니다.
1948년 영국에 이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미얀마는 드디어 독립을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투쟁과 다양한 인종 지도자들의 목소리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되었으며, 결국 1962년 군부는 쿠테타를 일으키고 군사정부를 출범시키게 됩니다.
1988.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한 군사정부는 모든 사기업과 민간 기업인의 재산을 ‘국유화’라는 구실로 몰수하고, 민주적인 의사 표현을 억압하면서 일당지배체제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결국 국민들은 영양 실조, 가난으로 신음하게 됩니다. 또한 별다른 이유없이 대부분의 화폐에 대해서 취소조치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부당한 처사에 학생들과 종교인들이 먼저 일어섰고, 8월 8일 8시 8분 양곤항 부두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도시로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이를 8888 혁명이라고 부른답니다. |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노동자들과 합류했고, 이에 고무된 버마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움직임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는 잔혹한 폭력으로 그들은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3,000여명 이상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1990.
8888 혁명으로 인하여 군부는 5월 27일 선거를 실시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군부는 ‘국민연합당(National Unity Party)’을 지지하고 편애하며 다른 정치 정당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였으나,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국회의석의 82% 이상을 차지하였습니다. NLD는 1988년 9월 원로정치인, 군지휘관출신인사, 교수, 변호사 등 주요 민주화 활동가를 구성원으로 하여 창설되었으며 아웅산 수치 여사의 지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무시하였고, 정권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버마인들이 시위를 조직하였으나, 군부는 거의 모든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여 장기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물론 아웅산 수치 여사도 가택연금령으로 인해 외부와의 제한된 접촉만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2007.
그러나 이후에도 미얀마의 상황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행정 수도 이전으로 인한 비용지출과 지속되는 자연 재해로 인해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군부는 8월 15일 갑작스럽게 국유화되어 있던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을 인상합니다. 결국 승려들은 수만명의 군중을 이끌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주도하였습니다. 외신들은 승려들의 옷 색깔을 따 ‘샤프론 혁명’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실탄을 발포하고 잔혹한 구타를 하며 그들을 진압했고 이 와중에 많은 승려와 시민들이 다치고 연행되었습니다. 진압과정에서 약 100여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를 피격하고, 양곤의 인터넷을 차단시키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그 실상을 감추기 위한 비인도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
2010.
다가오는 11월 7일 드디어 미얀마에서는 선거가 실시됩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아웅산 수치 등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을 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새 선거법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예전부터 민주화 운동에 힘쓰던 많은 이들을 선거에서 배제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결국 민족민주동맹은 총선 참여 거부를 결정하고 해산되었고, 일부 구성원들이 새로이 정당을 결성해 총선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수 많은 등록정당이 난립하여 집권당이 어려움없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
또한 민간인에게 주유소를 이양하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11월 이후에 석방하겠다는 등 자국민과 국제사회를 의식하는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 예전과 같이 폐쇄적인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선거는 어떻게 치루어질까요. 과연 미얀마에도 ‘봄’은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