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유엔인권이사회의 4차 UPR을 앞두고 진행된 프리세션 참석 차 제네바에 다녀왔습니다.
바로 내일(1월 26일) 제네바 시각으로 오후 2시반부터 (한국시간 밤 10시반) 진행될 한국 정부 심의 생중계로 그 결실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이에 앞서 UPR이라는 낯선 용어와 절차에서부터 앰네스티가 참여하고 온 프리세션에 대해 소개드려려 합니다.
UPR이란?
UPR은 Universal Periodic Review의 약어로, 앰네스티에서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라고 일컬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193개의 UN회원국의 인권 현황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절차로, 유엔인권이사회가 2006년 3월 UN총의 결의에 따라 창설된 이래, UPR은 1년 후인 2007년 6월, 위원회의 구체적인 제도 구축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심의를 통해 모든 회원 국가가 자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선언하도록 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전체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차례 검토를 하는 데는 4년 반의 시간이 걸리기에 이를 주기로 합니다. UPR은 기본적으로 47개 인권이사국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이 진행하며 인권이사국이 아닌 옵서버 국가도 참여 및 발언이 가능합니다. 매년 3번의 세션을 진행하는데 한 세션당 2주가 할애되며 이 기간 보통 14개국이 순서대로 심의를 받습니다. UPR 주기는 1차(2008년 4월~2011년 10월), 2차(2012년 5월~2016년 11월), 3차(2017년 5월~2022년 2월)를 거쳐 지난 2022년 11월부터 4차를 맞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2008년 5월 7일 첫번째 심의를 시작으로, 2012년 10월 25일 2차 심의, 2017년 11월 9일 3차 심의를 거쳐 오는 2023년 1월 26일 4차 심의를 받습니다.
인권이사회는 UN헌장, 세계인권선언, 그 국가가 비준한 인권 협약이나 자발적으로 선언한 인권 정책, 프로그램 등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검토해 심의 대상국에 권고사항을 발표하고, 해당 정부는 수용한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검토 기준과 방식

앰네스티가 제출한 보고서 및 여성인권에 관한 요약 보고서
그렇다면 권고사항을 내리는 국가들은 대상 정부의 인권 상황을 어떻게 파악할까요? 각 국가의 인권사항을 파악에 근거가 되는 문서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정부 스스로 인권 현황을 기록해 제출하는 국가 보고서가 있고,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UN특별절차, 인권조약기구, 기타 유엔기구 등의 인권전문가 그룹의 보고를 요악한 보고서가 있고, 마지막으로 국가인권기구 및 비정구기구NGO를 포함한 기타 이해관계자의 보고서가 있습니다. 국제 앰네스티도 NGO보고서의 일환으로 지난 2022년 7월 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차별금지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임신중지 비범죄화 등과 관련하여 지난 제3차 정례인권검토에서 대한민국에 제시된 권고의 이행상황을 평가했습니다. 또한, 인권 현황에 관해서는 성소수자LGBTI, 여성 및 소녀, 난민 및 비호 신청자의 권리, 사형제, 평화적 집회,결사,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그리고 기후정의에 대한 우려를 강조했습니다.
앰네스티 X 추적단불꽃 UPR 프리세션에 가다

프리세션이 진행된 유엔 템푸스Tempus 빌딩 안 회의장 앞에서 추적단불꽃 단(왼쪽)과 앰네스티 캠페이너 자아(오른쪽)가 온라인 젠더기반 폭력을 멈추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지난 11월 마지막 주에 열린 UPR 프리세션은 제42차 세션, 즉 2023년 1월 23일부터 2월 3일 사이에 4차 UPR 심의를 앞둔 13개국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습니다.
한국과 함께 42차 세션에서 심의를 받는 나라는 체코, 아르헨티나, 가봉, 가나, 페루, 과테말라, 베닌, 스위스, 파키스탄, 잠비아, 일본 그리고 스리랑카인데요, 이 13개국의 국가인권기구 및 시민사회단체는 제네바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자국의 인권현황을 브리핑하고 추가적인 미팅을 통해 세부 로비활동을 벌이게 됩니다.
이는 UPR이라는 매커니즘을 통한 인권 증진을 목표로 이해관계자들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데 특화된 제네바 기반의 시민사회단체 UPR-info가 운영하는 행사입니다.
한국의 프리세션은 지난 11월 30일 수요일 오전 9시, 유엔 내 Tempus 빌딩에서 열렸습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참여연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각 국가에 주어지는 프리세션은 정확히 한 시간입니다. 먼저 각국 법무부의 발언문을 2분 들은 뒤, 시민사회 패널마다 5분간의 보고가 주어지며, 이후 질의응답 시간과 마지막 최종 1분 발언으로 세션은 마무리 됩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017년 참가한 3차 UPR 프리세션에서, 제출 보고서 중에서도 특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슈를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앰네스티는 한국 최초의 병역거부자 변호사인 백종건을 초청해 프리세션에서 그의 경험에 기반한 생생한 발언을 직접 들려주었고 이는 이후 2019년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캠페인 활동의 중요한 교두보가 된 바 있습니다.
