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마음기록모임, 나의 그늘이 되어 준 사람들
기후마음기록모임 완주를 기념하며
오늘 당신의 기분과 상태는 어떤가요? 폭염과 폭우로 뜨겁고 습했던 지난 여름, 열 번의 기록을 이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기후정의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손에 담기 위한 시작으로 가장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마샤라고 해요. 올해 기후마음기록모임에 마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작년에는 다른 활동명으로 참여했었고요. 처음 기후마음기록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몰라서’였습니다. 저는 기후위기가 무엇인지, 기후정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어요. 모른다는 것이 알고 싶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나날이 기록을 경신하는 이상기후 현상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 것인지, 할 수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라곤 이왕이면 손수건과 텀블러를 사용하려는 것 정도, 주변의 비건 친구들을 보면 ‘와~!’ 하고 감탄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일상과 기후의 변화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무슨 마음을 먹어야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텐데, 도무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를 모르겠던 때에 기후마음기록모임 모집 공고를 보았습니다.
마음, 이라는 말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있으니까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처음 한글을 배울 때 기억, 니은, 디귿을 써보는 것처럼 아주 가벼운 시작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어느 날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줌(zoom) 화면 속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과 만났고, 기후마음기록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 에어컨을 켜두고 잤더니 너무 건조해요. 하지만 너무 습해서 못 버티겠어요.
– 일찍 일어남. 기분 좋음.
– 과식했더니 불쾌한 기분이 들어요. 적당히 먹을걸.
– 어제 집에 걸어서 왔어요. 산책을 좋아하시나요?
– 친구들과 비건 카페를 다녀왔어요. 물수건 대신 손 씻는 곳이 있어요. 어디냐면요…
– 어제 드라이브 정리함. 추억여행으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림. 헐. 이런 사진이 있었다니 믿을 수 없음…!
무지개가 떴다고 메시지를 주시다니요
아주 평범하고 특별한 각자의 일상들이 손글씨로, 텍스트로, 어느 책 구절과 함께, 사진과 함께 공유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모두 다 다른 모습이었지만 비슷한 지점들이 늘 있었습니다. 우리의 머뭇거림이, 사소한 죄책감이, 부끄럽지만 털어놓는 진심들이, 한 번 더 내어보는 용기가 그랬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아는 사람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긍정적인 사고를, 호기심을, 나에 대한 믿음을, 끈기와 노력을,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와 같은 문구를 골라보며 기후마음기록이라는 여행의 준비물을 나눴습니다. 혼자서 꾸린 가방이 기록을 통해 공유되면 다들 반짝이는 이모지와 댓글로 정성스러운 언어를 이어 붙였습니다.
우리는 기후정의에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 뭘까, 제약 없이 뻗어나가는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마음 속에 어렴풋이 흩어진 기후정의와 관련된 단어들이 촤라락 펼쳐졌습니다. 나의 생각이 기록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가서 연결되었고, 다른 이들의 기록들이 내가 놓친 부분에 자리해주었습니다. 아쉬움에 자책하는 사람의 기록 옆에는 반드시 용기를 내자는 기록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는 식이었습니다.
질문들이 제안하는 활동들을 통해 명상을 하기도 하고, 나의 가치를 색깔로 연결해보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기록도 있었고, 앞으로의 날들을 그려보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기록을 통해 지금을 충실히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해진 타임라인이 있어 그 날짜에 맞춰 업로드를 해야 했지만, 때로는 충분한 생각의 시간과 진솔한 기록을 우선 하느라 지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마감 시간보다 조금 늦어져도 우리 서로의 무사 완주를 기원하며 기록 속에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자기만의 속도로 끝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모두의 완주를, 나름의 완주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기후라는 주제로 마음이 담긴 기록을 주고 받으며, 진지함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날들이 쌓여갔습니다.
