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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부 50주년 기념 릴레이 기고(11월호) – ‘존엄과 평등’

한국지부 50주년 기념 릴레이 기고(11월호) - ‘존엄과 평등’ - 미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던 어느 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들이 농성장을 찾아왔다. 사무처 활동가들이 총출동해 서울 여의도를 ‘들었다 놨다’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인연이 오랜 동료가 따로 인사를 하려다 멈춰섰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를 보다가 나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눈짓으로 겨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 주책없는 눈물을 후회했다. 지금은 서로 용기를 주고받은 시간으로 기억한다. 차별에 맞서 싸우는 동료에 대한 응원이었기에.

우리 사회는 차별을 학습시킨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는 노키즈존이 있고, 나이가 들어 동작이 느려지니 버스에 천천히 탄다고 핀잔을 듣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 과정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학력이 낮다며 승진에서 밀린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욕탕 출입이 제지되고 외국인이라며 코로나19 검사를 강요받는다. 거절당하는 경험을 안기는 사회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프리스비 매장에 들어갈 수 없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한 일이 있다. 인권위는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라고 권고했으나 프리스비코리아는 “진정인 외에 휠체어 이용자가 없었다”며 거부했다. 차별 때문에 방문자가 없었는데, 방문자가 없으니 차별도 없단다.

경사로가 없어서 발길을 돌렸을 장애인이 없었을 리야. 그런데 왜 말하지 못했을까. 거절당하는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는 차별을 주장하기 어렵다.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기에, 조금 속상하고 억울하고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모두에게 익숙한 일상의 구조와 문화에 차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 기어이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공감을 얻기란 어렵다. 사회가 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학습시킨 덕분인지 ‘그것은 차별이 아니다’라는 반박이 거세다. 문제를 지목하는 당신이 예민하다거나 억지라거나 유난스럽다는 비난에 둘러싸이기도 한다. 일터에서 성희롱 문제제기하면 그게 왜 성희롱이냐고 되묻는다. 성희롱일 수 있지만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말린다. 문제가 커지면 네가 더 힘들어질 거라는 걱정을 보태기도 한다.

결국 차별을 말하려면 동료가 필요하다. 너를 함부로 취급하는 세상이 문제라고 말해주는, 당장 바꿀 수 없더라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고 이야기 나눌 동료들이 어딘가에 있다. 조금 고달프고 불안하고 고생스럽겠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아는 속깊은 사람들의 응원이 우리를 한발 더 내딛게 한다. 무례한 사회에서도 환대와 우정의 가능성을 움틔우는 사람들 덕분에 존엄의 가치가 되살아난다. 익숙해진 부정의를 낯설게 할 질문들을 함께 찾는 연대가 세상을 바꾼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엄하다’는 진실을 기어이 망각시키려는 이들도 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와 같은 말이 그렇다. 차별 피해는 불행일지언정 우연히 발생하는 일이니 차별받은 경험을 두고 사회를 향해 목소리 내지 말라는 말이다. 하지만 차별당한 이들의 말하기가 묵살될 때 존엄과 평등으로 함께 나아갈 길은 차단된다.

평등을 익히지 못한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잘못 갈 수 있는지 하루하루 깨닫는 요즘이다. 이루기 어렵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이들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서로를 환대하고 돌보는 사회는 그렇게 시작된다.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50주년을 맞아 ‘모두의 인권, 미래로 가는 용기’란 열쇳말 아래 50년 역사를 되돌아보고 향후 인권운동 방향을 살펴보는 연쇄 기고를 한겨례 오피니언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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