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권입문과정 4강 [양심적 병역거부]는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저자, 임재성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강의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논의와 평화의 언어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평화에 관하여 [죽이지 않을 권리]
병역거부가 한국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다양한 쟁점들이 있다. 대체복무제를 시행하자, 그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딱 떨어지는 주제가 아니라,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병역거부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자유, 사상과 신념의 자유도 있지만 평화에 대한 개념도 있다. 아직도 평화란 주제는 우리 사회에 충분히 녹아져 있지 않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는 ‘죽이지 않을 수 있는 권리’라고 얘기해보고자 한다.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죽이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죽음 당하지 않을 권리는 많이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남을 해하지 않을 권리는 많이 이야기 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바로 병역거부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병역거부 운동이 처음 시작했을 때,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의문이 많았다. ‘원래 군대 가야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 즉 언어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장애인들이 ‘이동권’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동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이 탈 수 없는 버스, 건물들은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말을 만든 효과인 것이다. ‘병역거부권’이라는 말을 만들고 싶은데 아직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평화의 언어를 만드는 것이 한국사회 병역거부 운동의 진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성과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는 그 말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고 삼키고만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직도 온전하게 병역거부 운동의 의미가 잘 나타나지 못했다.
12년 째 병역거부 운동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병역거부 운동은 어렵다. 내 자신이 병역거부자이고 책까지 썼는데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내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힘드셨던 것이 감옥에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차라리 데모를 하다가 잡혀가지, 왜 병역거부로 잡혀가냐는 말씀을 하셨다. 이제 한국사회는 민주화든, 노동운동이든, 데모를 하다 잡혀가는 것은 허용이 된다.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얘기할 수는 있다. ‘미치겠다. 우리 아들 노동 운동한다’라고. 그런데 군대에 안 가서 감옥에 갔다는 것은 설명할 수도 없다.
나는 사실 다수자로 살아왔다. 남성이고, 이성애자고, 서울 4년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병역거부를 하면서 소수자임을 느꼈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바로 소수자인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혹시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 또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 상식에서 벗어나 있어야 설명이 필요하다. 늘 긴장을 하고 살아가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양심수다. 어느 나라에나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총력전 개념이 등장하면서 국민들을 동원해야 했고, 이에 반대하는 병역거부자들은 늘 존재해왔다. 이런 사람들은 갇히거나, 처형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가장 보편적인 양심수이었기 때문에, 이 권리는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병역거부에 대해 가장 명문화된 것이 바로 EU의 기본권 헌장이다.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에서 1조는 ‘누구나 사상과 양심을 갖는다.’ 2조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된다.’라고 명문으로 선언해 놓고 있다. 양심의 자유에서 단 하나 선택해서 말해야 할 때, 병역거부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병역거부는 의제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04년 이전, 1992년 대법원은 이런 판결을 내렸다.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이른바 양심상의 결정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병역거부자들은 소위 ‘빨갱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기도 했다. 진짜 빨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비전향 장기수들은 김대중 정권 때 해결이 됐다. 이 사람들의 인권이 논의되면서 처우를 해결한 것이다. 희화화 되고 있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동성애 이슈도 현재 사회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빨갱이’ 문제, 동성애자 문제가 등장했을 때, 아직 병역거부는 등장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병역거부는 희화화되고 있다. ‘너 퀘이커 교도야? 그럼 나 못 때리겠네?’ 이렇게 희화화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야기도 못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경우처럼 일반적으로 한 단체에서 만 명 이상이 감옥에 갔다고 한다면 엄청난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운동을 하지 않고 있는 종교단체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문제로 관심 받지 못하던 병역거부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가 아닌 병역거부자가 등장하면서 새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특정 교파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자유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2007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토론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국방부와 국회에서 병역거부를 반대한다면 설득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의 10대 인권공약에 대체복무제도 도입이 포함되었다. 이렇게 ‘문제도 아니었던’ 병역거부가 대선 후보자가 공약에 넣을 정도의 문제가 된 것이다.
9월 현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780명이 수감 중에 있다. 전 세계 병역거부자들 중 92%가 한국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병역거부자가 많다고 얘기하는데, 우리나라처럼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없는 국가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익근무요원과 같은 대체복무자들에게도 군사훈련을 시킨다. 한국사회는 연구로 군복무를 대체하는 사람들도 군사훈련을 해야 한다. 대만의 경우, 의사로 복무를 하면 군사훈련을 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군의관들도 군사훈련을 한다. 이렇게 어떤 사람도 군사훈련에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다 감옥에 가는 것이다.
