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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보다 더 진짜 같은 드라마 <뉴스룸>

뉴스보다 더 진짜 같은 드라마

– 미국드라마 <The Newsroom> –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회사에서 연애하고 병원에서 연애하고 조선시대로 가서 연애하는 것 외에도 많다고 믿는다면, 기억상실이나 출생의 비밀 없이도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미국드라마가 맨날 과학수사로 범죄를 해결하고 좀비들만 뛰어다니는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다면, 야한 농담이나 초능력 없이도 미국드라마가 매력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추천하고 싶은 단 하나의 미국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뉴스룸> (The Newsroom, 2012, HBO) 이다.

The Newsroom ⓒHBO

The Newsroom ⓒHBO

<뉴스룸>을 볼만한 이유는 두 개의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아론 소킨과 HBO.

HBO는 국내의 미국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 ‘믿고 보는 흐브오’라는 은어를 탄생시킬만큼 수준급의 명작 시리즈물을 제작해온 케이블 네트워크다. 로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와이어(오바마가 좋아하는 드라마로 알려져있다), 소프라노스, 앙투라지, 섹스 앤 더 시티, 식스핏언더, 보드워크 엠파이어, 왕좌의 게임에 이르기까지 HBO는 장르나 시대배경을 가리지 않고 ‘재미있으면서 잘 만든’ 드라마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제 그 화려한 목록에 <뉴스룸>이라는 이름을 추가하게 될 것이다.

<뉴스룸>의 각본과 총연출을 맡은 아론 소킨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다. 31살에 <어퓨굿맨>을 쓰며 데뷔한 그는 드라마 <웨스트윙>과 <소셜네트워크> <머니볼>을 연달아 성공작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가 되었다.

아론 소킨(왼쪽 첫번째)와 뉴스룸 출연진

아론 소킨(왼쪽 첫번째)와 뉴스룸 출연진

그래도 믿기 어렵다면 딱 8분만 투자해서 <뉴스룸>의 오프닝을 보라.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인 이유’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이 장면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뉴스룸의 첫 8분은 ‘미드’ 역사상 가장 인상적이고 완벽한 오프닝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그리고 마침내 ‘뉴스룸’에서 빠져나올 때 당신은 말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저런 언론(인)을 가질 수 있다면…’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 주커버그와 <머니볼>의 빌리 빈을 표현하는 데에서 보는 것처럼, ‘적이 많은 남자의 고독하고 외로운 성공담’을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은 마치 <뉴스룸>의 주인공인 앵커 ‘윌 맥어보이’를 창조해내기 위한 연습처럼 보일 정도이다.  언론인으로서 확고한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윌 맥어보이’가 뉴스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말들 때문에 오히려 그는 한없이 외로워지고 수많은 적을 만들어낸다.

윌 맥어보이를 연기한 제프 다니엘스는 미국 TV Show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에미상(제 65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윌 맥어보이를 연기한 제프 다니엘스는 미국 TV Show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에미상(제 65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제프 다니엘스는 놀랍게도 의 짐 캐리의 파트너였던 그 배우이다.

제프 다니엘스는 놀랍게도 <덤 앤 더머>의 짐 캐리의 파트너였던 그 배우이다.

