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서경,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기후위기는 미래세대의 문제인 동시에 지금 존재하는 불평등의 문제이다. 지금도 날씨는 더 더워지고, 더 추워지고, 비가 안 오고, 비가 더 많이 오고. 극단적인 날씨의 연속은 전염병, 식량위기, 빈부의 양극화를 야기한다. 기후위기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기후대응을 요구하는 것 역시 먼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이라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존재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동을 미래형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나중에나 가능한 것처럼 말이죠. “네가 어른이 되면 그때…. 할 수 있어.” 그러나 아동권리협약은 세상이 어른의 시선에만 주목한다면 아동의 시선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타당하고 고유하며, 중요한 통찰력을 바로 지금 지니고 있습니다.
– 『너의 권리를 주장해』 (p. 35)
우리의 권리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권리가 지켜져야 하는 건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지기에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 동시에 주체로서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기후위기에 적용했을 때도 비슷하다. 기후위기는 지금 당장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최대한 노력해야 대응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가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지 않다. 미래세대를 위해서 행동한다고 하면서 정작 미래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의견을 묻지 않는다. 대학에 가서, 전문가가 되어서 해결하라고 한다. 그때까지 우리, 어른들은 너희, 청소년들을 교육시키고, 계몽시키고, 가르치겠다고.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온도는 약 1.1도 올랐다.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 IPCC는 지구의 평균온도가 1.5도가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라고 보고서를 통해 설명했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2도, 가능하면 1.5도 이내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막자고 약속했고 2018년 특별보고서 채택을 통해 1.5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마지노선이 되었다. 그런데 그 어떤 나라도 1.5도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만들지 않았다. IPCC의 보고서가 발행될수록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줄어들기만 한다. 그런데 지금의 청소년이 어른이 되었을 때 기후위기를 막을 기회가 남아 있을까? 지금 행동했을 때 위기를 막을 가능성과 어른이 되었을 때의 가능성. 당연히 지금 당장 행동하는 걸 선택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늦었다는 사실을 과거의 기후운동이 뒷받침한다. 위기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는데 어른이 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함께하기에 세상이 변한다는 걸 느끼는 순간
『너의 권리를 주장해』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는 연대이다. 무력한 개인이 거대한 문제를 마주했을 때 연대를 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우리의 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연대하기에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8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금요일마다 결석시위를 시작한 이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청소년들의 기후운동은 들불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도 2019년 3월 15일, 첫 기후파업(결석시위)*을 시작으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의 한국지부인 “청소년기후행동”이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이하 청기행은 1.5도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정치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당사자 단체이다. 청소년이든 청소년이 아니든 누구나 동등하게 활동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존재한다.
청소년의 이름을 건 단체가 활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청소년은 시위의 권리조차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후파업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무단결석 대신 체험학습을 이용했다. 우리의 목적은 학교와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가 이런 청소년들의 행동을 지지해주길 바랐고 그에 따른 가이드를 배포하기도 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고 내가 그 자리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시켰다. 실패도 있었지만 조금씩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성공에 도달한다.
나는 2019년 9월 기후파업에 참여하기 위해 체험학습을 신청했고 반려당했다. 체험학습의 사유로 시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시위에 나가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네가 나가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불이익은 알아서 감당해라. 누가 보아도 협박하는 모양새의 말에 학생인 나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기후파업 당일날 아침, 출석 체크를 하고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무단조퇴를 감행했다. 그날 나는 성명서를 전달하기 위해 찾아간 청와대 비서관에게도 결석하는 건 학생 본인이 알아서 감당해야 할 몫이며 학교에서 학생이 시위를 나가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 정도는 알아서 책임질 나이 아닌가?”라는 말이 참 우스웠다.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건 권리 없는 책임뿐이었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학생이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기후위기와 같은 일에 나서는 일은 충분히 교육의 일환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청소년의 사회참여권은 교육의 일환이며 당연히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였다.
