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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북한 내 또 다른 억압된 사회, 군대

2023년 초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일대에서 작업중인 북한 군인들

폐쇄와 단절, 강제와 부당

북한은 오랫동안 폐쇄 지향적 정책을 고수해 온 나라이다. 그러한 북한에서도 군대는 사회와 단절된 또 다른 닫힌 공간이다. 특히, 군대라는 조직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료주의, 집단주의, 비밀주의, 지배와 복종, 폐쇄성 등과 같은 문화적, 환경적 특성을 고려할 때, 북한 군대 내 인권이하 군인권 상황은 안 그래도 열악한 사회의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탈북인들은 사회와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인권 침해와 부조리가 북한 군대에 만연해 있다고 중언했다.

평양 순안국제공항 제2청사 건설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

군인권 실태

최근 북한의 군인권 상황은 그 어느 곳보다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특히, 만성 식량난으로 인한 굶주림, 폭압적인 위계질서, 구타와 가혹 행위, 그리고 뇌물 확산과 권력의 남용으로 심화된 부정부패는 군인권을 해하는 주요한 원인들로 지적되어 왔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남성 기준 10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복무 중 열악한 생활 환경과 부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해 탈영하는 모습은 비일비재하다.

2023년 3월 군입대와 재입대를 결의하며 자원 중인 북한 청년들

변화

그럼에도, 지난 세월 북한 군대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해 왔다. 군 복무를 마쳤거나 군 복무 중 탈북한 몇몇 탈북인은 전반적으로 군인권이 과거에 비해(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을 기점으로 그 전후 10년을 비교해 볼 때) 크게 나아진 것이 없긴 하지만 일부 개선된 측면은 분명 있다고 증언했다. 한 예로, 구타를 포함한 폭력 행위가 최근 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상부의 폭력 행위 근절 지시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그것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주장이다.

아래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보유한 탈북인 증언 중 자신들이 군 복무 기간 경험한 내용 일부를 발췌해 정리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군인권 실태, 그리고 시기에 따른 변화뿐만 아니라 북한 속 또 다른 억압된 사회인 군대 내 생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9년 군 복무를 하고 제대했다. 내가 입대하던 해(1994년) 이전에도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안 좋긴 했지만 1995년부터 1998년 사이는 정말 군대 안에서도 생활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 많이 나빠졌다. 이 시기에 군인들은 먹을 게 없어서 산에 올라가서 풀까지 뜯어먹다가 죽고 그랬다.

하루 세 끼는 먹었다. 하지만 결코 잘 먹었다는 말은 아니다. 식사는 옥수수를 섞은 쌀밥에 염장무소금에 절인 무가 전부였다. 규정상으로는 식사 계획표라는 게 있고 매 끼 3가지 반찬이 제공되는 것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은 염장무 하나 밖에 없었다. 간혹 다른 반찬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군에서 사용하는 식량의 양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걷어가고 제대로 사용하면 식량이 부족할 리가 없다. 그런데 중간에서 간부들이 식량을 다 빼돌린다. 주민들이 바친 식량을 중간에서 빼먹고 착복하니까 병사들에게 돌아가는 식량이 항상 부족했다. 거기에다가 그 시기에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더 안 좋아진 것이다.

내가 군생활을 하는 동안 군인들 중 영양실조에 걸려서 군대 생활을 할 수 없는 자들이 많이 늘었다. 남자 군인과 여자 군인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생활을 해서 남자 군인들은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여자 군인들은 영양실조에 많이 걸렸다. 같이 복무하던 동료 중 몇 명은 영양실조로 아사하기도 했다. 영양실조에 한 번 걸리면 회복하기 힘들다.

 

탈북인 A씨, 1990년대 중순~2000년대 초 군 복무, 2013년 탈북

북한에서는 학교 졸업하면 18살이다. 나는 학교 졸업하자마자 돌격대에 배치되었다. 내가 다닌 돌격대는 10년을 복무하는 곳이다. 나는 3년 복무 후 탈북했다.

돌격대도 다양하다. 군대는 전선을 지키는 개념이라면 돌격대는 순 공사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주로 빌딩을 많이 지었다. 여단은 혜산 안에 있었지만 일은 다른 지역에서 했다. 돌격대를 ‘반군사’라고도 부른다. 완전한 군대는 아니고, 그런데 일상적으로 보면 군대보다 더 힘들고 그래서 그렇다. 군대는 일요일에 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돌격대는 일요일에도 일한다. 1년 365일 일한다고 보면 된다.

