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김근태 전 앰네스티 양심수를 떠나보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1년 12월 30일, 민주화의 투사였던 김근태 민주통합당 고문이 향년 64세로 타계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김근태 고문의 타계를 애도하며, 2011년 1월 그를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며 함께 추모하고자 합니다.

 

김근태 前 앰네스티 양심수와의 만남

2011년은 국제앰네스티가 영국의 피터 베넨슨 변호사에 의해 창립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포르투갈 두 청년이 자유를 위해 건배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선고된 것에 격분한 한 개인의 시작이었다. 앰네스티는 그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부당한 이유로 투옥된 양심수와 함께했다. 국내에도 대한민국 민주화 과정에서 투옥되어 고문과 핍박을 받았던 수 많은 양심수들이 존재했다. 국제앰네스티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양심수를 찾아서” 릴레이 인터뷰. 그 시작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80년대 양심수의 기억을 들어 보았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1947년 경기도 부천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상대를 졸업하였다. 1971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를 받고, 1974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를 받았다. 19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의장과 2대 의장을 지냈고,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1차 구속되었고,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정책기획실장과 집행위원장으로 활동 중 1990년에 2차 구속되었다. 1995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민주당 부총재와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냈다. 1995년 사면복권 되었고, 1996년부터 제 15대, 16대,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열린 우리당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04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수상경력은 1987년 부인 인재근 여사와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 1988년 독일 함부르크 자유재단에서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 1999년 제1, 2, 4회 백봉신사상 수상, 2002년 제 12회 경제정의실천(경실련) 시민상 수상, 2004년 제 6회 백봉신사상 수상 외 다수가 있다.


Q.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요새는 대학에 나가서 강의를 하고 정치상황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에서는 ‘한국 정치론’이라고 해서 정치를 핑계 삼아 경제도 이야기하고 사회와 문화 모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Q. 올해 국제앰네스티가 50주년을맞았는데요, 먼저 축하의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마음으로부터 축하합니다. 지난 오십 년 동안 오늘 이 세계에 국제앰네스티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어두운 세상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앰네스티가 있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가들에게도 좌절했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와 계기가 만들어졌고, 국민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이지만 한국의 그 과정에서 앰네스티 친구들의 도움과 지지가 큰 활력이 되었던 것을 우리모두 기억할 것 입니다.

 

Q. 옛날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죠. 민주화운동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지금 상황을 연결해서 말씀해주신다면? 71년서울대, 긴급조치9호위반으로수배, 80년민청, 전민련사건들구속, 수감되시기도하시고, 그 당시 사회사건과 사회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들과 최근의 상황을 연결해 주신다면?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에서 이른바 민주세력이라는 세력이 패배를 연달아 했습니다.

패배한 것에 대해서 아파하고 부끄러워했지만, 그러나 이미 한국에서 87년 6월항쟁 이후 10년 내지 15년 이상 뿌리를 내린 민주주의는 조금 후퇴는 하겠지만 민주주의가 전면적인 위기에 부딪힐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안 했지요.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민주주의의 위기다라고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고요. 민주주의는 지키지 않으면, 물을 주고 햇빛을 주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고 뿌리가 손상될수 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당시 제가 65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생활과 1980년대까지 대략 20여 년 동안은 박정희씨, 전두환씨 이런 사람들이 국민의 군대를 이용해서 쿠데타를 통해서 폭력적으로 정권을 잡았어요. 정권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공권력을 이용해 탄압을 해버렸습니다. 국민들 중에서 바르게 이 상황을 말하고자 하면 다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다 분노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민주화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탄압이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혹독하게 들어왔기 때문에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대학생이 숫자가 많아지면서 지식인들, 지성인들의 초입단계에 들어가는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시위를 했고, 이 대학생들이 체포되고 구속되자 전국민의 아들 딸 중에서 대학생 없는 집이 없고 그래서 모두다 자기 아들 딸들을 걱정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이 궐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기도 하고 살해되기도 하고 의문사 되기도 했는데 그런 역사 위에서 이루어진 민주주의인데 이 민주주의가 절뚝거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Q. 투옥 당시 수많은 고문을 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근태님 사건 이후로 한국사회에 ‘고문’이라는 이슈가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졌었는데요. 힘든 기억이시겠지만 ‘고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실 그런 이야기는 잘 안 하는데… 고문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 입니다. 고문자와 피해자 모두를 타락시킵니다. 고문은 인간을 고문자들을 야수화시키고 피해자들은 자기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옛날에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고문을 받을 때 나는 비명소리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라디오소리를 크게 틀어 놓습니다. 그때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나운서의 목소리 조차 그렇게 싫었어요.

