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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여성 청소년, 권리로서의 성적 권리에 대해 말하다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Women Against ViolencE

여성 청소년, 권리로서의 성적 권리에 대해 말하다
‘위티’ 김윤정 활동가 기고문

 

여성 청소년들은 성적 권리 Sexual Rights의 ‘주체’로 인식되기 보다는 ‘무성적 존재’ 혹은 ‘피해자’로만 인식됩니다. 우리는 여성 청소년의 성性이 금기가 되는 세상을 거부합니다. 모든 여성 청소년들은 어떠한 공포나 강압, 차별 혹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성적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활동가를 만나 여성 청소년의 목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성적 권리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성적 권리가 침해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명쾌한 답은 어쩌면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기본권을 침해 받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귀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존재들이 있다.

‘성인'(이하 비청소년)이 ‘된’ 지 몇 년이 흘렀다. 분명 어딘가에서 ‘비청소년이 된다는 건 자신의 일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오롯이 지는 일’이라는 문구를 읽었던 것 같은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우선, ‘갑자기 삶을 다 책임지라니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함이 들었고, ‘그럼 청소년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는 건가’ 하는 분노가 울컥하고 일었다. ‘선택’과 ‘책임’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 ‘말 없는 말’은 이토록 공허하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이제 내가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 때는 어느 늦여름, 정규 고등학교에 자퇴(이하 탈학교)서를 접수하고 서 있었던 교정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때의 나는 지금만큼이나 삶에 신물이 난 상태였다. 원치 않았던 시간에 고른 적 없었던 학교를 다녀야만 했고, 만날 계획 없던 사람들과 같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웃으며 친해져야만 했으며, 정규 수업을 하루 약 일곱 시간 앉아서 듣거나 수업에 적응하지 못하면 ‘진로탐구반’ 같은 곳에서 피자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삶에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탈학교란 인생 최초로 거머쥔 ‘성공’과도 같았다.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후회하지 않아?”

후회는 대개 선택에서 비롯된다. 나는 선택의 근거를 후회에서 찾곤 했다. ‘이렇게 하면 후회할까?’, ‘이걸 택하면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게 후회의 유무에 근거해 접어들었던 길엔 모순적이게도 후회의 자리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답했다.

“후회 안 해”

애초에 내게 보기가 두 개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은 건 탈학교 한참 이후의 일이었다.

– 보기 -① 학교를 계속 다닌다.
② 탈학교한다.

시험을 볼 때 정말 모르겠는 문제는 소거법으로 풀었었기 때문에, ①은 아닌 것 같았던 나는 ②를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시험 문제처럼 보기가 다섯 개쯤 되었다면 다른 번호에 펜을 그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삶은 시험 문제가 아니었을 뿐더러 한 번의 체크로 정답과 오답이 결정되는 시스템도 아니었다. 이질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했다. 나는 왜 선택지 바깥의 것은 상상할 수 없었을까? 선택지 바깥의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예’와 ‘아니오’, ‘이것’과 ‘저것’이 아닌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잠을 자거나 자지 않거나, 누군가와 밥을 먹거나 안 먹거나의 문법을 넘어, 영화 혹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콜라와 물 대신 사이다를 먹는 것에 몸을 던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나는 “후회 안 해”라던 대답에 이어 말해본다. “다만 내가 다른 선택지를 알지 못했었다는 게 아쉬워. 이것이 아닌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게 부조리해.”

“우리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여성) 청소년에게 성을 격리시키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또한, 나이, 젠더, 사회적 권력 등의 위계에 기반해 이루어진 성착취를 피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시도에 반대한다. (…) 문제의 원인은 피해자가 아닌, 공고한 성착취 카르텔과 강간문화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 모습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 모습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존엄한 권리이자,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다. 이는 원치 않은 섹스를 ‘거부할 권리’를 넘어, 자신의 몸에 대해 자유롭게 탐구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성적 만족을 얻을 권리다.더 나아가, 평등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성을 접할 권리이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운용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것’이 아닌 다른 시공간을 상상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여성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될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삶의 지속성에 대한 감각이자 살아있고 살아가는 것으로 존재할 수 있을 기반이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동등한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돌봄과 보호가 시혜 아닌 일상이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성적 권리는 누구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미 지니고 있고 그렇기에 보장 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성적 권리를 권리의 바깥으로 놓으려고 할 때 우리의 논의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동의의 유무 혹은 동의라는 능력’ 등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 한정된 논의 속에서 여성 청소년은 주체 아닌 주체, 거절해야 했지만 동의에 대한 능력은 소거 된 존재 혹은 무성적 존재로 위치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위치지어진 여성 청소년의 삶은 부조리하며 동시에 계속해서 부조리함을 강요 받는다. 둘 중 하나라는 그 ‘선택지’는, 아무것도 보호할 수 없다.

“이것이 아닌”의 ‘이것’은 ‘선택지’를 의미한다. 이 틀거리 자체를 이제 우리는 부수어야 한다. 오늘도 살아감으로 균열을 만드는 모든 여성/청소년과 연대하며, 우리는 그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권리로서의 성적 권리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을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알고, 이를 옹호할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습니다.‘성과 재생산 권리’ 라는 이름 자체는 생소하지만, 그것의 속성은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몸과 관계에 대하여 자유롭게 표현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 성과 재생산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 자신의 몸, 건강, 성생활, 성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
  •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정보와 교육, 서비스를 요청하고 받을 권리
  • 피임을 포함한 임신의 여부와 시기를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 원하는 가족의 형태를 선택하고 구성할 권리
  • 강간과 그 외 성폭력 등의 차별과 강요,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전 세계 많은 곳에서는 가족, 공동체, 종교기관, 국가 등이 개인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통제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혹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성과 재생산 권리는 침해되기 쉬운 영역이 되곤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의 몸과 삶에 대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 즉 성과 재생산 권리가 있습니다.

관련하여 국제앰네스티는 청소년(만 16세~19세)이 성과 재생산 권리를 알고 옹호할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아래 설문조사 링크를 클릭하여,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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