오전 5시가 되면 우리를 깨웠다. 일어나자마자 세면할 시간도 없이 그냥 바로 일하러 나갔다. 오전 7시 반에 아침 밥이 나온다. 식사를 하고 10~15분 정도 쉰 다음 또 일을 한다. 점심은 평균 1시 반에서 두 시 사이에 먹는다. 점심은 보통 죽을 준다. 옥수수에 소금을 넣어서 죽으로 만든 것이다. 계속 반찬도 없이 밥을 먹는 게 조금 그러니까… 저녁은 언제 먹을지 모른다. 어떤 때는 밤 10시에 먹고, 어떨 때는 새벽 3시에 먹기도 한다. 일이 끝나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일이 끝나야 자러 들어가니까… 언제 일이 끝날지, 언제 들어갈 지 모른다. 휴식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자기가 눈을 굴려서 알아서 쉬든지 해야 한다.

하루 세 끼는 다 먹는다. 주로 옥수수를 먹는다. 한 명당 200g씩 준다고는 하는데 실제 끼당 차려지는 것 보면 100~120g 정도다. 한 주먹도 되지 않는 양이다. 먹고 나서 돌아 앉으면 맨날 배고팠다. 120g 밥을 먹으면서 하루 종일 일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너무 고달팠다. 그래서 애들이 도망치곤 했다.

탈출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 탈출하다 잡히면 보통 매로 맞는다. 전문으로 잡는 사람들이 있다. 돌격대 여단이 크다 보니 너무 많은 애들이 도망가고 그런다. 구타도 많이 당한다. 나는 일 때문에 구타를 당해 본 적은 없지만 도망을 많이 쳐서 구타를 당하기는 했다. 지휘관한테 신고해도 걔네들도 자기일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그런 곳에 신경 쓰려고 하지 않는다. 매 맞아도 자기 불찰, 다쳐도 자기 불찰이다. 안 맞게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참 불쌍하다.

내 기억에는 3년 동안 돌격대에 있으면서 총 2번 돈을 받았다. 북한 돈으로 4천 원이었다. 쌀 1kg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여기서 당 자금이니 뭐니 해서 자르는 게 엄청 많았다. 그렇게 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2천 5백 원 정도를 받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돈은 신경도 안 썼다. 주거나 안 주거나 상관없는 돈이다.

 

탈북인 B씨, 2010년대 중순~말 돌격대 복무, 2019년 탈북

나는 탈북 전까지 군 복무를 평양에서 했다. 내가 복무한 곳은 인민무력부한국의 국방부에 해당 청사였다.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곳이다 보니 식사든 뭐든 모든 게 잘 나왔다. 거기는 진짜 쌀밥에 고기만 먹는다. 하지만 강원도쪽 부대, 1군단, 2군단 이런 곳은 엄청 못 먹는다고 하더라. 가뜩이나 없는데 위에서 다 떼먹고 그러다 보니까 진짜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군인들이 민가에서 도둑질도 엄청 많이 하고 그런다.

내가 있던 부대는 그렇지 않는데 다른 곳은 굶고 그랬다. 영양실조 걸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애들도 많다. 2018년에도 많았다. 탈영하는 애들도 많았고. 한 열 명 중에 두 명은 탈영한 것 같다. 탈영했다가 다시 잡혀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너무 배고프고 힘드니까 도망치는 거다. 반찬 같은 것은 아예 허연 염장무에 콩 반찬 이런 거 해서 먹는다. 밥은 부대가 있는 지역마다 다른데 강냉이밥을 먹거나 쌀밥을 먹곤 한다. 고기 같은 경우는 일반 부대는 한 달에 한 번 먹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명절 때나 먹는다고 보면 된다.

일단 군대를 가는 이유는 입당조선로동당 입당을 해서 당원이 되기 위해서이다. 당원이라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군사 복무를 하고 입당을 해야지만 간부가 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힘들다. 아무리 똑똑하고 그래도 안 된다. 그래서 군대에 입대할 수밖에 없다.

 

탈북인 C씨, 2010년대 중순~말 군 복무, 2019년 탈북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나갔다가 햇수로 3년 정도 복무했다. 군대에서 허리 디스크가 와서 감정제대한국의 의병제대에 해당 즉, 병 있는 사람들을 제대시키는 것이 있는데 그걸로 제대되었다. 나는 군대 나가서 상급들에게 맞고 그래서 허리가 병신되었다. 그 후 한 3, 4년 정도 병 치료하다가 몸이 좀 괜찮아져서 사회보장 대상이 되어 집에서 보양 생활을 했다. 사회보장은 사회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하지 않고 지내게 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당한 구타로 인해 감정제대 되었다고 해도 나라에 배상을 요구하거나 그런 거는 없다. 그런 거 잘못 신청했다가 내가 거꾸로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냥 아무 말도 못 했다. 보통, 아파도 그냥 사단급, 큰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고 한 2, 3개월 정도 치료받다가 치료가 안 된다 싶으면 감정제대 되고 그런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가 군대에서 맞아서 허리가 그렇게 되었지만 어디 가서 신고도 못했다. 밖에선 그런 말도 못하고 그냥 나 혼자만 손해보는 것이다.

