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 블로그 인권교육

어린이 청소년이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

<너의 권리를 주장해> 릴레이 서평 시리즈 (3)
정민석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띵동활동가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띵동활동가들

‘차별과 혐오’라는 주제로 강의 요청을 해 온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많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유로 예정되어 있던 강의가 취소되었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부담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선생님 앞에서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 반대하는 사람이 있구나’ 무엇보다 우리 사회 다양한 문제들을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인문학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저보다 그 선생님이 느낀 아쉬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지난 4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을 후원하는 교사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띵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성소수자 학생의 지지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기에 서로의 용기를 북돋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여한 교사들은 인권을 말하기 쉽지 않은 학교 분위기를 우려했고,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종합계획 강력촉구 기자회견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종합계획 강력촉구 기자회견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

학교에서 혐오가 쉽게 용인되고, 때론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도, 바꿔보려고 하는 노력은 매우 제한적인 것 같습니다. 혐오가 개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고, 자유라는 감투를 쓴 채 공동체 공간에서 거침없이 표현되었을 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청소년들은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혐오표현으로서 등장했을 때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강요당한 침묵 앞에 자신이 드러날까 두렵고, 차별을 감내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존감은 낮아지고, 때로 자신을 부정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띵동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위기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2015년 설립되어 현재까지 같은 자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매년 400건 이상 되는 상담이 접수되고 있고, 3천 건 넘는 상담 기록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해왔던 차별의 무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전화, 방문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혼자 고민하고, 고립되어, 전쟁과도 같은 일상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차별의 경험은 몸과 마음에 상흔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신체적인 폭력만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침묵도 고통과 맞닿아 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살, 자해 위기가 높다는 연구 결과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에 축하란 단어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족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또래 친구와의 관계가 단절되기도 하며, 심지어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커밍아웃도 쉽지 않습니다.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청소년은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디스포리아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살 자해 위기에 더 노출되고 있고, 학교생활의 어려움으로 학업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원가정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주거형태란 거의 없습니다. 성별로 나뉜 쉼터의 문 앞에서 다시 한번 좌절을 경험해야 하고, 하룻밤 배려로 잠을 청한다 하더라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든, 가정이든, 청소년 시설이든, 남녀라는 성별로 나뉜 세상의 벽은 견고하기만 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결과보고회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결과보고회

현실과 권리의 간극 사이에서 <너의 권리를 주장해>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인권 가이드 <너의 권리를 주장해> 발간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책 속에 담긴 권리 항목을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차별과 혐오 앞에서 주눅 들어있는 이들에게, 디스포리아로 심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정체성 때문에 집을 떠나야 하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위기는 결국 권리를 인식하고 주장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인권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너의 권리를 주장해>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책입니다. 30여 년 전 태어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기반으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권이란 ‘완성형’이 아니고,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인권의 자리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진행형’임을 환기시켜 줍니다. <제2부 여러분의 권리 이해하기>에선 권리와 현실 사이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원칙을 소개하는 동시에, 여전히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매섭게 꼬집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행동하기 :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해야만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어린이 청소년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을 소개하며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보다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줍니다. 국경을 넘나들며 나와 같은 나이, 나와 같은 고민,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어린이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유보된 권리가 바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임을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라면, 대륙이 달라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결국, 이 책은 ‘넌 혼자가 아니고’ ‘충분히 권리를 가진 존엄한 사람임을’ 용기와 사랑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권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리를 침해받을 때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친절히 소개하며,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특권을 인식하고, 토론하고, 반박하고, 조사하고, 발언하면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부터 변화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주장하기’는 곧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을 미성숙한 존재로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옮겨 놓습니다.

이 책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되면 존엄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흔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나 자신이 정말 다양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책이 비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도 닿길 바랍니다. 이 책을 통해 평등의 가치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어린이 청소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끔찍한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의 권리를 주장해> 이 책은 어린이 청소년이 존중받는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 길에 들어서면 현실과 권리의 간극에서 ‘진화하는 능력’을 가진 당신의 힘이 더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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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입체 버전, 회색 바탕에 노락색 포인트 박스가 있고 박스 안에 너의 권리를 주장해라는 타이틀이 써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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