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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젠더정의 캠페이너 텀을 떠나보내며

7년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캠페이너로 일했던 텀이 올 여름, 한국지부와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텀은 한국지부 캠페이너로 일하기 전부터도 그룹활동을 활발히 해 온 회원 중의 하나였는데요. 텀에게 회원에서 직원으로, 인권옹호자에서 캠페이너로써 일해온 그간의 소회를 들어보았습니다.

2023년 7월, 텀이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와 함께 혼인평등 캠페인 <그냥 결혼이야>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한나 텀, 이렇게 떠날 때가 되어서야 인터뷰를 하게 되다니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혹시 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해 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전 뉴질랜드에서 태어났고, ‘평생 활동가’라고 저를 소개하고 싶어요. 한국에서 17년 동안 살았고, 현재 파트너와 두 명의 아이와 살고 있는 텀 레이니스미스Tom Rainey-Smith라고 합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캠페이너로 7년 정도 일했습니다.

한나 스스로를 어릴 때부터 활동가라고 생각했다니 신기해요. 어떻게 인권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음악을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가사나 그들의 말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특히 펑크 음악을 좋아했는데 캐나다의 펑크 밴드 프로파간디Propagandhi의 노랫말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건, 성소수자,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밴드였고, 저 역시 동물권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후엔 반전과 평화를 위한 액션 그룹에도 참여하고, 친구들과 액티비스트 그룹에 들어가서 글도 쓰고, 시위에도 나갔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국제앰네스티 캠페이너로 일하게 되었네요. 웃음

한나 텀은 비건이기도 하죠.

맞아요. 음악을 통해 비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진 않았었는데요. 14살 때 엄마와 영국에 갔었고. 당시 동물 실험 반대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 이후에 동물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로 살게 된 것 같아요.

한나 17년 전에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 정말 쉽지 않았어요. 그 때는 매일 비빔밥만 먹었어요. 하하.

한나 앰네스티는 어떻게 알게 되었어요?

제 첫 기억은 초등학교 때인데요. 그때 앰네스티 캠페이너들이 학교에 와서 인권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때 참여하면서 앰네스티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어요. 뉴질랜드 사람들은 대부분 국제앰네스티를 잘 알기도 해요.

2009년 3월, 텀이 청계천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여해 여성폭력반대 피켓을 들고 있다.

한나 한국에 왔을 때 국제앰네스티가 한국에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에서는 우연히 앰네스티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었거든요. 동료 중 한 명이 앰네스티 영어 그룹에 있다고 알려줘서 저도 같이 활동하게 되었어요. 영어 그룹 코디네이터 할 사람이 없어서 누군가 저보고 해보라고 제안해줬던 게 앰네스티와 더 깊이 연결되게 된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한나 와 당시에 앰네스티 영어 그룹이 있었군요.

한 달에 한 번씩 20-30명이 모이는 큰 그룹이었어요. 당시 앰네스티 대학생 모임앰대과도 활발하게 활동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서울퀴어퍼레이드도 그룹 이름으로 참여했었어요!

한나 대단해요. 그럼 텀은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앰네스티 직원으로 일하게 된 거군요?

네, 당시에 저는 전쟁반대 운동도 하고 있었는데요. 그 때 한국지부가 양심적 병역거부 캠페인을 할 때였고, 캠페이너로 일해보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한나 회원으로 활동할 때와 직원으로 활동할 때 다른 점이 있었나요?

지금 생각해보니 회원으로 활동할 때는 앰네스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APYNAsia Pacific Youth Network의 일원으로 자원활동을 했었는데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직원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들은 잘 몰랐죠.

2010년 6월, 텀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그룹 48 회원들과 함께 을지로에서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있다.

2010년 5월 31일, 텀은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 분들에게 아시아태평양청소년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캠페인 탄원을 전달했다.

한나 국제앰네스티 직원으로 일하면서 새롭거나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나요?

국제앰네스티가 그 동안 열심히 활동한 덕분에 다른 단체 활동가들이 앰네스티를 잘 알고 있다는게 활동하는데 큰 힘이 되었어요. 다양한 기술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단체 내부에 있는 것. 또 사람들의 기대만큼 역동적인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점도 좋았던 것 같아요. 애드보커시 활동을 하면서 앰네스티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단체라는 것도 더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체의 위치와 신뢰도 때문에 우리가 영향력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이 있죠.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 영향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책무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어요. 권리보유자와 파트너 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캠페인 여정에 잘 반영해야 더 의미있는 캠페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요. “Amplify the voices of those unheard”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가 되자는 말을 들 되새기고 있어요.

한나 텀이 처음 한 프로젝트가 뭐였나요?