군대에서는 김정일 때 까지만 해도 구타가 좀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 때 들어오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이제는 상급(선임)들이 하급(후임) 병사들을 구타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처벌도 받고 심한 경우에는 군복 벗고 제대될 수도 있다. 간부들보다도 같은 병사들 사이에서 위에 계급 병사가 밑 계급 병사를 때리고 그런 게 자주 있다. 그런데 갈굼은 한국보다 아마 더 심할 것이다. 많이 심하다. 나는 어쨌든 거의 100% 맞아서 병이 생겨서 집에 왔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죽고 나서 김정은이 정부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2011년 5월에 제대되었다. 즉, 나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바뀌기 직전에 군대를 제대했다. 나 까지만 하더라도 구타가 많았는데 그 후에 군대간 애들 중에서 병 생겨서 제대된 애들 만나서 물어보면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말 하더라.

 

탈북인 D씨, 2000년대 말~2010년대 초 군 복무, 2018년 탈북

나는 8년 복무하다가 탈북했다. 먹는 것은 예전부터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부대마다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큰 부대의 경우에는 그나마 공급이 되고는 있는데 산골에 있는 독립단위 부대 같은 경우에는 사실 아무래도 공급에 차질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독립부대를 보면 자체로 알아서 농사라던가 이런 걸 통해서 살지 않으면 실제 보급품으로만 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그래서 배고플 수밖에 없고… 거의 대부분의 부대가 이런 상황에 있다고 보면 된다. 나도 복무 기간 늘 배고팠다.

월급은 나온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에 쌀 1kg에 북한 돈으로 4,500원 정도 했고 제일 싸구려 담배 한 갑이 2,000원 초반대였는데 월급은 140원 받았다. 월급 140원 가지고 사탕 두 알도 못 산다. 사탕 한 알이 100원이니까. 장교 같은 경우도 월급으로는 못 산다. 배급을 조금씩 주기는 한다. 그래도 먹는 것만 충족되면 뭐하나? 살면서 써야 하는 용품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자연히 그게 비리, 부패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뇌물 이런 것은 사회나 군대나 너무 지저분하게 만연화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굳이 부패가 어떻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조차 없다. 실례로, 나도 분대장이었다가 초소장으로 이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뇌물이 없으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군대에서는 원래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장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예 안 쓴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겠나? 몰래 쓰곤 했다. 장교들은 거의 대놓고 쓰고 상급단에서 검열단속이 나오면 감춰두고는 한다. 각 부대에서는 보통 장교들이 병사 휴대전화를 단속하고 하는데 그래도 몰래 쓰곤 한다. 그게 전체 병사로 치면 1% 정도 밖에 안되기는 하다. 내가 있던 부대는 한 2, 3천 명의 군인이 있었다. 거기에 휴대전화 있는 군인이 한 몇 십 명 정도 되었다. 오래 군 복무한 사람이나 개별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도 많은데 그런 군인들이 주로 사용했다. 나 같이 초소장으로 나간 군인은 초소장 위로는 없으니까 여력이 생기면 쓰곤 했다. 휴대전화에 프로그램을 깔고 영화나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몰래몰래 보곤 했다.

지금 북한의 MZ세대는 정부의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자란 세대들이다. 다 시장 중심으로, 시장의 덕을 보고 자란 세대이다. 그럼에도, 개개인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충성심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군사복무를 할 때도 군인들이 어렵게 생활하지 않겠나? 배고픔도 겪고 그렇고… 그런데 그게 김정은이 일을 못해서,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를 가둬 놓고 세뇌교육을 한다는 식의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의 영도력이나 그런 부분은 계속 탁월하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가 교육받은 것은 그런 거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뉴스나 신문을 봐도 그 사람은 꾸준히 현지시찰을 하면서 돌아다니고,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서 발벗고 뛴다고 하고 그러니까 그런 것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렇게 헐벗고 배고픔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냐고 하면, 미국이라든가 열강들의 제재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자력으로 살아 가려고 하니까 힘들다고 생각했다.

 

탈북인 E씨, 2010년대 초~말 군 복무, 2018년 탈북

나는 5년 정도 군 복무를 하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2016년 제대했다. 군대 내 부조리라는 게 다양하다. 예전에는 구타가 제일 많기는 했다. 나도 당했고, 나도 하기도 했다. 2013년까지는 군대 내에서 구타가 진짜 심했다. 그런데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방침이 내려왔는데 구타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했다더라. 그 이후로 사관장들이 대거 잡혀 들어가서 일반범들이 가는 곳에 한두 달씩 있다가 오더라. 그러면서 구타가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사령부 안에서, 사람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 구타가 잘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일 끝 하부 말단 시골, 산골에 있는 부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그런 걸 감춘다. 만약 검열이 내려오면 산에 약초 캐러 내보내거나 방목하러 보내 버리면 모르는 거다. 그렇다 보니 나는 아직도 구타는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내가 있던 부대는 사령부다 보니 2013년 이후로는 구타가 많이 사라졌다. 내 기준으로 보면, 솔직히 나도 2014년까지는 애들을 때렸다.

