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소식지 <Amnesty Magazine> 2012년 003호 ‘앰네스티가 만난 사람’에 실린 글로서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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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의 인권 상황 조사는 지역 담당 조사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라지브 나라얀(Rajiv Narayan) 조사관은 12년째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으로서 한국의 인권 상황을 가장 가까이서, 동시에 한 발 떨어져서 지켜봐 온 장본인입니다. 40주년을 맞은 한국지부의 지난 발자취를 정리하며, 한 시대의 목격자이자 인권 현장의 활동가로서 일하고 있는 라지브 나라얀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을 김희진 전 한국지부 사무국장이 만났습니다.
김희진 전 국장(이하 김)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리고 왜 많은 곳 중에서도 동아시아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담당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라지브 나라얀 조사관 (이하 나라얀) 저는 인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강제노동에 시달리거나 착취당하는 어린 아이들을 많이 마주쳤습니다. 인도 서부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그 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경찰이 잔인하게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왜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늘 폭력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정의를 찾아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마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 대학에서 공부를 했는데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인 인권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교입니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인권보호활동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의 힘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학생 때는 한국, 일본, 대만 같은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이룬 성장과 발전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이러한 국가들의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운이 좋게도 한국의 연세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장학생으로 초청받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시위를 자주 접할 수 있었고, 우리가 “위안부”라고 말하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인권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인권 없이는 진정한 발전도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김 그렇게 시작한 앰네스티 조사관 활동이 벌써 12년이 되었는데, 그간 조사관 활동을 하면서 지켜본 한국의 인권 상황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평가한다면?
나라얀 먼저 사형제도부터 살펴볼까요? 제가 1999년부터 앰네스티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 한국의 인권단체들의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인권침해 피해자로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고(故)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인권의 전진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당시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1998년부터 지금까지 사형 집행이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또한 고문과 부당한 대우가 줄었고, 수감자의 처우도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나 현 정부에 들어서 법무부 장관이 사형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으며 사형폐지법안이 여러 번 국회에 제출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되었습니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를 합헌이라고 판결한 것은 매우 실망스런 결과입니다.
김 사실상 사형폐지가 완전한 법적 폐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이 요구되는 부분이지요. 새로 개원한 19대 국회에서 이뤄내야 할 문제기도 하고요. 다른 문제들은 어떤가요?
나라얀 국가보안법의 경우, 노무현 정부 당시 폐지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많은 반대와 국회의 지지부족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감소 추세에 있었던 국가보안법으로 구금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최근 들어서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도 2008년 중순에 주요 문제로 떠올랐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민간 대체복무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병역거부자들의 수감기간을 1년 6개월로 줄였습니다. 하지만 당국은 여전히 이들을 처벌하고 있고, 헌법재판소 역시 2011년에 병역거부가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결정했습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계속되고 있는 현 상황이 참 걱정됩니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발전 뒤로 또 다른 인권이슈와 부딪힙니다. 노동력을 송출하던 국가에서 수입하는 국가로 변모하면서 수 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왔습니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방글라데시, 네팔 등 주로 아시아 국가에서 오는 미숙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됩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고용주의 자비에 의지해야 합니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아직도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미셀 카투이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은 올해 결국 강제 출국되었습니다.
김 그러한 모든 인권 상황을 아우르고 귀 기울여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국가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용산참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였지요. 최근에는 국가인권위 위원장의 연임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나라얀 99년 한국에서는 국가인권위의 설립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설립된 국가인권위는 전 세계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는 심각한 위기에 당면해 있습니다. 예산 삭감문제로 직원의 1/4이 줄었고, 특히 인권위의 독립성 문제 불거지며 신뢰성을 상당히 잃었습니다. 인권위 위원장을 시민사회단체와의 어떠한 협의도 없이, 인권활동에 대한 경험과 자격도 고려하지 않고 임명했습니다. 정부는 국가인권위가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기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근래에 정부는 평화시위마저 통제하고, 관용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모호한 법규정을 사용해 시위자들을 기소하고 그들에게 무거운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되돌아보면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는 인권상황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현 정부에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더욱 사형폐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거나 국제기준에 맞게 개정되는 등 주요 인권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합니다.