2016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위해 기획한 홀로그램 집회 <유령집회>

2016년에 앰네스티 유령집회를 열었어요. 그 때 외신 매체에 연락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동시에 한국어가 지금보다 능숙하지 않을 때여서 소통하는 게 힘들기도 했죠. 유령집회 캠페인은 대중들에게 집회 시위의 자유를 알리기 위해 기획한 행사인데요. 네덜란드 지부의 Policing human rights unit 담당자를 초대해서 국내법과 제도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했었죠. 앞으로 정책과 법률에 대한 인식을 높이면서 파트너 단체와 협업하는 캠페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올해 저희가 여러 팀과 함께 준비한 혼인평등 캠페인 <그냥 결혼이야 Just Marriage>도 민법 개정을 이야기하면서 대중 인식을 제고하려고 기획한 것이니 어느 정도 제가 희망했던 사업과 맞닿아 있어요. 추후 더 포괄적으로 제도적 분석을 할 수 있다면 좋겠죠. 차별금지법이나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한 성별정정제도 개선까지 나아간다면요.

한나 텀은 지금 젠더정의 캠페이너로 일하고 있죠. 앰네스티에서 LGBTI 캠페인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2017년에 스위스 제네바 UPRUniversal Periodic Review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1]에서 희망법의 류민희 변호사와 한희 변호사를 만났어요. 당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같은 로비 활동을 하고 있었죠. 2017년 말에 LGBTI 캠페인을 국내에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위해 활동가 에디 님과 여러 LGBTI 활동가들을 모아 포커스 그룹을 진행했었고요.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 사무소에서 군형법을 주요한 전략으로 가져가자고 결정해주어서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한나 저는 앰네스티에 입사했을 때 LGBTI 캠페인이 여성인권과 함께 젠더정의의 중요한 아젠다로 다루어지고 있어서 당연하게 느꼈는데 이미 2016년부터 텀의 노력이 있었네요. 큰 발걸음을 내딛어주셔서 감사해요. 앰네스티에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아시겠지만 국제앰네스티의 정책과 입장이 엄격해요. 저희가 발언하는 문장 하나 뒤에는 국제인권법 기준과 앰네스티 정책을 확인하는 Law & Pol 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시간이 걸리기도하고, 다른 단체처럼 즉각적으로 입장을 내지 못할 때도 있어요. 내부의 정책과 입장 때문에 다른 단체와 쉽게 협업하지 못할 때도 있죠. 업무할 때마다 매번 이 부분이 어려운 것 같아요. 동시에 이런 기준과 정책이 활동의 튼튼한 기반이라고도 생각해요. 이 기반 때문에 앰네스티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말이죠.

2016년 9월 28일, 텀이 백남기 강제 부검 반대 시위 현장에서 경찰을 마주보며 서 있다.

한나 맞아요, 저도 그 부분이 어렵다고 여겨지는데 동시에 회원과 지지자들이 저희를 더 신뢰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잠시 과거를 돌아볼 게요. 앰네스티에서 일한 지 7년 7개월이나 일하셨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기억나는 사람이나 일화가 있나요?

2016년 9월에 故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직후에 경찰력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시위 현장에 있었어요. 하루 종일 경찰 방패 앞에 앉아 있었죠. 그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제가 서울대 병원에 있었죠. 故 백남기 농민의 강제 부검을 하려고 하던 병원 현장예요. 사안이 사안인지라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UN Special rapporteur on freedom of peaceful assembly and of association에게 급히 요청을 했어요. 특보관이 입장을 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그날 밤에 병원 바닥에서 잤는데, 시민들과 현장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캠페이너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나 저도 당시 앰네스티가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며 온라인 액션을 했던 걸 기억해요. 텀이 그 현장에 있었군요.

한나 앰네스티의 캠페이너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현장에서 투쟁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동시에 파트너 단체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협업 능력도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또 국회, 유엔, 대사관 같은 기관의 사람들을 설득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일의 목표에 따라 티셔츠를 입고 온몸이 땀에 젖어가며 피켓을 들어야 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동시에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공식적인 미팅을 할 수도 있어야 하죠. :)

한나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텀이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2016년 텀이 파트너 미나 님과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셀카를 찍었다.

학부 시절에 개인적으로 책을 읽다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되었어요. 당시 광주에서 있었던 민중들의 활동을 책에서 읽게 되었고, 평범한 시민들이 잠시나마 광주시를 해방시키고 군인들을 쫓아내고, 임시 사회를 조직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2016년, 2017년 촛불집회도 특별했죠. 저도 파트너랑 자주 갔었는데요. 정말 대단한 집회였다고 생각해요. 경찰이 필요하지 않은 비폭력 집회, 음악이 있던 평화로운 시위! 모든 게 놀라웠어요.

촛불집회 직전에는 다양한 시민들의 시위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엔 많이 보여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젠더정의에 대해 정치와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는다고 느껴져요. 여성인권에 대해 시민사회와 시민들은 여전히 큰 목소리로 말하고 운동하고 있지만 잘 보여지지 않아서요. 이 부분이 요즘은 아쉬워요.

