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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 캠페인] 연대자_D: 마녀 사냥

2022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국제앰네스티는 <WWW: We’re the Watching Witches #마녀들의 시선>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동시대의 지배적인 성 고정관념을 뒤엎는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우리는 움츠러들지 않고 ‘마녀’가 되기로 했습니다. 여성을 옥죄어온 시선에 움츠러들지 않고,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와 그가 사는 세상을 노려볼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와 관련한 연대자 D의 기고문입니다.

마녀, 사냥

연대자 D

2010년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가해자를 법정에 세워 실형을 끌어내기까지 나는 ‘예민하고 끈 질긴 미친년’이었으며, ‘마녀’이자 ‘꽃뱀’으로 몰렸다. 가해자를 직접 처단하지 않고 형사사법 절차를 이용하기로 한 결정이 내가 할 수 있던 최대한의 관용이었음에도 그런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사냥을 당하고 화형대 위에 올려졌던 것이다. 재만 남은 상태로 세상에 던져진 나는 다른 피해자들은 나같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덜 겪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녀’라는 익명의 개인활동가로 이 세상에 다시 나섰다. 사냥을 당하던 객체가 아니라 사냥을 하는 주체로 서기 위해서다.

다양한 성폭력 사건에 연대하던 중 2015년 이후 반디지털성폭력 운동을 하는 많은 ‘마녀들’과 만났다. ‘소라넷아웃’을 시작으로, ‘DSO’,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익명의 반디지털성폭력 활동단체의 등장, 2018년 ‘불편한용기’라는 이름으로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여성들을 기억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불리는 이 마녀들이 벌이는 각종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보탰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법원의 변화는 더디기만 했고 그 사이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한국남성들은 발달한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착취•성폭력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2019년 10월 ‘세계 최악의 아동 성착취 사이트’로 명명된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에 대한 미 법무부 공소장이 공개되면서 1996년생 한국의 손정우가 ‘다크웹’을 이용해 저지른 디지털 성범죄가 한국에도 알려졌다. 판결문을 찾아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 (한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치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이기 때문에 신상공개가 결정된 범죄자가 아닌 이상 언론에서 범죄자 실명을 언급하지 않는다)한 것을 시작으로, 2019년 여름 추적단불꽃에서 시작한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착취•성폭력 사건들을 알리는 데 동참했다. 그해 겨울 ‘리셋’이 등장하면서 한국의 반디지털성폭력 운동은 수사•재판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형사사법절차를 정조준했으며, 이미 사법 시스템을 이용한 반성폭력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더 할 수 있는 일, 더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라는 해시태그가 SNS를 휩쓸었다. ‘n번방’과 ‘박사방’ 일당들의 범죄가 자극적인 표현을 내세운 언론들의 경쟁적 보도로 대중에 알려졌으며, 관련된 각종 청원이 이어졌다. 정부는 그제서야 부라부라 대책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국회는 일명 ‘n번방 방지법’을 만들었으며, 수사기관은 미적거리던 수사에 고삐를 채웠다. 법원은 뒤늦게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만들고 작량감경(정상참작 감경)을 남발하던 관행을 깨기 시작했다. 변화 움직임이 있을 때 형사사법절차 전반에 대한 감시를 이어나가 실질적인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방청연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 법원을 돌며 교육을 하고, 서울, 인천, 수원, 춘천, 창원, 대구, 부산, 울산,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진행되던 디지털 성범죄 재판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하며 SNS를 적극 활용해 그 내용을 알렸다. 일부 사건, 일부 범죄자에게만 관심이 집중된 한 때의 가십으로 소비되길 원하지 않았다.

증거조사방식에 대한 비판, 판결문 분석 등 인상비평에서 나아간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비판과 대안제시까지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이런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양산한 토대가 되었던 기성세대의 디지털 성범죄도 지속적으로 추적했다. ‘n번방’과 ‘박사방’ 등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이물질이 아니다. ‘소라넷’, ‘AV스눕’, ‘웹하드카르텔’ 등으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의 디지털 성범죄가 이들을 양산한 토대였던 것이다. 관련 사건들을 정리하고, 진행 중인 재판을 체크하면서, 모든 책임을 특정 세대에게 돌리고 면피하려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도 함께 해나갔다. ‘정보’와 ‘기록’은 피해자를 옭죄는 흉기가 될 수도 있지만, 가해자를 사냥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반디지털성폭력 활동을 하며 감시, 기록, 목격을 하는 ‘마녀들’을 영입하고 그들과의 협업을 지속한 이유다. 사적 제재를 하지 않고 합법적 영역에서 사냥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그들과 활동가를 연계하며, 진입장벽이 높아 망설 이는 일반인들을 사법감시 운동의 주체로 바꾸는 작업까지 뒷받침되어야 했다. 번아웃 상태에서 활동을 중단하려던 생각을 바꿔 전국을 돌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를 활용해 활동을 이어 나갔다.

‘회복 불가능한 피해’라는 문구는 판결문에 관용적으로 쓰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성착취•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삶은 피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변화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죽음으로 몰려갈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디지털 성폭력은 ‘끝’을 장담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체포되거나 죽어도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다.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상태로 늪에 빠져 있는 피해자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다. 그런 피해자들이 반디지털성폭력 운동에 나섰다. 자신이 겪었던 피해를 복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데도 그들은 다른 피해자를 위해 언론과 접촉하고, 재판을 방청하며, 시스템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해 나갔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들이 오염시킨 이 사회를 정화하기 위해 마녀들이 나섰다. 시대를 앞서 나간 지식인이자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활동가였기에 사냥을 당했던 ‘마녀들’이 이제는 그 이름으로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사냥을 시작했다. 디지털 성착취•성폭력을 쾌락과 응징, 각종 이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는 디지털성범죄자들과 사회의 저항은 거세며, 마녀들의 사냥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저절로, 알아서, 당연히 오는 게 아니다. 조급해 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를 전하자. 우리는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살아 있으며, 살아낼 것이다. 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성폭력활동가_연대자D

연대자 D

참여소감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서 연대자이자 활동가로 사법시스템을 감시하는 기록자, 연대자 D입니다. 사냥을 당해 숲으로 쫓겨났던 마녀가 사냥을 하는 주체로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왔습니다. 디지털성폭력으로부터 이 사회를 정화하기 위해 더 많은 마녀들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우리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국제앰네스티와 마녀들은 거대한 플랫폼이나 집단 속에 숨은 가해자들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국제앰네스티 뉴스레터를 구독해 또 한 명의 마녀가 되어주세요. 함께 가해자를 노려보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세요.


WWW: We are the Watching Witches
우리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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