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간 집회 현장에서 인권침해상황이 있었는지 여부를 모니터링 했다. 이미 이백명이 넘는 시민들이 세월호 추모 집회로 연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의 남용은 없는지, 인권이 침해되는 범위는 무엇인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뛰어다니고, 경찰에게 묻기도 하면서 ‘시민으로 내가 가진 권리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어떤 시민의 범주 안에 속하는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름표 없는 경찰을 찍어라
2014년 집회 현장에서 마주칠 수 있는 경찰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개선된 점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캡사이신 분무기와 휴대용 소화기, 방패 같은 도구들은 여전히 휴대하고 있지만 살수차, 진압봉과 같은 도구의 사용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이런 긍정적인 개선이 있지만 과거와 바뀌지 않은 잘못된 정책도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2008년 발간한 보고서 ‘한국 촛불집회에서 경찰력 사용’을 통해 식별 가능한 정보가 진압 경찰의 제복에 없는 경우 부당한 폭력, 인권침해를 당해도 가해자의 이름을 알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6년이나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경찰들의 제복에는 ‘경찰’ 이라고 쓰여져 있을 뿐 개인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농산물에도 생산자의 이름이 있고, 서비스 노동자들도 이름표를 다는 경우가 많은데 공무수행중인 경찰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묻고 싶다.

설마 모두 동명이인? ⓒ Amnesty International
집회는 잠재적 범죄행위인가
경찰력이 예전보다 더 집중하는 지점도 있다. ‘증거를 모은다’ 라는 뜻의 ‘채증’ 이 그것이다. 집회에 참석해 본 이라면 모두 경험했을 것이다. 스타라도 된 듯 집회참석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수 많은 카메라라니!
원래 경찰의 채증은 경찰법 제 3조에서 범죄의 예방, 진압 및 수사, 치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를 국가경찰의 의무로 언급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 또한 경찰청 예규인 ‘채증활동규칙’ 에서 ‘각종 집회 시위 및 치안현장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 녹화, 녹음하는 것’ 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확대 해석해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초상권 침해를 할 소지가 있다.”고 말하며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적법하게 신고를 한 집회에서도 채증 카메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왜 범죄의 증거를 모으고 있는 것인지 납득 할 수 없을뿐더러, 지난달 검찰이 발표한 ‘삼진아웃제’에 채증이 오용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삼진아웃제란 폭력사범에 적용되었던 제도로, 검찰은 집회시위에 이를 확대 적용하여 ‘불법’ 시위에 참여하는 ‘상습시위꾼’을 반드시 법정에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법을 기다리는 파파라치 ⓒ Amnesty International

상습시위꾼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Amnesty International
나는 일반시민입니까?
삼진아웃제도 발표가 났을 때 상습 시위꾼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집회에서 채증여부는 어떻게, 누가 결정하는지 에 대한 의문이 모니터링을 다니면서 점점 더 커져갔다. 가장 신경쓰였던 단어는 ‘일반시민’ 이었다. 경찰은 집회 해산 경고를 할 때마다 “일반 시민들은 물러나 주십시오.” “일반시민이라면 질서를 지켜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경찰의 태도를 보면, 집회참석자를 일반 시민이 아니라 잠재적인 범죄자 혹은 상습 시위꾼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지난 20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들이 경찰청 앞에서 벌어지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한 행진을 하고 있었다. 경찰은 횡단보도 앞에서 노조원들을 막고 해산명령을 보내고 있었는데, 인근에서 일하는 여성들 – 모두 정장을 입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었다-이 “못 지나가나요?” 라고 물어보자 상급자로 보이는 경찰이 “파란 불 켜지면 열어드려!” 라고 멋지고 공손하게 명령을 하는 것이었다. 보호해야 하는 ‘일반’ 시민과 ‘잠재적 범죄자’ 가 구분되는 순간이었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가 마음이 착잡해졌다.
경찰은 국내법은 물론이고 국제인권법의 기준을 지켜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의 공무수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경찰이 보호하는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앰네스티는 인권단체들과 함께 ‘이름표 없는 경찰을 찍어라!’ 캠페인을 통해 공권력의 책무성을 시민이 묻고자 한다. 또한 “집회 참석자는 일반 시민이 아닌가? 일반 시민만이 권리를 가지는가?” 라고 묻고도 싶다. 이 질문은 일반 시민과 잠재 범죄자를 가르는 자의적 판단의 위험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모든 시민은 구금이나 경찰의 무력사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집회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