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국가보안법, 그리고 낙인과 공포-왕재산 사건, 피의자 가족 K씨를 만나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안보라는 명분으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인권침해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모호한 법 조항을 담은 국가보안법을 사용해 한국정부가 비판의 목소리를 탄압하고 억누르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박진옥 한국지부 캠페인사업실장은 “안보에 기반한 접근 방식은 ‘공포’와 ‘위험’에 초점을 둔다. 이런 공포를 통해 ‘불안이 증폭된 사회’는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인권의 관점이 사라지고 안보를 논리로 하는 공포를 통한 정치가 인권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혹시 나는 혐의가 없는가, 책을 치우고, 물건을 치우고……1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집을 뒤졌어요. 처음에는 지은 죄가 없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수색을 하던 사람이 서랍 속에 있는 팬티 한 장 한 장을 다 뒤졌어요. 장롱 속에 있던 내 지갑이 나왔어요. 해외 여행 갔다가 남은 현지 화폐들을 혹시 또 여행갈 때 쓰일까 봐 넣어놨던 거거든요. 그걸 좍 늘어놓더니 사진을 찍어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다 싶더니 등골에 소름이 좌르륵 돋더군요. 바로 7~80년대 9시 뉴스에서 보던, 간첩단 사건은 공작금 사진이 머리를 스쳤어요. 그리고 책상서랍에서 제 여권을 꺼내길래 제가 여권을 들고 ‘이것 봐라, 내가 여행을 좋아해서 여라나라 도장이 이렇게 찍혀 있지 않냐, 저돈이 다 그렇게 남은 돈이다’라고 고함을 질렀어요. 들은 척도 않고 다시 여권의 도장들 사진을 찍더군요. 그 때부터 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 선한 눈매의 K씨, 목청 크고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홍대 상수동에 까페나 밥집을 하는 술친구를 여럿 두고 있는,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라는 철학을 가진 그이에게 ‘국가보안법’이라는 공포는 이렇게 다가왔다.

암투병 중이셨던 노모를 모셔야 해서 몇 해전부터 부산에서 작은 식당을 연 탓에 서울에서 IT업체를 하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았다. 하필 이면 그 날도 그랬다. 7월 4일 서울 집에 수색이 들어오던 날, 부산 집도 같이 수색을 당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남편이 잡혀갔다.

‘왕재산 총책 김모씨’의 부인 K씨

K씨는 소위 ‘왕재산 사건’이라 불리는 국가보안법 사건 피의자 김00씨의 부인이다. 일부 언론의 말을 빌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지하당을 구축해 간첩활동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왕재산 총 책 김모씨’”의 부인이다. 또 일부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자면 “북한 당국에서 훈장을 받은 것으로 기술 돼 있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에 올라 1차로 구속 된 5명 중 한 명의 부인이다. 한 국회의원은 “정보 당국에 확인한 결과 지하당 구축과 간첩행위를 지시한 것을 북한의 대남공작 부서인 ‘내각225부’이고, 이와 직접 연계 된 기관이 ‘김정일 정치군사대학’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 기사 모두 정보당국을 출처로 한 보도다.

8월 4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한상대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한 내정자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왕재산 사건은 17년 만에 거둬들인 결과다. 아주 공을 많이 들였다.” 아주 공을 많이 들인 ‘왕재산 사건’의 조직 명칭은 초기 수사에서는 ‘일진회’였다. 몇 십년 만의 남한 최대 지하혁명당 조직이름은 이렇게 갑자기 뒤바뀌어 언론에 등장했다. 8월 11일 현재 50여 명이 소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당한 날을 물었다. 잠지 어두운 얼굴이었다가 빵 터진다.

“뭘 갔고 갔냐면…우리 집에 일본에서 살던 지인이 지진 때문에 잠깐 피난와서 있다 간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낙서 끄적끄적한 종이를 갖고 갔어요. 더 압권인건 ‘말레이시아100배 즐기기’ 그 책 알죠? 그 책 갖고 갔다니깐.”

국가보안법…… 그리고 낙인

그러나 갑자기 환했던 얼굴은 이내 어두워진다.

“수색영장 사본을 보여줬어요. 수색 이유가 나와 있는데, ‘반국가 단체의 수괴’, ‘수십 년 암약’이라는 단어가 지금 명확히 떠오르는 데 완전히 패닉이 됐죠.”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수색하던 사람들이나 국정원, 검찰이 아니었다.

“부들부들 떨었어요. 겁이 났던 게 이제 모든 사람들이 나를 피할 것 같다, 나와 엮이면 자기도 간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쩌나……전화번호도 생각이 안 났어요. 친구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겠구나……일단 정신 없이 무작정 서울로 왔죠.”

소위 국가보안법 사건에 ‘엮이면’ 가장 두려운 것 중에 하나가 주변에서 낙인을 찍을까 두렵다는 거다.

같은 사건으로 구속된 이00씨의 부인도 말을 거들었다.

“집이 수색 받던 날 어디 연락할 데가 없더라고요. 친구들에게 문자를 열 세 통을 보냈어요. 내 남편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있다고 용기를 달라고. 첫날은 안 와요. 엄청 초조해요. 친구들도 생각을 했겠지. 며칠이 지나고야 전화가 왔어요. 친구들이. 당황하고 황당해 하면서.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내 주변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K씨는 더 무서웠던 건 내가 나를 무서워하게 됐다는 점이라고 했다.