한나 잠시 화제를 바꿔 볼 게요. 텀의 마지막 캠페인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해요.. 올해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저희 팀과 같이 준비했잖아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나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서울퀴어퍼레이드여서 너무 의미있고 기뻤어요. 그동안 LGBTI 캠페인을 많이 했었지만, 제가 퀴어퍼레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하루라도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당사자가 아닌 앨라이지만 퀴퍼 현장에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있을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사실 집회로 따지자면 한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집회죠. 올해는 혐오 세력 때문에 서울시청에서 열리지 않았지만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매년 1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행사잖아요. 10만명이라니! 정말 대단해요. 앞으로 더 규모가 커지지 않을까요?

제가 살았던 뉴질랜드는 혼인평등이 이미 실현된 국가예요. 2013년도에 이미 동성결혼 법제화가 이루어졌죠. LGBTI 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의 연대를 통해 가능했어요.

올 여름 한국지부가 런칭한 혼인평등 캠페인 <그냥 결혼이야 Just Marriage>는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맞춰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긴 했지만 캠페인팀과 커뮤니케이션팀이 같은 주제에 대해 기획부터 논의하고 행사를 준비할 수 있어서 의미있고 좋았어요.

한나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었나요?

우선 퀴퍼라는 중요한 날, 회원과 지지자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뜻깊다고 생각하고요. <그냥 결혼이야> 캠페인을 통해서 일반 대중들이 ‘혼인평등’이라는 단어를 들어보고 결혼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을 원해도 할 수 없는 커플이 있다는 건 ‘평등’의 가치를 위배하는 거잖아요.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동성결혼 법제화의 흐름이 만들어졌으면 해요.

7월 28일에 시작한 디지털 캠페인 <내 친구의 결혼식: 그냥 결혼이야>는 누구나 혼인평등을 지지한다는 걸 재미있게 보여주는 캠페인인데요. 이 캠페인을 통해서도 LGBTI 공동체와 앨라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지지자들이 LGBTI 인권 옹호자임을 자신있게 드러내고 자랑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침묵하면 지지하는지 모르니까요. 내 LGBTI 친구를 위해서라도요 🙂

2023년 7월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텀이 “그냥 결혼이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퍼레이드 현장 속 텀은 구호를 외치거나 퍼레이드 현장 곳곳을 누비고 있어 사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나 저도 이번에 텀과 함께 혼인평등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즐겁고 좋았어요. 서울퀴퍼를 통해 저희가 고민한 결과를 대중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어서 더 좋았구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한국지부 회원과 지지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외부에서 볼 때 국제앰네스티는 큰 단체로 보이지만 회원과 지지자 분들이 없다면 저희의 힘은 미흡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께 최대한! 많이! 가능한! 범위에서 참여해 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많은 분이 활발하게 참여해 준다면, 우리의 운동 영향력이 더 세지겠죠.

분홍색을 좋아하는 텀은 서울퀴어퍼레이드를 “그냥 결혼이야”라는 슬로건과 함께 분홍색으로 물들였다.항상 활동가로 불리고 싶다는 텀 활동가,

수고 많았어요. Ngā mihi maioha. 인권의 현장에서 또 만나요!

인터뷰: 신한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커뮤니케이션팀)
텀과의 인터뷰 어떻게 읽으셨나요?
여러분을 오늘 레인이와 보우의 결혼식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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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PR은 Universal Periodic Review의 약어로, 앰네스티에서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라고 일컬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193개의 UN회원국의 인권 현황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절차로, 유엔인권이사회가 2006년 3월 UN총의 결의에 따라 창설된 이래, UPR은 1년 후인 2007년 6월, 위원회의 구체적인 제도 구축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심의를 통해 모든 회원 국가가 자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선언하도록 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전체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차례 검토를 하는 데는 4년 반의 시간이 걸리기에 이를 주기로 합니다. UPR은 기본적으로 47개 인권이사국으로 구성된 실무그룹이 진행하며 인권이사국이 아닌 옵서버 국가도 참여 및 발언이 가능합니다. 매년 3번의 세션을 진행하는데 한 세션당 2주가 할애되며 이 기간 보통 14개국이 순서대로 심의를 받습니다. UPR 주기는 1차(2008년 4월~2011년 10월), 2차(2012년 5월~2016년 11월), 3차(2017년 5월~2022년 2월)를 거쳐 지난 2022년 11월부터 4차를 맞았습니다. 한국 정부의 경우 2008년 5월 7일 첫번째 심의를 시작으로, 2012년 10월 25일 2차 심의, 2017년 11월 9일 3차 심의를 거쳐 오는 2023년 1월 26일 4차 심의를 받습니다.

인권이사회는 UN헌장, 세계인권선언, 그 국가가 비준한 인권 협약이나 자발적으로 선언한 인권 정책, 프로그램 등이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를 검토해 심의 대상국에 권고사항을 발표하고, 해당 정부는 수용한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보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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