저도 지금은 많이 잊어 버렸지만 나이 드니까 약간의 후유증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전기고문 7번 받았고 물고문을 3번 받았어요. 굉장히 고통스러운 기억입니다. 지금도 내가 보고 있는 데서 누가 수돗물을 틀면 마음의 준비가 되는데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수돗물을 틀면 긴장하고 놀라고 한 동안 그랬어요.

미국에서 9/11사건 이후에 위키리크스(Wikileaks) 보도에 의하면 부시 대통령이 물고문하는 것에 대해서 허가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른 바 민주주의 사회다라고 자부하는 미국사회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반 인간적인 측면을 가질 수 있나 회의가 들었습니다. 특히 국제테러리스트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원의 영장 없이 구속하고 구금하는 것을 장기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제앰네스티를 포함한 세계인권기구들의 역할이 긴급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90년대 전민련사건과 관련해서 국제앰네스티가 김근태님을 양심수로 간주하고 전 세계적으로 구명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앰네스티와 인연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86년도 감옥에 다시 들어갔을 때 영등포교도소에서 정확한 기억에는 없지만 독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앰네스티 회원들이 카드를 여러 장 보내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앰네스티가 김근태를 양심수로 선정하고 나서 격려의 편지를 보내는 캠페인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는 편지도 검열을 심하게 했기 때문에 교도소 안에서는 편지도 쉽게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격려 카드는 안보와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공식적으로 들여보내자 그래서 카드를 받아볼 수 있었는데, 그때가 그 시점쯤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Q. 김근태님께서 생각하는 ‘인권’이란 무엇입니까?

인권이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짐승으로 퇴행할 것입니다. 사람이 존엄성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본적인 권리를 현대사회는 기본권이라고 정의하는데 기본권이 손상 되는 사회는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권력을 갖고 있는 세력이 개인들이 인권을 짓밟을 때는 그것이 상당히 두렵고 공포의 대상이더라 하더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국제앰네스티처럼 다른 지역, 다른 사회에 대한 운동을 하는 것이 효과도 있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고 운동을 해갈 것인가의 문제가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합니다.

 

Q. 기본적 권리로서의 인권을 말씀하셨는데 최근 무상급식을 비롯해서 사회복지분야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있습니다. 전 보건복지부장관이셨는데 인권과 사회복지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복지 전체를 인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죠. 어떤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복지는 인권일 거예요. 그러나 어느 수준의 어떤 내용의 복지가 최소냐라는 문제는 유엔이나 지식인사회 활동가사회에서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아프면 치료를 받고 교육을 받고 또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는 이런 것은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인권상 수상경력도 많으신데요. 로버트케네디인권상을 수상하게 된 계기는무엇입니까?

고문에 몸과 마음을 다쳤는데 그것을 딛고 일어나 진실을 밝히고 맞서 싸웠다는 것에 좋은 평가를 해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에 한국민중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그 열정과 투쟁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평가하는 그런 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국제앰네스티 젊은 회원들에게 한마디 해주시겠습니까?

앰네스티 회원 여러분,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이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인권은 하늘이 주신 권리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투쟁을 통해서 가슴 깊이 배웠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인권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인간사회는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우리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김근태 전 장관 축하메시지 中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10년 겨울호 <Interview 씨줄과날줄>코너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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