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6일, 캄보디아에서 주거권 활동가인 보브 소피(이하 소피)와 섹 소쿤롯(이하 알렉스)가 한국을 방문했다. 특히 이들은 방한기간 중 이틀 동안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동자동 사랑방과 재개발로 주거권을 빼앗긴 북아현동, 용산을 방문해 한국의 주민활동가를 만났다.
동자동 사랑방 : 쪽방촌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마을공동체
서울역 근처에는 많은 고층빌딩이 늘어서 있다. ‘동자동’은 이런 고층빌딩들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으며, 이 곳에는 1천여 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쪽방촌이 형성되어 있다. ‘동자동 사랑방’은 이곳의 주민들이 지나가다 들러 목을 축이고, 아이들이 들어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노인분들이 쉬었다 가는, 말 그대로 ‘사랑방’이었다. 그 곳에서 탁자에 마주 앉아 위원장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쪽방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동자동 사랑방’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주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과, 이 곳이 언제 철거될지 모르지만 그것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날이 따뜻할 때 공원에서 다른 지역의 철거 상황이나 강제퇴거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서 ‘인권지킴이’라는 인권교육도 실시해요. 또 어버이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는 함께 모여서 행사도 하고 있고요. 이런 많은 사업들을 우리가 독자적으로 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여러 단체와 연대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재개발이 이루어진 지역을 보면 대비책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민들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가 똘똘 뭉쳐서 갑작스러운 상황이 오더라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우리 손으로 미리 준비하는 거죠.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주민들이 똘똘 뭉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게 물질적으로 다가가려고 하면 안돼요. 서로 대화로 소통하고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진정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위원장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소피는 캄보디아의 강제퇴거 상황을 사진을 통해 주민들에게 보여주었다. 한 주민은 집을 부수는 사진을 보며 ‘이렇게 멀쩡한 집을 부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또 알렉스는 영화 상영회 때 꼭 틀어달라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NGO에서 제작한 강제퇴거 관련 DVD를 선물하기도 했다.
동자동 쪽방촌은 주민들이 연대하여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캄보디아에서 온 두 활동가에게 큰 시사점을 주었다. 또 집이 단순히 네 개의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을 누리는 데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쪽방촌의 주민들과 캄보디아 활동가는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북아현동 : 세입자들의 권리는?
“용역들은 아내가 가게 안에 있는데도 굴삭기를 앞세워 강제철거를 시작했어요. 아내는 무너지는 돌 밑에 한쪽 다리가 깔리고 못이 박혀 그대로 쓰러졌어요. 그리고 그 날 이후 철거된 가게 자리 앞 인도에서 천막을 치고 노숙 생활을 시작했어요.”
북아현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재개발 지역이다. 이 곳에서 곱창을 팔던 한 부부는 재개발이 시작되고, 2011년에 갑자기 들이닥친 철거반에 의해 건물에서 쫓겨났다. 그 후 건물 앞 인도에 비닐천막을 치고 농성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상가세입자였던 이 부부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거리로 쫓겨났다. 재개발조합에서 제시한 보상금은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금액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조합은 더 이상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관할구청인 서대문구청도 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천막 바로 맞은편에는 ‘북아현동 주민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진정한 주민은 누구일까.
천막 뒤의 벽면에는 북아현동 철거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사진들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소피도 가방에서 캄보디아 강제퇴거 사진과 욤 보파의 사진을 꺼냈다. 사진을 보여주며 캄보디아 강제퇴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니 북아현동 아주머니께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셨다. 아주머니께서는 “철거를 당하고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생계가 막막하기도 했지만 이웃들의 차가운 시선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건너편 가게의 사람들이 우리 가게의 손님이었고 이웃사촌이었는데……” 라며 자신의 가게가 철거되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울먹이셨다.
알렉스는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정말 슬프고 유감입니다. 정말 공감이 갑니다. 우리도 항상 함께 하고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캄보디아에도 북아현의 상황을 알리겠습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지만 우리가 함께 연대한다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라며 철거민 부부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을 전했다.
용산 : 멈춰버린 시간 속의 용산
2009년 1월, 용산 4구역에서는 주민 5명과 경찰 1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 ‘용산참사’ 이후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고 있다. 대테러부대인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고, 어느 누구도 이 사건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철거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리고 용산 재개발 지역의 시공사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용산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용산에서는 ‘용산참사’ 당시 돌아가신 주민 한 분의 아내분(전재숙씨)과 아드님, 그리고 활동가 3분을 만났다. 소피와 전재숙 어머니는 같은 아픔을 나눴다는 연대감 때문이었을까,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듣는 내내 손을 잡고 놓지 못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피가 끝내 눈물을 흘리자 전재숙 어머니께서 “아니 이렇게 울면 어떡해. 이렇게 약해서 어떻게 싸울꺼야. 더 힘내야지. 더 강해져야지. 앞으로 더 힘든 일도 많을텐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라며 눈물을 닦아주고 꼭 안아주셨다. “긴 싸움이겠지만 힘내야지. 이 긴 터널을 지나면 언젠가는 꼭 밝은 빛이 나올꺼야.” 라며.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용산에서 장사하고 살던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연대하기 위해 올라갔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참사가 일어났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렉스는 “자기 일도 아니고 자기 집을 잃은 것도 아닌데 함께 연대하는 모습이 정말 감명깊습니다.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면 벙깍지역 주민만이 아니라 캄보디아 전역의 강제퇴거 피해자들과 연대해서 함께 싸우겠습니다.” 라며 의연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당신은,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닙니다.
한국과 캄보디아에서 강제퇴거가 일어나는 그 곳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 있었다. 집을 빼앗긴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아주 소박한 것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자본논리가 인간의 기본적인 주거권을 짓밟고 있었다.
한국과 캄보디아.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아픔을 겪은 그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소피와 알렉스는 희망을 가득 안고 캄보디아 벙깍호수로 돌아갔다. 하지만 희망을 본 사람은 소피와 알렉스 뿐만이 아니었다. 동자동의 많은 주민들과 북아현동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계신 철거민 부부, 그리고 용산의 전재숙 어머니를 비롯해 연대해주신 모든 사람들에게도 저 멀리 캄보디아에서 한국까지 와 준 소피와 알렉스는 희망, 그 자체였다.
마지막으로 알렉스가 북아현동 철거민 부부에게 남긴 말을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저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캄보디아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지구인입니다. 우리는 같은 지구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만약 당신이 어려움에 빠진다면 내 가족이 어려움에 빠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제가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마세요. 나는, 당신은,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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