대체복무제는 병역거부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보수적 주장이다. 병역거부자들은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집총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낮은 곳에서 복무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너희 지뢰제거하라’고 한다면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총을 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더라도 감옥에 가지 않고, 전과자만 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국방부에서는 대체복무제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어 있다. 다양한 국립 특수병원과 노인전문요양시설 등에서의 대체복무에 대해 국방부에서의 타당성 조사는 완료되어 있다. ‘형사 처벌을 감수할 정도의 신념이 없이는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 4년 동안의 이런 대체복무제라면 군대를 안 보내도 되겠다.’ 또 다른 차별, 또 다른 형벌이지만, 감옥에 가지 않는다면 인정할 만 하다는 것이 병역거부자들의 의견이었지만, 결국 이마저도 통과되지 못했다.
국가 안보라는 중대한 문제가 대체복무를 실시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조사는 다 끝났다. 실행만을 앞두고 있는데, 실행되지 않고 있다. 사실 보면 1000명 가까이의 병역거부자들을 활용하면 이익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분들은 벽만 보고 있다.
제도와 숫자를 넘어서서
‘죽이지 않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자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전 그 자리를 ‘살해당한 시체 옆자리’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도미야마 이치로라는 작가가 한 말이다.우리 소수자가 되어보자는 게 아니라, 살해당한 시체 옆자리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옆에 있는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람 옆에 있는 것이다. 옆에 누군가 죽는 것을 본다면, 이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도 죽을 수 있다는 큰 공포를 가지게 된다. 직접적인 위해는 가해지지 않았지만, 공포가 있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 우리는 죽인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다. 손을 잡고 조금만 움직이면, 가해자의 위치에 설 수 있다.
일본의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분별하기 위해서 일본인만 읽을 수 있는 문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면 살해했다. 일본 류큐는 일본에서 방언이 심한 곳인데, 이곳에서 이런 사실을 가르쳤다. 이런 사건이 있었고, 일본어를 잘 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 일본어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어를 배우는 이유가 가해자의 편에 설 수 있기 위해 배우는 것이 된다. 폭력이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에 계엄령이 내렸을 때, 그 이후 국가에서 집 앞에 태극기를 달아라, 달지 않으면 반역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계엄령 당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본 사람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공포 속에서 태극기를 많이 달았다. 이런 상황이 바로 살해당한 시신 옆자리라고 생각한다. 전 이런 자리를 계속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병역거부는 21개월의 군대생활을 안하고 싶은 양심의 자유일 수도 있지만, 죽이지 않을 권리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사실은 양심적 병역거부만큼이나 죽이지 않을 권리도 오랜 족보를 가지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맥브라이드가 한 말이다. ‘세계 인권선언에서 한 줄만 더 추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죽이지 않을 권리를 넣고 싶다.’ 의미가 있는 말이다. 저는 이것이 전쟁을 막고, 국가의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직접 살인형을 집행할 명분은 없다는 것, 자신이 믿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징역 1년6월의 형을 사는 사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 견해들이 다수의견이 되는 대법원을 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으면서, 떠난다.
– 2012년 전수안 대법관 퇴임사 中-
전수안 대법관이 말한 첫 번째는 국가가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 사람들이 국가를 만든 이유가 생명을 보호하라고 만든 건데, 국가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형을 하는 나라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다. 한 명을 죽일 수 있는 나라는 만 명을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은 사형제도를 격렬히 반대한다.
하나 더, 누군가를 죽이게 하는 국가. 국가가 누군가에게 명령해서 누군가를 죽이게 할 수 도 있다. 국가폭력의 가장 근저에는 누군가를 죽이는 것과 누군가를 죽이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국가폭력의 가장 근저에서 방어할 수 있는 논리가 병역거부와 사형거부이다.
그럼 누군가는 저에게 전쟁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 라고 물어본다. 전쟁이 나면 전쟁을 반대해야 하지 않느냐? 저는 맞서 싸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면 어떻게 하냐고,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는데,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그 사람들이 정말 우리를 죽이고 싶어서 들어오는 것일까?
병역거부자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때가 바로 내전이다. 서로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하게 생활했는데, 죽일 이유가 없다. 이 때 평화운동자들이 한 것이 상대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를 반대편에 전해준 것이다. 너희와 싸우기 싫어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너희도 병역을 거부하라. 병역거부자들끼리 연대했다. 이런 것이 바로 날라오는 미사일을 막는다고 MD를 개발하고 이런 저런 것들을 하는 것보다 더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평화의 언어
제가 생각하는 평화란 꽃밭이 아니라 소란스러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투고, 싸우고 부둥키고, 토론하고, 이런 사회라고 생각한다. 하하 호호 웃는 사회는 아니지만, 서로 적이라고 없애자는 생각은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없애야 하거나 죽여야겠다는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비폭력은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비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지만, 살인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같이 존재하는 사회. 폭력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도 있지만, 내가 폭력을 입힐 것이라는 두려움도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미국은 총기휴대를 허용하는데, 폭력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압도적인 사회이다. 그래서 내가 폭력을 입힐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거세된 사회이다. 폭력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폭력을 입힐 것이라는 두려움 사이에 존재하는 끝없는 긴장이 유지되어야 한다. 미국은 앞의 공포가 너무 커서 뒤의 두려움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쏠 수 있다. 정당방위가 아주 극대화되게 허용되는 사회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사회가 폭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이 두려움을 없애려고 많이 한다. 기본 적으로 군대에서 하고 있는 정신교육은 이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참호전이었다. 몇 달을 싸워도 지지부진한 전쟁의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참호전이었다. 1달 내내 참호에서 총만 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Live and let them live.’라는 것이 나타났다. 명령이 내린다고 해도 안 죽이고 그냥 쏘기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몇 키로 앞에 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수뇌부에서 중단해야 끝난 다는 것을 안 것이다.