김 한국의 인권상황을 조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나라얀 활동했던 각각의 사례가 모두가 흥미로워서 딱 하나만 꼽기가 힘드네요. 앰네스티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전 앰네스티 양심수였던 황대권 선생님을 런던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간 뒤로 고문 당하고 자백을 강요당했던 일과, 10년 가까이 복역하면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미래를 낙관하셨던 황대권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근태 고문, 그리고 2004년 서울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국제회의 당시 한국의 국가인권위를 설립하신 분들을 만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사활동을 하면서 인권활동가와 단체들, 인권침해를 당한 이들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납니다.
김 조사를 하고 싶었는데 내외부적인 요인이나 다른 기타 상황 등으로 인하여 보고서가 못 나왔던 사례도 있었나요?
나라얀 굉장히 의미심장한 질문이군요! 제가 다른 세 나라에 대해 활동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더 많은 이슈에 대해 활동할 수 있었을 겁니다. 최근 사례로는 제주 강정마을 문제가 있겠네요. 진심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국제앰네스티의 정책상 강정마을의 문제를 접근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강정의 현지 단체들이 환경문제와 반전 평화활동을 함께 펼쳐 굉장히 특별한 캠페인 접근방식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도 더 해보고 싶은 이슈입니다.
김 그렇다면 조사관 활동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나라얀 조사관은 앰네스티의 전략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저는 한국, 북한, 일본, 몽골 네 나라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조사활동을 벌입니다. 네 국가 모두 접근방식이 다르고, 국제앰네스티도 각 국가에 대한 다른 상(像)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조사를 할 수 있는 여력이 모자라는 경우도 있고, 시민사회와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조사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보고서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의 논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까다로운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조사 보고서가 나오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앰네스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모두 인권 활동에 헌신적이며 열정적이라는 겁니다. 어려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겨나가야 할 도전 과제인 거죠.
김 현재 한국에서 준비하고 있는 보고서나 주목하고 있는 인권 상황이 있나요?
나라얀 항상 한국지부와 함께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개인에 대한 수사와 체포, 구금이 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보안법에 관한 몇 가지 사례를 조사하였고, 사례 관련 피해자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변호인을 인터뷰 하였습니다.
또한 올해가 선거의 해라는걸 놓칠 수 없겠죠.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후에 나타날 변화들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10월에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인권정례검토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의견과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인권이사회에 제출하였습니다.
김 국제사무국 차원에서도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만한 변화를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라얀 앰네스티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더 가시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현장으로 더 가까이(Moving closer to the ground)” 라는 슬로건에 맞춰 저와 국제사무국의 동아시아 팀은 홍콩의 지역사무소로 이전하여 보다 통합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작은 국제사무국과 같습니다. 조만간 한국지부와 더 가까워진 동아시아 팀을 만나게 될 겁니다.
김 마지막으로,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라얀 우선 한국지부의 회원과 지지자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한국에 인권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저에게 큰 행복이자 자랑입니다.
7~8년 전인가요.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지부 사무실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국원 두 명과 자원활동가 세 명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지부는 많은 성장을 이뤘습니다. 이 점이 정말 고무적이지만 이런 성장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봅니다. 국제앰네스티가 현장으로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움직이듯이 한국지부도 이러한 움직임에 함께 해 달라는 더 큰 기대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계속 싸워나가야 합니다. 한국지부 회원들이 한국의 인권침해에 대해 싸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국제’ 단체의 일원입니다. 그래서 국제적인 캠페인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화된 지구촌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 여러분, 인권을 위한 우리의 멋지고, 고무적인 싸움에 함께해 주십시오. 계속 싸워나갑시다! 그 어느 때보다 촛불이 환하게 타올라 불의한 세상을 밝히고, 인권침해를 몰아낼 수 있도록 합시다. 보통사람들의 강력한 힘을 보여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