구타당했을 때 신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신고하면 신고한 사람도 많이 쪽팔린다. 부대 안이 소란스러우면 지휘관이 오히려 신고를 한 사람을 더 밉게 본다. 그런 일로 병영이 복잡해졌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구타를 당해도 신고를 안 한다. 그런데 최근 군 생활한 애들은 구타가 없다고 하더라.

 

탈북인 F씨, 2010년대 중순~말 군 복무, 2018년 탈북

나는 5년 정도 군생활을 하다가 북한을 떠났다. 최근 북한 군대에서는 폭력을 없애라고 하고 술도 마시지 마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폭력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은 거기서 거기다. 물론, 문화도 다르고 표현 방식도 다르고, 모든 게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북한 군대든 한국 군대든 그런 점에서는 같다.

군대 내에서 부조리나 폭력이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없었다. 북쪽에서도 그렇게 하면 문제이다. 폭력은 위에서 시킨 걸 제대로 안 하거나, 아래 사람이 기어오르거나 그런 경우에는 있다. 그럴 때 선배(선임)와 후배(후임) 사이에 트러블이 있다. 후배들 입장에서는 이 선배가 진짜 무서우면 아무리 시킨 일을 못 하는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선배는 자기가 좀 기어올라도 될 거 같다고 느껴지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문제로 트러블 생기는 거다.

사회 통념적으로 폭력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쯤이야…’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다. 북한의 경우 지휘관이, 장교가 봤을 때 ‘저거는 괜찮을 것 같다’, ‘저건 농도가 조금 낮다’고 느껴지면 ‘네 선에서 처리해라’는 식으로 선배에게 권한을 준다. 정말 맞을 짓을 하는 애들이 있긴 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구타나 그런 걸 못 하게 하지만 암묵적으로는 어느 정도 허용된다. 그렇게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기준이 있다. 선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넘어서는 안 된다. 폭행을 해도 티 안 나게 했다든가, 폭행한 상급자의 말을 들어봤는데 이 간부가 듣기에는 납득이 간다고 하면 대충 넘어가는 식으로 처리한다.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 군대 내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뭐 ‘후임들을 때리지 마라’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그랬다. 예전에도 그런 거에 대해 처벌을 했다고는 해도, 지금은 그 처벌 수위가 엄청 높아졌다. 여기 한국으로 말하면 ‘마음의 편지’ 그런 거 같이 북한에도 한다. 갑자기 군단에서 좌관급(영관급) 장교가 내려와서 병사들 다 모이게 한 다음 할 말 있는 사람은 써라고 하고 그렇게 한다. 하지만 예전 2010년, 2011년도 입대한 사람들은 쓸 기회는 있었지만 그런 걸 쓰지 못했다고 한다. 쓸 생각 자체를 안 했다고 한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도 써도 안 바뀐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실제로 써도, 그냥 욕 조금 먹고 끝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북한은 지금도 급식 수준이 열악하다. 반찬도 열악하고 그렇다. 여기 한국으로 말하자면 단무지 같은, 북한 말로는 염장무인데 무를 소금에 절인 걸 반찬으로 준다. 내가 복무할 땐 밥이랑 소금국이 나왔다. 소금국에는 정말 아무것도 안 들어가 있다. 그냥 풀이 조금 들어가 있다. 1인당 밥 한 끼 정량이 250g인가 그렇다. 근데 군대에서 우리가 실제로 먹었던 양은 90g 정도 된다. 그러니까 250g을 줘야 하는데 90g만 주면, 그렇게 주고 남는 게 어디로 빠진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서 군대 가면 더 잘 먹는다고 알고 있던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 때 사람들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다. 고난의 행군때부터 계속 못 먹었다. 1997년부터는 진짜 군대가 열악했다. 지금도 사회 있을 때보다 군대 있을 때가 더 못 먹는다.

북한에서는 병역의 의무는 없다. 그냥 내가 안 가면 안 가도 된다. 하지만 찍힐 뿐이다. 그러니까, 의무는 아닌데 의무와 마찬가지인 거다. 북한에서는 입당을 해야 한다. 입당이란 게 필요한 사회이다. 입당을 하려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그리고 만약 입대를 안 하면 나라에서는 계속 못 살게 군다. ‘어디 나와라’, ‘어디 동원 나와라’ 이런 식이다. 군대를 가면 그런 건 없다.

 

탈북인 G씨, 2010년대 중순~말 군 복무, 2019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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