청기행은 2019년 3월 첫 기후파업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캠페인을 벌이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다. 교육청을 대상으로 석탄투자를 하지 않는 은행에 예산을 맡기는 탈석탄 금고와 청소년의 사회참여권을 요구하였고 실제 그에 맞는 조례나 선언이 나왔다. 사회가 우리에게 허용하는 권리는 작은 실천 정도였다. 분리수거를 하고 텀블러를 쓰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기후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축소된 우리의 권리를 인지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았다. 국회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해 법안이 제정됐으며 해외석탄투자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이끌어냈다. 국내의 기후위기 관심도를 올렸고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게 만들었다.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 움직임을 촉구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작은 실천만이 정답이라는 주장을 부정했다. 어른이 되는 걸 기다리지 않아도, 지금 당장 내가 청소년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결과로 증명했다.
변화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아름답지는 않았다. 청소년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는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기에 변화를 만들기 위한 영역에 미숙했다. 기후위기는 여전히 거대한 문제다. 사회문제라는 게 대개 그렇듯 문제가 너무 거대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도 처음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서 뭘 하면 되지?”라는 질문을 마주했다. 시위를 하면 되나? 그런데 시위를 어떻게 하지? 시위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나?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책을 봐도 어려웠다. 청소년의 활동을 도와주는 가이드북을 찾기 힘들었다. 있어도 해외의 사례가 대부분이라 국내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야하는지 참 많이 헷갈렸다. 『너의 권리를 주장해』도 국내의 사례를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청소년 활동가에게 완벽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포괄적인 모든 문제에 있어 아동이, 청소년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제이미 마골린의 『세상 좀 바꾸고 갈게요』와도 비슷한 부분인데 캠페인을 어떻게 준비하지,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편지는 어떻게 쓰고 누구와 연대할 수 있는지 등 꽤나 자세한 방법을 알려준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진짜 캠페인을 준비하기는 어렵지만 “캠페인을 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핵심적인 메시지를 정한다. 캠페인의 방식을 고민하고 타깃을 설정하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캠페인을 참여할 때도 필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가령 시위 준비는 어떤 시위든 필요한 가이드이다. 시위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당일에는 항상 놓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니 체크리스트에 참고해도 좋지 않을까.
모든 걸 책에 의지할 수는 없겠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사례는 우리가 만드는 변화의 가능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를 믿으며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하고 싶다면?
– <기행레터> 구독: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32321
– 홈페이지 https://youth4climateaction.org/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outh4climateaction.kr/
– 트위터 https://twitter.com/youth4climatekr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uth4climateaction.kr/
관련 글
- 캠페인 국제앰네스티 x 안젤리나 졸리 - 너의 권리를 주장해 2022.05.04
- 블로그 “너의 권리를 주장해” 안젤리나 졸리, 한국 청소년 활동가 대담 인터뷰 2022.05.05
- 블로그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전 세계 어린이·청소년 시민과 책을 통해 연대합니다! 2022.05.12
- 블로그 가려지는 것들: 여성 청소년의 강인함, 주체성, 그리고 성적 욕망 2022.05.13
- 블로그 어린이 청소년이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 2022.05.24
- 블로그 아동인권의 실현은 인권의 역사와 함께한다 2022.05.24
-
캠페인 |
2022.05.04
국제앰네스티 x 안젤리나 졸리 - 너의 권리를 주장해
-
블로그 |
2022.05.05
“너의 권리를 주장해” 안젤리나 졸리, 한국 청소년 활동가 대담 인터뷰
-
블로그 |
2022.05.12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전 세계 어린이·청소년 시민과 책을 통해 연대합니다!
-
블로그 |
2022.05.13
가려지는 것들: 여성 청소년의 강인함, 주체성, 그리고 성적 욕망
-
블로그 |
2022.05.24
어린이 청소년이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
-
블로그 |
2022.05.24
아동인권의 실현은 인권의 역사와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