한 사회의 폭력성이란 폭력을 입히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흉악범이 등장하면 다 죽여야 한다고 한다. 사형을 시켜야 한다. 일족을 멸해야 한다 하는데, 내가 뭔가 폭력을 입힌다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나도 폭력을 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극대화되면서 누군가에게 폭력을 줄 수 있다는 감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것이 진정으로 폭력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제가 들어야 할 총은 누구를 겨누고 있습니까.
그 총이 슬픈 눈물을 간직한 사람들을 향한다면
그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서 한 사람으로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저는 총을 들 수 없습니다.
-출소하면서, 김태원 –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겁쟁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처럼 군대에서 총을 잡았을 때,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이 떨리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머뭇거림은 겁쟁이 같이 총 하나 못 쏘는 머뭇거림은 병적인 찌꺼기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미래를 품고 있는 희망일 수도 있다. 또한 여기에는 타인의 생명에 연민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의 숨겨져 있다.
빈 라덴을 죽이고 미국사람들은 쏟아져 나와서 기뻐했다. 드디어 죽였다고. 우리의 시민 3천명을 죽인 빈 라덴이 드디어 죽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라크에서 미국이 몇 명을 죽였을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한다. 드디어 빈 라덴을 죽였다고 나팔을 불었는데, 단 한 명을 죽이기 위해서 몇 명을 죽었는지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더 이상 테러를 없애기 위해서 몇 명을 죽였는지. 한 명을 죽이기 위해서는 몇 명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이 두려움. 내 땅에서 더 이상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다는 단 하나의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우리도 소말리아 해적을 죽이고 기뻐했다. 그 다음 날, 신문에서는 얼마나 잘 죽였는지, 얼마나 훌륭하게 죽였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해적들을 죽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는지 설명하고, 죽이라는 명령을 자신이 내렸다고 연설했다.
물론 소말리아 해적이나 빈 라덴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하는 폭력이 이런 두려움의 긴장 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 긴장의 끈을 놓고 일탈해버린 것은 아닌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
모든 신문들이 극찬하고, 성공적인 진압이라고 평가할 때, 박노자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칼럼에서 했다. 어떻게 이렇게 기뻐할 수가 있느냐. 소말리아 해적을 죽인 것이 이렇게 기뻐할 일인가. 이런 우리 사회가 폭력적인 사회가 아니겠느냐고.’
승리를 기뻐하는 것은 살인을 기뻐하는 것과 같다. 승리해서 돌아오는 군을 장례식 치르듯이 맞이하라.
<도덕경. 31장>
갈등이 생겼을 때, 소말리아 해적처럼 인질을 구출할 때, 기립박수를 하고, 나팔을 부는 사회가 아니라 위와 같은 사회가 비폭력적인 사회가 아니겠느냐 생각한다. 승리해서 돌아오는 군을 장례식과 같이 맞이하는 것 말이다.
2차 세계 대전은 파시즘과의 전쟁이어서 미국에게는 정의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참전 용사들은 또 전쟁이 일어나면 또 전쟁을 벌여 승리할 것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 때 학생이었던 케네디는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언제 끝날지, 고민해보면서, 전쟁은 오늘날 전사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존중과 명예를 병역거부자들이 받게 될 때 끝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영웅이 된 것은 박정희 때 영웅이 됐다. 이순신 동상이 전 학교에 뿌려졌다. 이렇게 불러 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무관이 전 국민의 영웅이 되는 방식이 드물다. 이순신 생가에 가서 활도 쏘고, 글짓기대회도 열리고 하면서 전반적으로 확대된다. 박정희 때 영웅이 되었다.
조금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가끔은 이순신 장군만큼 ‘나는 일본인들을 죽일 수 없다고 말한 어떤 사람들’도 기억하고 얘기하면서 영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 사람들의 겁쟁이 같은 마음도 의미 있는 마음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평화로운 사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