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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삼바를 위하여

축구가 아이들에 집착하는 이유

광고에는 ‘3B’ 법칙이 있다. 소비자에게 호감을 얻기 쉬운 세가지 B를 모델로 등장시키면 좀처럼 실패하지 않는다는 법칙으로, 3B는 미녀(Beauty)와 아이(Baby), 그리고 동물(Beast)를 이른다. 이 법칙을 축구에서 차용한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먼저 미녀와 함께 손을 잡고 나란히 그라운드에 입장하는 선수들?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나란히 입장하는 미녀들에 대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미디어가 클릭 수로 팔아치울 장삿거리는 확실히 늘어날게 분명하다. 이것이 ‘HOT’해 보일수는 있겠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스포츠에서 여성을 상품화하는 전략은 여전히 꾸준히 이용되고 있는데, 마케팅 측면에서 유효할지 몰라도 여성을 타자화하고 부속화한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방향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렇다면 동물은 어떨까? 축구가 지구와의 공존에 기여하고 친환경적이고 에코적인 ‘느낌적인 느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삼사자 군단’ 잉글랜드 팀의 주장 제라드가 사자를 끌고 입장한다든지, ‘슈퍼이글스’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어깨에 독수리를 얹고 등장한다든지. 그러나 ‘코끼리군단’ 코트디부아르는 인형으로 대신해야 할 가능성이 더 높고 딱히 동물과의 연관성이 없는 팀들은 곤란할 듯도 싶다. 중국 대표팀이 치와와를 끌고 입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상은 접어두더라도, 동물을 이용한다면 축구를 그냥 서커스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아이들뿐이다. 모든 축구경기에 매번 아이들이 선수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해 식전 행사를 함께 치른다. 어느 나라 어느 리그 어느 팀이건 마찬가지다. 월드컵에서 FIFA ‘Fair Play’기도, 국기를 드는 것도 아이들의 차지다.

비를 가려주는 박주영 선수

비를 가려주는 박주영 선수

네덜란드리그 PSV아인트호벤 팀의 입장 모습

네덜란드리그 PSV아인트호벤 팀의 입장 모습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가 악수를 청하는 아이를 무시했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가 악수를 청하는 아이를 무시했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대조적으로, 호주의 브레시아노는 아이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모습이 포착되어 호평받았다.

대조적으로, 호주의 브레시아노는 아이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모습이 포착되어 호평받았다.

20140618143710632이것은 축구의 전략이다. 아이들만이 갖는 순수하고 선한 이미지를 축구가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호의적인 무대를 연출하는 축구의 이러한 태도는 축구를 ‘좋은 것 Something Good’ 으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전략은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공 요인과도 일맥상통한다. 축구는 세계의 모든 대륙, 대부분의 나라에서 즐기는 유일한 단일종목 스포츠다. 그 가장 단순한 비결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 덕분이다. 발로 차서 굴러가는 공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 축구다. 그것은 여태까지 거대한 신화를 만들어왔다. 가난한 아프리카의 빈민가나 브라질 해변의 꼬마 소년이 축구 하나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는 신화. 축구가 부여하는 기회는 재능 앞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해 보이며, 그렇게 축구는 빈곤과 싸우고, 결국 범 지구적인 위상을 가진 유일한 스포츠임을 과시한다. 이 전략이 매 경기마다 투영되어 있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축구가 선한 것, 사람들을 향하고, 모두의 것이라는 은연의 메시지인 것이다.