<뉴스룸>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실제 사건, 실제 인물, 실제 단체를 표현하는 데에도 거침없다는 점이다. 극중 ‘윌 맥어보이’가 진행하는 ACN ‘NEWS NIGHT’이 다루는 이슈들은 2010년 BP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건부터 빈 라덴 사살, 공화당 티파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케일리 앤서니 사망사건, ‘불법이민자’ 차별법안 (애리조나 SB1070), 동성애 혐오, 이집트 혁명, NSA의 불법사찰에까지 이르며 오바마는 물론이고 사라 페일린 전 주지사, 존 맥케인 전 공화당 대선후보 등의 모습과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는 Fox news의 영상까지 거침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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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버전으로 바꿔본다면, 거침없이 새누리당·민주당을 거론하고 정책을 비판하고, 이를테면 나경원 전 의원, 김무성 의원 등을 비판하고, 채널A 뉴스를 비꼬고, 태안 기름유출사고를 말하고, 동성애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표현하는 셈인데, 우리가 이 같은 드라마를 실제로 볼 확률을 기대하느니 인류와 외계인의 접촉을 기대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한국드라마가 송출되고 있는 자사의 방송국 이름마저 극중에서 KBC, SBC라는 식으로 표현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SF나 다름 없는 얘기인 것이다. 또한 잊지 마시라,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소식들을 드라마는커녕 뉴스에서조차 볼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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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TV뉴스가 가질 수 있는 보도의 깊이는 그 형식과 분량 때문에 그 한계가 매우 명확하다. 길어야 몇 분을 넘기기 힘든 영상보도를 가지고서는 정보의 양이나 깊이 면에서 지면기사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1극구조’를 가진 한국적 대중매체 사회의 특수성(강준만) 덕분에 한국의 저녁시간 메인 TV뉴스의 위상은 엄청난 것이었다. 어떤 것이 중요한 문제인지, TV뉴스가 정하는 대로 사람들이 따라왔다. 의제설정기능을 독점해오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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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 TV뉴스는 더 이상 사람들의 눈을 붙잡아둘 힘을 잃었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와 다른 시덥잖은 이야기만 뻔하게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TV뉴스가 ‘아스팔트에서 베이컨을 굽거나 비오는 날엔 소시지빵’을 권하는 사이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뉴스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못마땅한 이들은 지금 포털의 편집권을 제한하기 위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MBC

ⓒMBC

ⓒMBC

ⓒMBC

방송이 공공재인 이유, 전기세에 TV수신료가 포함되어있는 이유는 방송을 가능케했던 주파수가 모두의 것이고 그 ‘공공의 재산’으로 우리 공동체의 ‘공익’에 부합하는 정보를 전해달라는 철학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뉴스’를 보고 싶어했지만 아무도 ‘뉴스’를 본 적이 없다. 불편부당성을 가장한 기계적인 중립으로 사안의 맥락이나 중대함은 증발한다.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뉴스가 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려진다. (혐한시위가 반혐한시위보다 더 뉴스가치가 높다) 재난방송과 범죄보도 등은 하나의 볼거리(Spectacle)로 전락한지 오래이며, 비극적인 사건에는 피해자의 비참함과 가해자의 짐승성을 두고 언론사끼리 경쟁한다.(Tragedy Porn) ‘누군가 잘못했으니까 죽여라’ 라고 증오만을 부추기는 것은 굉장히 간단하고 손쉬운 일이다. 어린이신문에서조차 그렇게 할 수 있다. 연예인이 뭘 먹었는지 뭘 좋아하는지 왜 죽었는지 관심 갖는 사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한다는 시민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뉴스만 보고 있으면 우리는 몰캉몰캉 바삭바삭한 소보로빵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드라마만도 못한 현실 뉴스는 도대체 누가 만들고 보고 있는 것인가.

ⓒJTBC

ⓒJTBC

뜨거운 관심 속에 JTBC 사장으로 취임한 손석희 앵커가 9시 뉴스를 직접 맡으며 생긴 변화는 어쨌든 눈여겨볼만하다. 정부의 통제보다 자본의 통제가 훨씬 더 무서운 작금의 상황에서 더군다나 모회사인 삼성의 백혈병과 노조 문제를 건드린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성역이나 다름없는 금단의 영역인 삼성을 건드리는 것을 제대로 된 뉴스를 볼 수 있는 신호로 봐도 좋을까? ‘그 가디언’마저 언론의 자유를 위협받는 지금, 우리는 정말 신뢰하고 존경할만한 언론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도.” (Its Not. But it can be.)

 

(original written date : Oct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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