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인터뷰

에티오피아, 남편과 집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떠난 사연ㅣ 2013 편지쓰기마라톤

[온라인액션 참여하기] 정부 비판 기사를 이유로 ‘테러’ 혐의를 받다 ㅣ 2013 편지쓰기마라톤

에스킨더 네가의 부인, 세르카렘 파실은 세달 전 아들 나프코트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제앰네스티는 세르카렘 파실을 만나 감옥에서 아이를 낳은 사연, 미국으로 가야했던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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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에스킨더의 팬이에요.

Q. 미국생활은 어떤가요?

세달 밖에 되지 않아서 어떻게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요.

Q. 에스킨더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에스킨더는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가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또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자 친구잖아요. 누군가가 에스킨더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을까요?

먼저, 남편으로서가 아니라도 에스킨더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확고한 강인하고, 집요한 면이 있는 사람이에요. 신념을 위해 기꺼이 총을 맞을 사람이에요. 국민들이 그렇듯이, 저도 에스킨더의 팬이에요. 요즘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죠.

가족으로서 에스킨더는 겸손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에요. 아들 숙제를 도와주고, 아내인 저를 잘 챙겨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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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것으로 테러혐의를 받다

Q. 많은 팬을 두었던 에스킨더가 어쩌다 감옥에 가게 된 건가요?

사실 이번에 수감된 게 처음은 아니에요. 아홉 번째 입니다. 모두들 잘 알듯이, 에스킨더는 단지 작가라는 이유로 아홉 번이나 감옥에 가야 했어요. 에스킨더는 정부를 비판해왔어요. 정부가 이러한 비판을 통해 배우길 바랬어요. 지금 수감된 이유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에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에스킨더는 언론인이지만, 공식적인 혐의는 테러이에요.

정부는 오랫동안 감옥에 가둬두려고 테러혐의를 씌웠어요. 그러고는, 18년을 선고했어요.

Q. 아홉 번이나 수감되었다고 하셨는데, 매번 어느 정도 형을 살았었나요?

처음 우리가 만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여러 차례 수감된 적이 있었어요.

1998년, 사귄 지 6개월 되었을 때 일곱 번째로 수감되었고, 6개월을 감옥에 있었어요.

2005년, 선거가 끝나자 여덟 번째 수감되었는데, 일년 반 동안 형 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아홉 번째 수감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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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쓴 글로 내일 감옥에 갈 수 있지만, 글 쓰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Eskinder-Freedom1

에스킨더 네가

Q. 에스킨더는 어떤 글을 쓰고, 무엇을 조명하고자 하는 것인가요?

에스킨더는 대게 정치적 사안과 에티오피아의 일상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Q. 에스킨더는 어떤 언론인이었나요?

에스킨더는 그가 본 것에 대해서 정직하게 글을 썼습니다. 자신이 관찰한 것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쓴 글로 내일 감옥에 갈 수 있지만, 글 쓰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로 곤란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에스킨더는 문제들과 맞섰습니다. 그는 진실을 알리려 노력했고, 신념을 지키는 진정한 언론이었습니다.

에스킨더는 에티오피아가 발전하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정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에스킨더는 정부가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서 교훈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에스킨더는 선생님 같은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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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는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Q.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상황은 어떠한가요?

2005년 선거 이후 언론인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일상생활을 위협합니다. 한 동료는 언론의 자유를 위한 문이 거의 완전히 닫혔다고 표현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언론인들은 자신들이 쓴 글에 대해서 심문 받지 않습니다. 언론인들은 글이 아닌 다른 꼬리표로 기소됩니다. 테러범, 통신 혹은 권력구조를 뒤엎으려 했다는 혐의를 씌웁니다. 이러한 혐의에 언론인들의 이름을 넣기만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Q. 다른 언론인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아주 좋지 않습니다. 많은 언론인들이 자신의 일을 할 수 없어 에티오피아에서 떠났습니다. 아직 확고한 언론인 몇 명이 남아 있지만, 상황은 어렵습니다. 이들은 엄청난 괴롭힘과 위협을 겪고 있으며, 여러 가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에 남아있는 언론인들이 재판을 받을 때, 재판관은 보석금을 부풀려 이들이 풀려나지 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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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가 위험인물인양 특수부대가 무장을 하고 집을 처 들어왔습니다.

에스킨더와 세르카렘 부부

에스킨더와 세르카렘 부부

Q. 체포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요?

7년 전에 함께 수감된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체포하러 왔을 때 경찰은 집 안으로 처 들어와 우리를 각각 다른 방에 집어넣고, 에스킨더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했습니다. 아주 끔찍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연방경찰과 특수부대가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을 체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을 두드릴 인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담을 넘어 들어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언론인일 뿐인데, 이들은 마치 우리가 무장한 위험인물인 양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았고, 몇 명은 집안으로 들어오고, 나머지는 밖을 지켰습니다. 웃긴 것은 저희를 체포하러 온 경찰들이 가스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Q. 체포 당시 에스킨더를 폭행했다구요?

