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이전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누릴 권리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 중의 하나이다. 세계인권선언, 자유권 규약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한 합법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나라 내에서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누리고, 자국을 포함한 어떠한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와 자국으로 복귀할 권리를 가진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자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가 불가능한 삶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자전거를 탄 북한 주민
명목상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는 북한의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사회주의헌법 제75조는 “공민은 거주, 려행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북한에는 헌법에 상위하는, 당과 최고지도자에 중심을 둔 절대적 규범들이 존재하기에 필요에 따라 이러한 내용이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북한 주민들이 일상 속 이동과 거주와 관련해 마주하는 다양한 제한 사항을 감안할 때, 이는 헌법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마련된 명목적 조항에 불과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북한의 통행금지 표지판
제한된 이동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특히 이동의 측면에서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제한을 면밀히 살펴보면 북한이 얼마나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억압이 일상적으로 만연한 나라인지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은 당국의 허가 없이는 국내외 어디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하기 어렵다. 먼저, 국내의 경우 일반 사람들이 타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평양, 라선과 같은 일부 특수 도시나 국경 지역으로의 방문은 더욱 엄격하게 통제된다. 또한, 해외로의 자유로운 출국은 사실상 상상하기 어려우며, 해외에서 본국으로의 복귀도 국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국내외에서의 이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이동 중인 북한 주민
국내 이동의 실상
몇몇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을 보면 북한 주민의 국내 이동은 얼핏 특별한 제한이 없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타지역으로의 이동을 허가하는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은 뇌물이 일상인 북한의 특성상 담당자에게 뇌물을 공여할 경우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일부 북한 주민들은 뇌물을 통해 별 어려움 없이 다른 지역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거나 이곳저곳을 오가기도 한다.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나르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 더해, 자동차를 사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당국에 맞서 탈법적인 수단을 통해 자동차를 보유, 운용하는 개인 운송업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행동 반경과 타지역으로의 이동 빈도도 한층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뇌물과 돈, 탈법 행위가 전제되었을 때나 예외적으로 가능한 모습일 뿐이다. 국가안보,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같은 중대한 목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개인의 이동이 당국에 일일이 허가 받게끔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 일반적인 수준의 통제를 과도하게 넘어선 인권 침해라고 말할 수 있다.
평양의 도로 풍경
일상이기에 더욱 소중한 가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한국지부가 만나 온 다수의 탈북인들은 북한을 떠난 후 느꼈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로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점을 꼽았다. 국가의 허가를 구할 필요 없이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국내외 여행을 할 수 있는 점’이 바로 이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자유인 것이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삶을 일상적으로 누려 온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지는 소중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통제된 삶을 살아온 북한 사람들에게 본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환경은 분명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의미일 것이다.
아래는 한국지부가 탈북인과의 심층 면접을 통해 나눈 대화 중 북한 내 이동의 자유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내용이다. 탈북인의 진술을 통해 북한 주민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이동 제한을 살펴볼 수 있음과 동시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려온 이동의 자유가 우리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에는 어떠한 자유도 없다. 이동하는 것조차 제한된다. 내가 평생 살면서 기껏 가본 곳이라고는 △△시 바로 근처에 있는 □□군에 위치한 언니네 집이다. 멀지 않은 곳이지만 이곳에 가려면 여행증명서를 받아야 했다. 증명서 없이 갈 경우 숙박검열에 걸려 벌금을 내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마다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 언니 집이나 어머니 집 가는 것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만 봐도 너무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은 (양강도 혜산에서) 보천, 대오천 쪽으로 간 적이 있다. 그쪽으로 갈 때는 여행증명서가 필요 없었다. 같은 양강도라서 그런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던가 걸어가면 된다. 하지만 도끼리 이동할 때는 여행증명서가 필요하다.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에 군대 경비초소가 있어 군대가 지키고 있다. 거기에서 차 안에 이상한 것이 없는지 검열하고 보내고 그런다. 트럭, 써비차 그런 차를 타고 지역을 이동하고는 한다. 혜산에서 평양 쪽으로 가려면 이틀 정도 걸린다. 가기 전에 필요한 서류들이 엄청 많다.
보통 어디 갈 때 일반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잘 안 하다 보니 절차도 잘 모르기도 하고 여행증명서 떼는 것이 힘들다. 동사무소를 거쳐야 하고 지역 반장, 담당 보안원 등등 다 거쳐야 한다. 물론 돈(뇌물) 주고 여행증명서를 바로 떼기도 하지만 돈 안 주고 떼려면 복잡하다.
나는 철도 검열원으로 일했다. 북한은 어디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여행증명서가 필요하다. 증명서가 없으면 어디로 움직일 수가 없다. 차를 타자면 차표를 떼야 하는데 증명서가 있어야만 차표를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증명서가 없기에 차표도 없다. 그래서 무임승차로 기차에 타곤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단속하는 일을 했다. 단속실로 단속된 사람들을 데리고 온 후에는 조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단속된 사람에게 ‘너는 벌금 얼마다’는 식으로 말해주고 벌금을 받았다. 벌금을 받으면 벌금 영수증을 써주고 보냈다. 그런데 벌금이라는 것이 정해진 게 없었다. 그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그때그때 원하는 액수를 불렀다. 보통 그렇게 받은 벌금 중 얼마는 나라에 바치고 얼마는 검열원이 가졌다.
평양가는 것이 조금 힘들 뿐이다. 다른 도(道)로 이동하는 것은 신고를 하고 승인이 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로 갔다 올 수 있다고 적혀진 통행증을 발급받으면 된다. 통행증이나 여행증명서나 같다. 정식 명칭은 여행증명서이고 민간에서 그냥 말하는 것은 통행증이다.
