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은 생존권과 연쇄관계에 있다.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공간을 빼앗는 것은 인권을 유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권과 인권은 한 몸이다.
2012년 12월, 욤 보파(Yorm Bopha)는 첫 공판에서 3년 금고형을 구형받았다. 그 후 석 달 만인 오늘 3월 27일, 보파는 또 다시 법정에 섰다. 그의 무죄가 증명되고 그의 인권이 보호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벙깍 커뮤니티는 재판이 이루어지는 프놈펜 대법원 앞에서 좌선하는 과정으로 시위를 대신했다. 그들은 시종일관 말을 아끼고 향을 피웠다. 지난 2월 13일에 공권력에 의해 폭행을 당한 보파의 남편, 사쿤(Lous Sakhon)도 자리를 지키고 보파의 공판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좌선하는 것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벙깍 커뮤니티 ⓒ이주영

프놈펜 대법원 앞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시위대 ⓒ이주영
목소리를 높여 구호를 외치거나 격렬한 몸싸움 없이 진행된 집회에서는 사법 기관의 상징이며 그 지향점을 나타내는 대저울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시위대의 곁을 지켰다. 벙깍 커뮤니티는 정의와 평등을 수호하는 사법 기관의 치우치지 않은 재판을 기대하면서 무더위 속에서도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재판 결과를 기다렸다. 그들은 보파의 석방과 비폭력 저항을 드러내는 피켓을 들고 벙깍 지역 주민들의 연대를 강조하고 강제 퇴거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한, 새장에 갇힌 새를 하늘로 날려보내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보파가 자유의 몸이 되길 기원했다. 이는 정부의 압제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보파가 조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이기도 하다.
벙깍 강제 퇴거가 시작된 이후, 정부와 주민, 기업과 주민간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15명의 벙깍 지역 주민이 수감되었던 지난해, 그들의 석방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폈던 보파는 벙깍 커뮤니티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훼손된 정의와 빼앗긴 주거권의 회복을 주장하며 인권을 무시한 정부, 기업에 당당히 맞서왔었다. 평범한 주부에서 적극적으로 시위를 주도하는 주거권 활동가 된 보파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 체포를 당한 건 지난해 9월 4일의 일이다. 벙깍 지역, 빌리지 22에서 오토바이를 훔치려던 두 명의 절도범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체포, 구속되었다.
장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보파의 보석 신청은 기각되었다. 보파는 재판 직후, 승합차에 태워져 신속하게 프레이 사 교도소(Prey Sar Prison)로 이송되었다. 보파와 그의 가족은 보파의 건강상 문제와 양육 등의 가족부양을 이유로 보석 신청을 한 상태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심장병의 심각한 상태를 증명할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점, (강제 퇴거에 대항해서 집회를 주도하는) 활동 등의 특이점 등을 근거로 기각 판결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보파는 단 한 명의 목격자도 보파가 폭행을 가했다는 증언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속되었고, 그 어떤 납득할 만한 증거가 없음에도 수감되어 있다. 그로 인해, 보파의 수감이 인권 활동가의 입막음을 위한 법적인 절차임이 자명해졌다. 그 동안 벙깍 커뮤니티는 보파의 석방을 위해 지속적인 집회활동을 벌여왔다.

무더위 속에서도 집회 자리를 지키는 벙깍 커뮤니티 ⓒ이주영
보파의 석방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던 벙깍 커뮤니티는 기각 소식을 듣고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지 못한 법정을 향해 거세게 항의했다. 100 이상의 집회 군중 가운데 일부는 기각 결정을 힐난하며 대법원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또한 시위대들이 그토록 갈망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으로 준비해 간 대저울 조형물을 부수고 태우기도 했다. 정의가 짓밟혔으므로 그들 역시 강도 높게 비판을 목소리를 냈다. 벙깍 지역에서 이웃해서 지내온 대다수 여성 주민들은 보파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런 심경을 드러냈다. 또 다른 주거권 활동가인 행 멈(Heng Mom)은 “우리는 우리의 주거권을 찾기 위해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정의가 우리의 편을 설 것입니다.”라고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시위대는 판결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대법원과 멀리 않은 곳에 위치한 왕궁으로 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왕에게 중재를 요청하기도 했다.

보석 기각 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시위참여자 ⓒ이주영

대저울 조형을 태우며 판결의 불공정성을 항의하는 시위대 ⓒ이주영
기각 소식이 있기 전, 사람들은 벙깍 커뮤니티의 상징이기도 한 연꽃을 한 손 가득 들고 있었다. 재판이 끝나 보파의 석방 소식을 들으면 그 기쁨을 연꽃을 높이 들어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그들은 이 불행한 싸움이 더 이상의 희생과 고통 없이 끝나기를 바란다. 부처의 자비처럼 약자에 대한 관대함으로, 평등과 자유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으로 강제 퇴거의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오늘 재판의 결과, 봉우리 진 그들의 소망은 채 꽃피진 못했다. 보파는 증거도 없는 죄목으로 교도소로 다시 이송되었고, 남겨진 가족들은 또 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판결 소식에 그들은 혼절할 듯이 분노했고 급히 떠나가는 보파의 뒷모습을 절망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주거권을 찾기 위한 그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벙깍 강제 퇴거는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재판장을 빠져나오는 욤 보파 ⓒ이주영
보파는 재판장을 빠져 나가는 짧은 찰나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정의를 되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정의를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