사복을 입은 경찰이 오더니 에스킨더를 옆방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곤 저 대신 에스킨더를 구타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힘에 부칠 때까지 그만 구타하라고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얼마 뒤에 그 방에서 나온 에스킨더는 얼굴과 온 몸에 피 투성이가 되어있었습니다. 에스킨더는 저를 향해 미소를 띄웠습니다. 그리곤 저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저를 앉히더니 에스킨더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몇분 뒤, 그들이 돌아와 에스킨더가 타고 있는 경찰 차에 저를 태우고 매켈라위(Maekelawi) 교도소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곳에 몇 분간 우리를 가둬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멀리서나마 서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킨더의 얼굴은 부어있었고, 피범벅이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다른 방에 수감되었고, 다음날 재판장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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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있는 것보다 임신 자체가 더 힘든 일입니다.

Q. 당시 임신한 상태였나요? 

네, 하지만 저는 제가 임신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Q. 감옥에서 아이를 낳는 다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임신한 몸으로 감옥에서 지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감옥에 있는 것보다 임신 자체가 더 힘든 일입니다. 저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성 밖에 없습니다.

임신은 편안한 집에 있더라도 행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막상 먹으면 토하고 그러죠. 교도소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나쁜 냄새가 납니다. 또 먹고 싶은 게 있더라도 먹을 수 없죠. 면회는 일주일에 한번만 가능하기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Q. 어떻게 에스킨더는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나요?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에스킨더의 반응이 어떻던가요?

월경 때가 되어도 기미가 없어서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가야했어요. 교도소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주었어요. 다행히도 에스킨더와 같은 방을 쓰는 데베베(Debebe)와 함께 갈 수 있었어요. 임신사실을 그가 전달했죠.

에스킨더는 아주 기뻐했고, 한편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수감환경이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이후 임신 8개월 때까지 재판을 받았어요. 우리는 재판 때만 만날 수 있었어요.

임신 8개월이 지나가자, 저는 고혈압으로 출산 때까지 병원에 입원했었어요.

Q. 에스킨더가 병원에 올 수 있었나요?

경찰과 동행한 채 5분에서 10분 정도만 머물다가 갈 수 있었어요.

이후에 제가 퇴원하면서 아기를 가족에게 맡기고 교도소로 돌아온 후 다음 재판 때서야 남편을 다시 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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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친구들이 손을 잡으면 친구들 손에 수갑을 채우는 시늉을 했어요.

Q. 어쩌다 미국으로 오게 되었나요?

저는 미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집’같지 않아요. 에스킨더 옆에서 남편이 원할 때 만나고, 격려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에스킨더는 18년 형을 선고 받았어요. 그리고 우리에겐 아들이 한 명 있지요. 이 아이는 빠르게 자라고 있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알기 시작했어요.

에스킨더는 아들이 증오 속에서 자라길 바라지 않았어요. 아들은 안 좋은 영향을 받고 있었어요.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 놀지도,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학교에만 집중하고, 주말이 되면 정신은 아빠가 있는 감옥에 가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같이 놀려고 손을 잡으면, 손에 수갑을 채우는 시늉을 했어요. 아들은 교도소 경찰역할놀이를 한 거에요. 제가 아들을 에스킨더에게 데려갔을 때 본 것들이죠.

저 또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이 아이가 삶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질까 봐 걱정되었어요.

아들이 건강하고 분별력 있게 자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에스킨더는 아들이 좋은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랬어요. 남편은 제가 아들을 좋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을 보살피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남편은 “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지내게 될 텐데, 부디 아들을 잘 보살펴주세요. 아들이 나를 보고 갈 때면,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내게 고문 같은 일이에요. 게다가 이제 아들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내가 보살피지 못하니 나를 나쁜 아빠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요. 내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내가 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왔어요. 저를 위해서도, 에스킨더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나프코트, 아들을 위해서 이러한 선택을 했어요. 에스킨더가 원했구요.

ⓒethiomedia.com

ⓒethio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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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에스킨더가 특별히 한정된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지, 그 곳이 감옥인지 학교인지 몰라요.

Q. 나프코트가 아빠나 에티오피아에 있는 집 이야기를 하지는 않나요?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질문을 많이 해요. 그리고 아빠가 언제 풀려나는지도 물어보죠.