“내가 나를 못 믿는 거죠. 양복 바지를 입은 사람만 옆에 와도 깜짝깜짝 놀랬어요.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면서 벤치에 앉아 있는데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제 옆에 앉았어요. 화들짝 놀라 옆 벤치로 옮겼죠. 기차 안에 탔는데 양복을 입은 사람이 옆에, 앞에, 바깥에 있었죠. ‘이런 대낮에 양복 입은 사람이 이렇게 기차에 많이 있을 리가 없다’ 막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얼어 붙어서 꼼짝을 못했어요. 일부러 큰 소리로 목적지를 거짓말로 말하기도 하고, 내려서는 갑자기 커피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지하철 안에서 남자가 옆으로 오면 저쪽으로 가고. 친구집에 갔을 때는 친구가 커피를 올려놨는데 그 집에 전화가 왔어요. 뭔 전화냐고 물었더니 잘 못 걸린 택배전화래요. 커피 올려 놓은 거 그대로 던져놓고 친구 손을 잡고 무작정 집밖으로 뛰쳐나왔어요. 속된 말로 정신이 나간 거죠.”

국가보안법 혐의로 집안을 압수수색 당하고 과대망상과 유사한 경험을 한 건 비단 K씨만은 아니었다. 이00씨의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나오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예요. 마을 버스를 타고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고개를 넘는 와중에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안 되겠다,내려야겠다, 허둥지둥 내렸는데 배 밭이었어요. 거기 혼자 서있는데 혼자 있고, 무서워서 내렸는데 아무도 없고, 혼자 이러고 서 있는데 내가 제 정신이 아니구나, 누군가 나를 쫓아다니게 만들지 않았을까……갑자기 그런 거예요. 버스를 고장 내서 나를 어떻게 하려고..”

“나만이라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무섭다”

“나한테 일어날 거라고는 죽어도 생각을 못했고, 텔레비전에서 간첩사건이나 국가보안법 사건을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만만한 사람들, 또 탈북자를 잡는구나. 반정부 운동하는 사람들 탄압하려고 가장 큰 죄목을 붙이는구나 그 생각만했어요. 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이 법이 제일 무서운 건 뭔지 아세요?  이 법이 무서운 거는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를 받는 순간 나는 빠져나가야지, 주홍글씨랑 똑 같은 거잖아요. 간첩사건 터지면 일가친척을 다 잡아 넣었잖아요. 그 공포가 있어요. 원래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족끼리, 친구끼리 돕고 힘을 합치고 개별이 아니라 같이 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국가보안법 사건은 나는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요. 나한테는 이런 낙인 찍히면 절대로 안 된다. 나는 절대로 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나만 얼른 소명하고 빠져나가고, 저 사람은 어떻게 되던 나는 모른다……이렇게 되요. 심지어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남편한테마저도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국가보안법, 피고인 부인도 하루아침에 ‘공범’으로

K씨는 국가보안법을 겪어보니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가기 위해서 만든 법이라는 결론이 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정신을 차리고 무죄를 입증하고 국가보안법이 싸움을 걸었으니, 그 싸움에 맞서야겠다고 했다. 무서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녀가 내 놓은 비장한 카드는? 바로 “‘국가보안법 우습게 만들기 운동본부’ 이런 거 만들까 봐요. 다시 술친구들도 열심히 만나서 놀고 웃으면서 이 국가보안법을 아주 우습게 만들어버려야겠어요.”

“국가보안법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사람 머리속 생각을 처벌하기 때문이예요. 나 저사람 죽이고 싶어, 이렇게 생각했다고 살인죄가 적용되지는 않잖아요. 국가보안법은 이게 가능한 법이예요. 그러니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벌벌벌 떨게 되는 거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내가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책을 읽었더라, 그게 들키지 않을까…”

남편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면회도 쉽지 않았지만 싸워가며 열심히 면회를 하고 있다.

“참고인 진술을 하러 갔다가 제가 피고인이 되었어요. 하도 면회를 안 시켜 주니까 이유를 알려달라, 10분이면 되는데. 안에서 가족이랑 분리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게 힘들거든요.제가 막 따지니까 얼버무리고. 남편이 조사를 제대로 받으면 면회를 시켜주겠다고 그래요. 자꾸 면회를 시켜달라니까 이제는 제가 피의자래요. 그래서 ‘공범’이라서 면회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검찰에 넘어갔는데 거기서는 또 직계가족이라서 면회는 되고. 국가보안법이면 뭐든지 되나 봐요. 부인을 참고인에서 피고인으로 바꿀 수도 있고. 국정원은 면회를 시켰다 말았다 하면서 회유의 수단으로 삼아요. 저는 20일 동안 면회를 세 번 밖에 못했지만 그나마 다행인게 어떤 사람은 단 한 차례도 못했어요. 피해자 가족 **이랑 어울리지 말아라, 그러면 면회를 시켜주겠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도 있어요.”

1980년대 대학가에서 읽히던 중고 사회과학 책을 팔았다는 이유로 2007년 5월 국가보안법 혐의로 기소됐던 김명수씨, 기소된 지 4년 만인 지난 달 30일에서야 1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들도 김명수씨와 마찬가지로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결론까지 얼마가 더 걸릴지, 그 길에 얼마나 많은 공포와 힘든 일을 겪어야 할 지는 모르겠다.

일단 검찰의 주장처럼 ‘지난 2001년경 반국가단체를 결성하고, 그 후 10년간 구성원들이 간첩행위를 해왔는지’는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왕재산 사건’ 변호인단은 검찰 구속영장에서 명시적으로 반국가 단체를 설립해 대한민국 정부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전복하려 했다거나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려고 했다는 명시적인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7월 말 소위 ‘왕재산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 대규모의 지하당을 구축하려한 사건이라고 정보당국을 인용해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현재50여 명이 조사받고 있으며, 국가보안법 혐의로 5명이 구속되었다. 이들의 유죄유무는 정식 기소 이후 있을 재판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국내 인권 상황을 모니터링 하면서 만나게 된 피고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우선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어떤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싶었다. 피고인 가족 중 한 명인 K씨를 11일 인사동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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