이동이 제한되어 있는 것 맞다. 보통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여행증명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함경남도 안에서 내가 사는 ◇◇군에서 외가가 있는 ○○시로 갈 때에는 원칙적으로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자주 가야할 경우 매번 갈때마다 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번거로우니까 그럴 때는 공민증(신분증)을 챙겨서 이동하면 심하게 제재하지는 않았다. 다른 지역이기는 하나 어쨌든 같은 도내 이동이고 40km 정도 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보니 정세가 긴장되는 시기에 숙박검열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정세가 긴장되는 시기에는 다른 지역에서의 숙박은 피하고 당일 갔다가 돌아오는 식으로 해야 했다.
여행증명서가 필요한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같은 지방, 예를 들어 양강도 안에서 어디 가는 거면 필요 없는데, 국경 같은 곳은 증명서가 필요하다. 국경에 갈 수 있는 증명서는 또 따로 있다. 연선지대는 무조건 증명서가 있어야 갈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평양 다닐 때는 사업 용무로 출장증명서를 받았다. 사업 용무가 없으면 돈(뇌물)을 주고 뗀다.
다른 지역으로 가는 증명서를 떼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한국과) 전화 통화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함경북도 □□까지 이동할 수 있는 증명서를 떼어 오게 한 다음, 내가 □□까지 그 사람을 마중 나가서 기차로 ○○으로 데리고 왔다. 거기서부터는 승차 보안원, 즉 철도 경찰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동행하는 사람에 대해 ‘내 사촌 동생인데 ○○에 뭘 사러 가는 중’이라고 둘러대곤 했다. 물론 뇌물을 다 고여야 한다. 매번 돈을 써야 하는 것이다. 갈 때는 갈 때 대로, 올 때는 올 때 대로 뇌물을 줘야 한다.
라선은 자유경제무역지대라 평양보다 더 가기 힘들다. 타지방 사람이 라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증명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증명서를 잘 발급해 주지 않는다. 라선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그렇다. 라선 시민이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은 쉽다.
청진에는 장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에서는 청진이 장사를 위한 집결 장소이다. 사람들이 대체로 라선까지 들어가지는 못하다 보니까 청진으로 모인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은 거진 다 라진으로 들어와서 청진으로 넘겨온 후 팔린다. 그래서 평안남도, 평안북도 그런 쪽 사람들은 라선까지 갈 증명서도 떼기 힘들고 하니까 라선에는 못 들어가서 청진까지만 와서 사 가곤 한다. 라선에서 중국 돈 50~60위안[1]에 살 수 있는 물건을 청진에서는 100위안에 판다. 그런 식으로 되걸이(되팔이) 하는 사람도 청진에 많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평양을 간다고 하면 증명서 떼는데 중국 돈 100위안 정도 든다. 증명서는 보안서(경찰서)에서 받을 수 있다. 증명서는 접혀 있는데 그 접힌 사이로 중국 돈 100위안을 넣어서 주면 보안원이 모르는 척 받으면서 “네~ 어디죠?”하면서 절차를 밟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그리고 도장 딱 찍어서 준다. 원칙적으로는 발급받는데 돈이 들지 않는다. 즉, 이건 뇌물이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시비를 많이 건다. 그래서 군소리 듣기 싫어서 뇌물을 주고 발급받는다.
나는 써비차를 타고 혜산에서 평성까지 간 적이 있다.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평성에 사는데 생일이라 갔다. 갈 때는 중국 돈으로 150위안을 줬다. 큰 돈이다. 평성에 갈 때도 여행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가는 길 마다 초소가 다 있기 때문에 검사한다. 일반적으로 여행증명서를 떼자고 하면 못 뗀다.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래서 돈 주고서 증명서를 뗀다. 여행증명서에는 기간이 있다. 증명서는 시 안전부(보안서)에서 뗀다.
북한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증명서를 발급받는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일주일, 보통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린다. 하지만 나는 북한에 있을 때 발급 담당자에게 20달러를 찔러주고 당일 그 자리에서 받았다. 물론 이렇게 받는 건 불법이다. 근데 보통 이렇게 다 한다. 예전부터 돈만 주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국처럼 자기가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건 가능했다.
한국은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만 북한 사람은 외국에 나갈 수 없다. 돈을 써도 못 나간다. 오로지 나라에서 허가를 내줘야만 나갈 수 있다. 보통 북한에서 일반 사람이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경우는 소련 벌목공, 중국 식당 종업원과 같이 나라의 외화벌이를 위한 것이 전부다.
한국 사회에 정착한 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일단 편하다. 내가 할 일만 하면 자유가 주어지기에 좋다. 한국에서는 자유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내가 놀러 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놀러 갈 수 있는 것이 좋다. 또, 퇴근 후 나를 찾는 곳이 없어서 좋다. 할 일만 하면 술을 마셔도 되고 잠을 마음껏 자도 되고 친구를 만나러 가도 되고 드라이브를 해도 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니 일상생활이 너무 편하다. 북한에 살 때는 밥 먹고 놀러 나가고 싶어도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 없었다. 교통이 불편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동의 자유가 없다.
한국에 같이 들어온 하나원 동기에게 한 달 전(2020년 10월) 들은 내용이 있다. 그 언니가 ▼▼에 있는 자기 남편과 연락하기 위해 남편을 ◎◎ 쪽으로 나오게 한 후 전화 통화를 하려고 시도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지금 북한에는 증명서 없으면 이동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해서 결국 남편이랑 전화를 못했다고 하더라. 원래 ▼▼에서 ◎◎은 50~70리(20~28km) 거리라서 증명서 없이도 그냥 차를 타고 막 다니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19 때문에 검열이 강화되면서 증명서를 반드시 받아야 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뭔가 다 복잡하게 되었다고 한다.
1. ↑ 1위안(CNY) ≒ 193원(KR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