(‘N번방 사건’ 이후)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확대 등 전례 없는 일련의 조치가 행해졌으나 정부의 대응은 미흡했습니다. [중략] 숱한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아온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의 정권 아래, 제가 활동하던 법무부 내 디지털 성범죄 전담 TF가 해체되었고, 윤 정부는 나아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의 자금과 지원에 의존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UPR 프리세션에서 앰네스티를 대신해 증언하고 있는 추적단불꽃의 단. 현지에서도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의 보복을 우려해 부득이하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발언에 임했다.
이번 4차 UPR 프리세션에서 앰네스티는 여성인권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새 정부의 반여성인권적 기조가 현실화 중인 여성가족부 폐지 흐름 가운데, 지난 검토 기간 이후 두드러졌으며 특히 대대적인 ‘n번방’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온라인젠더기반폭력의 확산과 심각성, 정부의 불충분한 대응 조치를 전달했습니다.
발언은 추적단불꽃의 ‘단’ 원은지가 맡았습니다. 앰네스티는 2019년 ‘n번방’사건을 한국사회에 가장 먼저 수면위로 올린 활동가 중 한 명인 그를 앰네스티를 대신할 패널로 초청했습니다. 현재 미디어스타트업 얼룩소의 에디터로도 활동 중인 그는 여전히 누구보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가깝게, 지속적으로 사건의 추이를 바라봐온 증언자이기 때문입니다.
단은 맨 처음 ‘n번방’을 발견한 순간부터, 지난 3년간 미미했던 정부의 대처들, 앞으로가 더 걱정되는 반여성인권적인 현 정부의 기조에 대한 우려를 말했습니다. 발표 도중 눈물이 차올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물으니, 여전히 단이 연락하고 지내는, 지금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생존자들이 떠올랐다 말했습니다. 발표가 끝난 뒤, 참석한 각국 외교관들은 단의 활동과 메시지에 크게 공감했다며 응원과 위로의 인사를 먼저 건네왔습니다. (단이 직접 쓴 생생한 방문기는 얼룩소 플랫폼 내 포스팅으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프리세션 당일 이후에도 앰네스티 활동가 자아와 추적단불꽃 단은 주 제네바 대표부와 유엔특별절차 이해관계자들을 만나 5분에 담지 못한 현 한국 여성인권을 중심으로 지금 주목해야할 한국의 인권이슈를 설명하고 앰네스티가 한국정부에 요구하는 권고사항들을 알렸습니다.
1월 26일 밤, 드디어 한국 심의
UPR은 물론 각 국의 인권 사항을 단번에 증진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수단은 아닙니다. 심의를 받는 정부는 다른 국가들의 권고사항에 대해 수락 또는 거절할 수 있고, 권고사항을 수락한 사안에 한해서 인권보호 및 증진을 위한 입법적, 행정적 조치 등을 소개하는 이행 보고서를 추후 제출하게 됩니다. 지난 3차 UPR에서 한국정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라는 권고 사항을 무려 16개 국가로부터 받았으나, 한국 정부는 ‘수용supported’ 아닌 ‘불수용noted’ 의사를 밝혔고 아시다시피 아직도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UPR은 여전히 당사국의 개별 조약상의 의무만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의 모든 인권 문제를 포괄적으로 점검하는 유일한 제도이며, UN회원국들 간 건설적인 대화와 적극적인 참여 과정을 통해 인권에 관한 정부의 인식을 높이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유엔 메커니즘입니다. 우리가 이뤄나갈 인권 승리를 지켜봐주는 세계의 눈이자, 인권옹호운동의 모멘텀을 살려줄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드디어 바로 내일, 한국시간으로는 다소 늦은 시간인 밤 10시 반부터 제네바에서 열릴 한국 정부 심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중요합니다. 이미 내일 심의를 앞두고 미국과 캐나다는 특히 여성가족부 폐지와 연계된 우려사항을 한국 정부에 사전 질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앰네스티도 내일 밤 국내 활동가들과 함께, 유엔 웹티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한국 정부 심의를 모니터링 합니다. 앰네스티는 이날 심의 내용을 정리한 최종 보도자료로, 그리고 한국 정부가 심의 후 최종 보고서 채택을 하기까지의 약 6개월 기간 동안 주요 권고안을 채택할 것을 압박하는 온라인액션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 글을 접하신 모든 인권옹호자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그리고 행동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