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블로그 리뷰

들숨날숨, 인권과 호흡하기 – 3강. 표현의 자유와 인권

9월 27일,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에 관한 특강이 이어졌다. 최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한국의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의 훼손이 심각하다고 우려를 표한 만큼 우리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최근 들어 심각히 후퇴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러한 시기에 표현의 자유에 대해 우리는 어디까지 한계를 두고 있는지 그 기준을 함께 살펴보자.

“우리가 진리의 힘을 의심하여 허가와 금지를 하는 것은 유해한 일인 것이다. 진리가 허위와 맞붙어 논쟁을 하도록 하라. 누가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패배하게 되는 경우를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John Milton)

“설령 (어떤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단히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John Stuart Mill)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이 두 사람의 의견이 많이 인용됩니다. 위의 말에 따르면 진리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아도 결국엔 드러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표현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닙니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먼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이야기 하는 것은 한국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너무 억압되어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만을 외치게 되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반대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강의의 주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보는 것입니다.

먼저,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에 대해 3가지를 들어 이야기해 봅시다.

첫째,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

둘째, 사상의 자유시장론

우리는 어떤 표현이 있을 때, 그것이 좋은 표현인지 나쁜 표현인지 특정 시기에 구분하여 가려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쁜 표현은 낙오되고 좋은 표현은 남게 됩니다. 즉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나중에 결정되기 마련이죠. 때문에 어떤 특정 단계에 국가가 나서서 나쁜 표현을 가려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셋째, 민주주의의 조건

민주주의가 가능 하려면 국민의 의견이 있어야 합니다. 국민의 주권행사와 권력감시를 위한 기본적인 가치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공익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국가는 항상 부패할 수 있고 우리가 대의 민주주의를 택한 이상 국가를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고 있습니다. 대개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진보하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2009년 촛불집회 이후로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모든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죠.

보호할 가치가 있는 표현과 보호할 가치가 없는 표현의 구분이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는 표현에 대해서 국가규제가 필요할까요? 어차피 경쟁력 없는 이론은 퇴출될 수 밖에 없고 그 표현이 나중에 의미 있는 표현이 될 수도 있는데 특정한 때 국가가 그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국가의 권력 만용입니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첫째, 법적 도덕주의(온정주의, 후견적 간섭주의, 보호주의)입니다.

국가가 부모님 입장에서 국민을 자식같이 돌보는 것이죠. 의도 자체는 좋지만 시대에 안 맞게 규제하고 훈육하는 경우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규제하고 싶은 마음. 내버려두면 좋아질 거다라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막고 싶은 것이 바로 후견주의입니다. 아무리 국가의 의도가 선하다고 할지라도 과연 국가가 부모 같은 마음으로 국민에게 접근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두 번째, 해악의 원칙입니다.

어떤 표현이 구체적인 해악에 이르지 않을 경우에는 규제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명백·현존위험의 법칙입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무장을 하거나)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넷째, 사상의 자유 시장론입니다.

아무리 잘못된 의견이라도 그것이 자유롭게 토론된다면 ‘시장에 논리’에 따라 퇴출될 것이므로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위축효과 금지이론입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 위축효과를 발생시키는 규제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경우, 규제가 두려워 어떤 표현을 회피하거나 자제하는 경우 발생합니다. 따라서 규제의 필요성에 동감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의 규제는 예측 불가능할 때가 많고 굉장히 선별적으로 처벌하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신뢰성을 잃게 됩니다.

여섯째, 자유주의적 후견이론입니다.

진실을 말하려는 자는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고의로 허위를 유포하는 사람은 위축시켜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아무리 표현이라도 고의로 허위를 유포하는 사람은 규제해야 합니다. 피디수첩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보도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법원에서는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피디가 모든 취재방법을 동원해서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노력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주진우 기자의 나경원씨 피부과 사건도 사실과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 성실성을 가지고 보도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모든 거짓을 다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지 않고 처음부터 팩트를 조작한 것을 규제하자는 것입니다.

최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이슈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나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사회소수자의 보호를 위해 다수자의 차별적 발언을 금지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문제가 이슈 되고 있습니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면, 2009년에 인도인 후세인이 버스에서 한국인 박 모씨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비방하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박 모씨를 형사 고소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규제하는 별도의 법규가 없어 한국에서는 박모씨를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벌금 100만원)하였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특정 종교나 국적의 외국인을 혐오하는 듯한 발언을 해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고, 인권단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혐오발언은 집단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단순히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집단 전체를 공격하고 더 큰 사회적 차별을 고착화시킬 수 잇다는 점에서, 그 사회적 유해성이 크기 때문에 처벌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국가에서는 혐오발언에 대해 형사처벌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생각해봅시다.