자기만의 완주를 향해 달리고 있는 ^^ 달팽이 기록자들을 모두 웃게 만들었던 밈 이미지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함께 주변을 둘러보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주변의 물건들, 사람들, 어떤 장소, 어떤 시간… 좋아했던 혹은 좋아하는 풍경이, 경이로운 자연이, 일상 속 무심코 지나쳤던 모습들이 공유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기록 속에 담긴 시선을 따라가보며, 멀리만 보던 사람도 가까이로 눈길을 옮겼고, 가까이만 보던 사람도 멀리 보는 경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만약, 기후마음기록모임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딱 한 마디만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한 고마움의 언어일 것입니다.
기후마음기록을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가져보아야할 지, 우리도 모르는 새 깊이 대화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거창한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은 질문을 시작으로 진솔한 소통과 연대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쌓여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며 마지막 기록을 마치면서는 깊은 연결을 느꼈습니다. 함께 기록을 나눈 사람들과도 그러했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로부터의 끝단에, 또 다가오는 미래의 입구에 있다는 감각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차차 늘려가고, 오래 가기 위해 자책보다는 용기에 집중하고, 다음의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나아갈 때 가능하다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어디선가 ‘희망이 없다면 기록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보고, 제게는 기후마음기록이 떠올랐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미래를 기대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대한 기록일지라도 그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먼지를 털고 신발 끈을 묶는 것 같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모두가 나름의 완주를 해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한 공간에는 다른 이들의 기록와 소통이 채워져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깊은 시간이 가득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나 한 사람이 무슨 변화를 만들 수 있나, 하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참여한 것에는 그래도 혹시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좋은 의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기록을 마치며 함께 기후마음기록 모임을 꾸려주신 다예님과 함께 해주신 분들을 떠올려보고, 모두의 편안한 밤을 진심으로 바랐던 기억이 납니다.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내며 기꺼이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고, 처서가 지났다며 절기를 함께 세어보고, 가능한 가감 없이 꺼내놓은 진심들 덕분에 폭염과 폭우 속에서 함께 화도 내고, 울고 웃고, 나답게 문제를 마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후마음기록모임은 줄여서 ‘기마기모’라고도 불렸는데, 어떤 한 사람이 그렇게 부르자 다들 따라했습니다. 누군가 가득 차 있는 메일함이나 드라이브를 정리했다고 하면, 다들 나도 그렇게 했다고, 하겠다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누군가 이제부터 책을 한 권 다 읽기 전에 미리부터 다른 책을 사는 소비는 하지 않겠다고 하자, 누군가는 또 ‘저는 몇 년은 책을 못 살 것 같다’고 댓글을 달았고,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한동안은 책을 사기 힘들 사람들 모임이라며 웃었습니다. 가끔씩 오프라인의 비건 카페, 식당 같은 곳에서 삼삼오오 만나 모두에게 무해한 음식을 함께 나누기도 했고, 좋았던 글과 영상들을 공유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진솔한 고백은 모두를 울리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평가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도록 곁을 나누었습니다.
함께 나눈 소중한 대화들 *캡쳐하여 흐림 처리 적용
모든 기록과 모든 댓글이 마치 편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정함이 이불처럼 깔려있어 그 위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의 말이 제게 다가와 저만의 것이 되었고, 저의 기록 또한 그 사람에게 다가가 그 사람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수와 사유, 공명이라는 단어가 기후마음기록모임을 떠오르게 해서 공유했던 글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우리가 ‘함께’한 기후마음기록모임은 ‘잠깐’의 타오르는 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가 그러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이전과 이후를 다르게 살게 할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분명하게 스며들어 전과 다른 소중한 힘이 될 것이고, 기후마음기록 다음에도 계속되는 일상의 어느 순간과 다시 만나 다르게 반짝이며 빛을 낼 것입니다. 놀랍게도 큰 변화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주 아주 사소한 시작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한 순간들을 보태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의 기후마음기록이 모든 이들 각자의 기록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