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할 거 없어. 네 임금에서 취업수수로만 좀 떼고, 그러고 나면 집주인이 필요한 건 다 해줄 거야.” 근처에 사는 이가 해 준 그 말만 믿고 레스타리(Lestari)는 홍콩에서 가사이주노동자로 일하기로 결심했다. 가난 한 집에서 태어나 연로한 부모님을 부양할 만한 일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알선업자는 홍콩에 가사이주노동자로 일 하러 가면 미리 100만 루피아(한화 약 9만원)를 미리 주겠다고 약속했다.
레스타리(Lestari) 이야기

레스타리는 훈련센터가 “감옥”이었다고 말한다. ⓒ국제앰네스티
그러나 홍콩에서 가사이주노동자로 취업하기 전 단계로 자카르타에 있는 취업훈련센터에 도착해서 실제 받은 건 40만 루피아(한화 약 3만5천원).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취업훈련센터에 들어가자마자 신분증을 빼앗겼다(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강제로 머리카락도 짧게 잘라야 했다. 영어도 잘 읽지 못하는데 영어로 된 서류를 들이밀며 서명을 하라고 했다. 딱 하나 알 수 있는 건 2천7백만 루피아라고 쓰인 숫자뿐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30명은 그 말을 듣고 아무 말없이 서명을 했다. 서명을 하고 나자 취업훈련센터에서 나온 사람이 말했다. “지금 네가 서명을 한 내용은 만약 여기에서 나가면 2천7백만 루피아(한화 약 240만원)를 물어내야 한다는 거다.” 홍콩으로 향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애초에 알선비용과 훈련비용을 내야 한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 채 이주노동을 ‘감행’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훈련센터에 들어가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인도네시아에서부터 빚을 지고 출발하는 셈이다. 허위, 사기에 의한 강제노동, 즉 인신매매의 시작이다.
처음 홍콩에 도착한 후 고용주에게 사정이 생겨서 5개월 만에 일을 그만 두게 되었다. 레스타리는 취업알선업체를 찾았다. “넌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수 없어. 아직 두 달치 월급을 더 공제해야 해”라는 말을 들었다. 이미 알선비용과 훈련비용으로 취업알선업체에게 빚을 졌으니 그것을 갚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고용주에게 고용이 되었다. 임금은 두 달치가 아니라 여섯 달치가 공제가 되어 총 11개월 치가 공제되었다. 홍콩의 한 달 최저 임금은 약 4,010 홍콩달러(2013년 기준, 한화 약 53만원). 그러나 취업알선업체는 7개월 가량 알선비용과 훈련비용으로 매달 월급에서 홍콩달러로 약 3,000(한화 약 40만원) 홍콩달러를 떼 간다. 만약 그 사이 누구의 잘못이건 일자리를 바꾸기라도 한다면 알선 비용은 더 늘어난다.
두 번째로 일한 집은 대가족이었다. 그 집의 할아버지는 밤마다 끊임없이 물었다. “나랑 자고 싶지 않아?” 그 할아버지는 밤마다 잠을 자는 곳인 거실로 나와 몸을 더듬었다. 24시간을 고용주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가사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계약서에 있는 노동시간이 무색할뿐더러 철저히 사적인 ‘가정집’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는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안 된다고 말하고 밀어내는 것뿐이었고 울고 또 울었다. 레스타리는 울고만 있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과 나누었다.
2006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홍콩으로 향한 이주노동자 수는 4만 명. 국제앰네스티는 작년 11월 홍콩에 거주하는 가사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조사해 보고서 『이윤을 위해 착취당하고 정부에게 버림받다-홍콩으로 인신매매된 인도네시아 가사 노동자(Exploited for Profit, Failed by Government-Indonesian Migrant Domestic Workers Trafficked to Hongkong)』를 발표했다. 레스타리도 용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준 가사이주노동자 97명 중 한 명이었다.
에르위아나(Erwiana) 이야기

에르위아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2014년 1월 전 세계 언론에서 주목했던 한 여성이 있었다. 에르위아나 술리스티야닝시(Erwiana Sulistyaningsih)는 2013년 스물 두 살의 나이에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희망은 곧 악몽으로 변했다.
마흔 네 살, 두 아이를 가진 고용주는 에르위아나에게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했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대걸대와 자, 옷걸이로 구타를 당했다. 상처가 곪아서 감염이 되었지만 병원에 가지 못해 제대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집주인은 에르와나가 이런 사실을 알리면 부모님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며 에르위아나에게 70달러를 주고 그녀를 공항에 버렸다. 홍콩에서 8개월, 2014년 1월 주인에게 버림받고 공항에 홀로 남겨진 에르위아나의 몸에는 화상과 멍자국, 벌어진 상처만이 남았다. 공항에서 에르위아나를 발견한 한 가사 이주노동자가 에르위아나를 발견해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에르위아나는 포기 하지 않았다. 침묵하지도 않았다. 피해사실을 인권단체와 언론에 알렸다. 제대로 검찰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1월 19일에는 5000여 명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출신 가사 이주노동자들의 시위가 이어졌고,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홍콩 정부는 병원에 대표단을 파견해 에르위아나를 인터뷰 했고, “충분하고 심도깊은 조사” 끝에 이 사건 가해자를 기소했다.
‘목소리 없는 이’에게 목소리가 되다
4월 에르위아나 술리스티야닝시는 미국 시사주간지<타임>이 선정한 ‘세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100 Most Powerful Persons)’에 선정됐다. <타임>은 “에르위아나는 자신과 같은 운명을 겪을 수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할 법률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홍콩 가사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가 알려지면서 4월 27일, 에르위아나 고용주에 대한 재판 진행을 며칠 앞두고 전 세계 160개 국가에서 모인 103,307장의 탄원이 홍콩 노동복지부 장관 매튜 쳉 킨 청(Matthew Cheung Kin-chung)에게 전달되었다.

국제앰네스티의 탄원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지부가 보낸 약 3,200건의 탄원도 여기에 포함됐다 ⓒ국제앰네스티
이 가운데에는 한국에서 액션패키지와 온라인탄원으로 참여한 3,200여 건의 탄원도 포함됐다. 탄원을 전달하면서 국제앰네스티, 홍콩노총(HKCTU), 워크프리, 국제가사노동자연합(IDWF)은 과도한 알선비용을 요구하고 착취하는 업체를 감시감독, 처벌할 것과 가사 이주노동자들이 선택해서 고용주의 집에 머무를 것인지 나와서 살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홍콩으로 보내기 위해 모아진 탄원엽서와 온라인탄원 ⓒ국제앰네스티
에르위아나는 “다른 누군가가 저와 같은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홍콩정부에게 가사이주노동자 착취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이 탄원을 지지한다. 여성들이 홍콩에 와서 정당한 임금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면서 인권을 침해 당할 공포 없이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익숙한 언어와 가족, 익숙한 환경에서 언어도 다르고 법과 제도, 문화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이주노동은 그저 가는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감행’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곳에서 마추진 고통과 인권침해에 대해에 저항해, 용기를 내고 목소리를 냄으로서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되는 것은 레스티나나 에르위아나에게는 이주노동자가 되는 ‘감행’ 이상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레스타리와 에르위아나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탄원을 보내 지지의 목소리를 보태어 연대해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