1. 김인규 교사 누드사건(2011)

미술 선생님이자 화가인 이 사람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자신의 누드사진을 올려놓았고 긴급구속되었습니다. 김인규 교사는 당시 홈페이지 방문자가 이 사진을 보기까지 미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와 질문을 던집니다. 즉 이 사진은 성 상품화와 규격화된 아름다움에 대한 것에 반대하기 위해 올린 사진으로, 그 맥락을 통해 사진을 접할 경우에는 이 사진을 음란물로 판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음란물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규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관련 사진들입니다. 불편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2. 대통령을 비방한 인터넷 아이디 사례

대통령을 비방한 아이디는 @2MB18noma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해 인터넷 주소창에서 접근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 일이 화두에 오르자 이와 유사한 패러디 아이디들이 오히려 더 많이 생겨났습니다.

3. 북한을 풍자하고 패러디하는 트윗이 북한을 선전, 찬양한다며 국보법으로 기소된 사례

제가 보기엔 적화통일되면 이 분은 오히려 북한에 잡혀갑니다. 이 분은 적화통일 되면 정말 위험합니다.

4. 래리플린트 사건(1988)

포르노 잡지 ‘허슬러’ 창간자 래리플린트가 ‘보수주의적 영적지도자’ 제리 폴웰 목사를 조롱하고자 첫경험 상대가 어머니였다는 거짓 인터뷰를 게재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대법에서 무죄판결을 받습니다.

5.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1992)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라는 책이 건전한 성적 풍속과 성도덕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1,2,3심에서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6. 신학철 화백의 작품 ‘모내기’사건

신학철 화백의 그림 ‘모내기’가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죄)로 기소되었습니다. 이 그림에서 좋은 것은 위쪽에, 나쁜 것은 아래쪽에 표현되어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을 의미’한다며 국보법 위반으로 최종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7. 성조기 소각 사건(1984)

1984년 그레고리 존슨이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댈러스시에서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잡혔습니다. 성조기를 소각하는 것이 법에 제한되어야 할 만큼 사회에 유해하고 위험한 것일까요? 다행히 연방대법원에서는 “대법원의 결정은 성조기가 상징하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고, 존슨 같은 사람도 관용하는 것이 미국 사회의 힘” “성조기를 훼손했다고 처벌한다면 성조기가 상징하는 소중한 자유가 훼손될 것” 이라며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8. 미네르바 사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박씨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기소하였고 1심 무죄판결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유로운 토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게 되었죠.

9. PD수첩 사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에 대한 PD수첩 방송 제작진 6명이 농림수산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받았죠.

결론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한계에 관한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까요? 특히 무엇을 기준으로 어디까지 한계를 두어야 할까요?

첫째, 대립하는 이익의 형량

나쁜 표현이긴 하지만 규제할 때의 이익과 손해(부작용)를 따져 이익의 형량에 따라 규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비방 아이디 사건의 경우 나쁜 표현이긴 하지만 규제할 때 오히려 더 그 표현이 화두가 되어 유사 패러디 아이디가 급증했습니다. 이때는 규제할 때의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크겠죠.

둘째, 침해의 위험성 정도

침해의 위험성 정도가 있긴 하지만 법으로 규제하기에는 너무 미약해서 규제하는 경우에 손해가 더 큰 경우입니다. 성조기 소각사건을 예로 들어봅시다. 성조기 소각이 법에 제한되어야 할 만큼 사회에 유해하고 위험한 것일까요? 법으로 처벌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정도입니다.

셋째, 침해의 회복 가능성

어떤 표현이 침해가 있긴 한데 자체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있어서 국가가 나설 필요가 없는 경우 입니다.

피디수첩의 사례를 살펴봅시다. 피디수첩이 방송한 광우병 관련 보도로 농림수산부장관이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장관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장관이 공적인 일에 대해 공격을 당하면 다음날 기자회견이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은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의견을 분별할 수 있고 침해의 회복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에 더 가중이 갈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공인이더라도 공적인 일은 국민이 감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쪽에 더 가중이 갈 수 있지만 사생활의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가 갖는 가중은 줄어들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표현의 자유의 기준과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요즘 사회에서 연예인이나 특정개인이 명예훼손을 당하는 경우, 이 경우도 표현의 자유로 허용해야 하나요?

개인의 사생활의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의 기준이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또 다른 개인의 자유를 해치면서 이뤄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 개인들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시스템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상 털기가 가능한 구조 자체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먼저 교원은 노동자로서의 표현과 교사로의 표현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수업시간을 활용해서 학생들에게 관철시키는 표현은 규제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수업시간이 아닌 노동자로서 국민의 입장으로 정치적 입장을 말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교사의 단체 행동권을 규제하는 나라는 전세계 어느 나라도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교사의 표현의 자유가 OECD국가 중에 가장 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공무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업무 중에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표현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국민으로서 업무시간 외의 일반적인 의사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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