Q. 아들이 아빠가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네 알고 있어요. ’감옥’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감옥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몰라요. 하지만 ’감옥’이 울타리가 쳐진, 제한된 공간에 사는 것이라는 건 알아요. 아들은 항상 아빠가 언제 그 장소를 벗어나 살 수 있는지 물어봐요.

작년에 나프코트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고, 제가 에스킨더에게 이를 말했더니 자신을 대신해서 작은 선물을 사주라고 부탁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신발을 사서 아들에게 주면서 아빠가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나프코트는 ”이건 엄마가 산거잖아요. 아빠는 절대 살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거듭 아빠가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자, 아들이 물었어요. ”그럼 아빠가 울타리를 넘어서 나를 위해 신발을 산 다음에 다시 거기로 돌아갔다구요?” 라고 말하더군요.

아들은 에스킨더가 특별히 한정된 공간에 살고 있다는 것만 알지, 그 곳이 감옥인지 학교인지 몰라요. 아들에게 에스킨더는 경찰에 둘러싸인 곳에서 사는 것쯤으로 여겨요.

요즘 아들은 아빠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언론에서 우리가 도망쳤다는 것들까지 듣고 있어요. 아들이 아빠의 수감에 대한 석방 캠페인에 대해서도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아빠가 언제 자유가 되는지 물어요.

아들은 아빠가 언제 그 집을 나오는지 궁금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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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우리와 가까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엔 철망이 있지요.

Q. 미국에서도 일상생활에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나요?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아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에티오피아의 집을 그리워하고 있어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이야기 할지, 또 한편으로 에스킨더의 수감상황에 대한 걱정에 빠져있기도 해요. 저 또한 안정된 상태가 아니에요.

Q. 미국에 온 이후에 에스킨더와 통화 할 수 있었나요?

미국에 온 이후로는 전화통화를 할 수 없었어요. 대신 에스킨더를 방문할 수 있는 친정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과 이야기하죠. 에티오피아에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해서 에스킨더 소식을 물어봐요. 그러면 가족들은 에스킨더가 어떤 말을 전했는지, 수감생활이 어떤지 전달해주죠.

Q. 에스킨더와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언제였나요?

우리가 볼레(Bole) 공항으로 떠나기 전 7월 24일 오전 10:35에서 40분까지 면회를 갔었는데, 그 때가 마지막이었어요.

여기서는 에스킨더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전혀요.

Q. 그때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남편은 우울해 보였어요. 억지 웃음을 지으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슬퍼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남편은 우리와 가까이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철망이 있었죠.

남편은 아들에게 강해져야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저에게도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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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의 결과가 오늘 혹은 내일 얻지 못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활동은 의미 있고, 계속해서 캠페인을 강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Q. 에티오피아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대로 머물러 있을지, 아니면 발전될까요?

저는 이러한 방식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까운 미래에 변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요. 에티오피아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의 땅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의견과 생각 때문에 감옥에 가는 일은 없겠죠. 그 땅에서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글을 쓰게 되겠죠.

민주적인 에티오피아, 이것에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민주주의가 자리잡으면 발전과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에티오피아에서 그 누구도 누군가 보다 위에 설 수 없는, 평등한 곳이 되길 바랍니다.

Q. 국제앰네스티는 2007년과 2008년 에스킨더와 파실, 그리고 두 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국제앰네스티는 에스킨더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국제앰네스티에서 에티오피아의 표현의 자유 및 인권침해에 대해서 계속해서 캠페인 해 온 것을 알고 있어요.

2006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국제앰네스티는 우리를 대신해서 캠페인을 벌여 다양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서명과 탄원을 모았어요. 우리가 감옥에 있는 동안 소식을 전달 받을 수 있었죠. 국제앰네스티 활동을 보도하는 미디어를 통해서 이러한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국제앰네스티 같이 영향력 있는 단체에서 이제 에스킨더와 에티오피아의 상황에 대해서 활동 하신다구요. 그렇다면, 활동의 결과가 오늘 혹은 내일 얻지 못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활동은 의미 있고, 계속해서 캠페인을 강력하게 만들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에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부디 감옥에 있는 에스킨더와 다른 언론인들을 위해 캠페인 해주세요. 여러분의 노력이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다면, 변화는 있을 거에요.

서명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는 에스킨더나 에티오피아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듣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 분들을 위한 제 메시지는 여러분의 활동은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일찍이 말씀 드린 것처럼, 이러한 활동을 계속하시면, 여러분의 기여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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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강요 받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나라와, 국민과, 표현의 자유가 존중 받도록 희생을 치렀어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에스킨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일은 또 다른 하루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강해지세요. 침묵을 강요 받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나라와, 국민과, 표현의 자유가 존중 받도록 희생을 치렀어요. 당신의 희생은 값진 것이니, 강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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