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태죄’ 폐지: 국내외 여성들이 함께 이룩한 위대한 승리
‘낙태죄’ 폐지를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67년 동안 ‘낙태죄’나 임신중지의 문제가 사회 주류 담론으로 가시화된 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많은 여성 단체와 여성 인권 활동가, 여성주의 학자들이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싸웠다.
2019년 낙태죄 위헌 시위에 나온 한국 여성들
2019년, 낙태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국제앰네스티는 전세계 여성들과 여성 인권 옹호자들에게 연대의 목소리를 요청했다. 한국의 ‘낙태죄’ 폐지를 위해 폴란드에서부터 아일랜드, 덴마크, 페루, 대만, 호주, 아르헨티나, 홍콩, 몽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한국의 ‘낙태죄’ 폐지를 위한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2018년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하는 수정 헌법 조항을 폐지한 아일랜드에서 그레이스 윌렌츠Grace Wilentz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 캠페인·조사 담당관도 한국을 방문해 시민사회, 국회의원, 법무부,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나 ‘낙태죄’ 폐지를 위한 촉구의 목소리를 더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며 2020년 12월 31일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함께한 모든 여성들이 이룩한 위대한 승리였다.

2020년 10월 제한적인 모자보건법 개정에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여성들
‘낙태죄’ 폐지 후, 우리의 현 주소
하지만 헌재의 결정이 있고 ‘낙태죄’가 형법에서 삭제된 2021년 1월이 오기까지, 1년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이 승리의 크기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역시 목도했다. ‘낙태죄’ 문제와 임신중지의 문제는 여전히 한국에서 당연한 인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2020년 10월 7일 법무부는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신, 임신중지 허용 요건을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의 내용에 따르면 임신 14주 이내의 경우에만 임신부의 요청에 따라 임신중지가 가능하고 24주 이내의 경우 사회, 경제적 사유 등 일정한 사유가 있어야만 임신중지가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형법상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국제인권규범과 기준, 법무부의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 권고, 시민 사회 단체의 끝없는 목소리를 모두 무시한, 퇴행적 결정이었다.
2018년 낙태죄 폐지 시위에서 ‘My body, My choice’ 푯말을 들고 있는 한국 여성
국제앰네스티는 2020년 11월, ‘낙태죄의 완전 삭제’를 촉구하는 법률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국제인권규범과 기준은 임신중지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당연한’ 인권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 정부는 여성의 성과 재생산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온전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총 5건의 관련 법안이 올라왔지만, 어떤 법안도 헌법재판소에서 고지한 입법 시한 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결국 ‘임신중지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계획이나 여성 건강을 보호하는 대체법, 세부 규정 없이 2021년 1월 1일을 맞이하게 됐다.
형법으로서의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적극적이지 않은 정부의 태도와 입법 공백에 의한 혼란은 대한민국 여성 개개인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산부인과별로 수술 여부나 가격이 제각각이고, 병원 역시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어 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018년 아일랜드, 2020년 아르헨티나, 2021년 한국에 이르기까지 임신중지 비범죄화와 합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성과 재생산권을 위한 여성들의 싸움은 시간과 국경을 넘어 지속적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폴란드에서는 2020년 10월, 사실상 모든 경우의 임신 중지를 금지하는 헌법 재판소 결정이 내려졌다. 폴란드 여성들이 연일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3개월의 연기 끝에 2021년 1월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발효됐다. 여성의 인권을, 여성 개개인의 권리를 폭력적으로 침해하고 재단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일랜드의 변화가 한국의 변화를 위한 연대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에서 아르헨티나의 변화를 위한 연대의 목소리가 모였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에 반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 모든 행동은 또 다른 변화를 위한 동력이 되고 연대가 된다. 5년, 10년 후의 나를 위한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같은 다른 대륙을 위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전 세계 여성들이 진정한 인권을 보장받을 때까지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끊임없이 새 힘을 받아 몰아치는 파도처럼 우리의 파도는,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Women Against ViolencE은 멈추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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