리우 데 자네이로의 빈민가에서 축구를 하는 소년들

리우 데 자네이로의 빈민가에서 축구를 하는 소년들

이라크 바그다드

이라크 바그다드

 

쿠바 하바나

쿠바 하바나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소년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소년들

 

아이티 포트토프랭스의 난민캠프

아이티 포트토프랭스의 난민캠프

 

이라크 바스라

이라크 바스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아프가니스탄 카불

 

프랑스의 축구영웅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이민 2세로 마르세유의 변두리 빈민가에서 태어나 유명 유소년 클럽이 아닌 길거리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프랑스의 축구영웅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 이민 2세로 마르세유의 변두리 빈민가에서 태어나 유명 유소년 클럽이 아닌 길거리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불세출의 축구영웅 호나우두를 비롯한 브라질 축구의 전설들인 카푸, 히바우두, 호나우딩요, 카를로스 등이 모두 빈민가에서 공을 차며 성장했다.

불세출의 축구영웅 호나우두를 비롯한 브라질 축구의 전설들인 카푸, 히바우두, 호나우딩요, 카를로스 등이 모두 빈민가에서 공을 차며 성장했다.

 

유럽과 남미 출신이 아닌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조지 웨아는 지속되는 내전으로 2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8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조국 라이베리아를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짓는 등 헌신하고 있다.

유럽과 남미 출신이 아닌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조지 웨아는 지속되는 내전으로 20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8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조국 라이베리아를 위해 병원과 학교를 짓는 등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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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배신

확실히 축구를 볼 때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보인다. 어느 나라든 조국 대표팀을 영광의 자리로 이끈 선수는 국가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펠레는 품위 있는 언행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보여도 여전히 축구영웅으로서 행복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마라도나를 추앙하는 종교가 있을 정도고, ‘프랑스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인’은 오래도록 (프랑스를 98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지네딘 지단의 차지였다. 드록바의 호소에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멈추었고, 한국에서 박지성을 공공연히 비난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사람이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월드컵에 출전한 자국 대표팀이 잘하길 바라는 마음 앞에서는 성장이냐 분배냐,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 온건이냐 강경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축구는 탈정치적인 것이었고, 복잡한 사회문제와도 거리가 멀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좋게 말하면 축구는 강력한 사회통합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사회 현안으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는 마취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축구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21세기로 넘어오면서부터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하루종일 축구공을 꿰매고 고작 몇백원을 손에 쥐는 아이들의 비참한 삶이 고발되었다.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제품들이 파키스탄, 인도 등 ‘제3세계’ 어린이들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었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자본의 부작용이 축구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말해, ‘축구의 뒤에도 돈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유럽 유수의 클럽에 거대자본이 몰려들고 선수들의 이적료가 갑자기 치솟는 등 축구에 거품이 끼고 ‘축구산업’이 본격화 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축구 그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FIFA는 이제 더욱 노골적으로 탐욕을 드러내고 있다. 2018년 월드컵 개최권은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야망에 부풀어있는 푸틴의 손에,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은 40도의 기온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 대신 ‘오일머니’가 있는 카타르의 손에 쥐어준 것이 정말 공정한 결정이었을까?

EBS 지식채널e "축구공 경제학" 중에서

EBS 지식채널e “축구공 경제학” 중에서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를 만들고 있는 파키스탄 여성들. 한국에서 17만 9천원에 팔리는 이 공을 만들고 이들이 받는 돈은 한 달에 약 10만원꼴이라 한다.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를 만들고 있는 파키스탄 여성들. 한국에서 17만 9천원에 팔리는 이 공을 만들고 이들이 받는 돈은 한 달에 약 10만원꼴이라 한다.

"FIFA가 주도하는 축구는 스포츠 경제, 스폰서 경제,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힘으로 부풀려진 가죽 공을 둘러싼 비즈니스" '피파마피아'의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

“FIFA가 주도하는 축구는 스포츠 경제, 스폰서 경제,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힘으로 부풀려진 가죽 공을 둘러싼 비즈니스” ‘피파마피아’의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

브라질 “우리는 축구를 원하지 않는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 이 나라에서 축구를 뺀다면 도대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열정의 삼바도, 저 경이로운 거대예수상조차도 축구를 빼놓고는 이 나라를 설명하기엔 부족해보인다. 브라질은 월드컵 1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전 대회에 출장한 유일한 국가이며, 5번의 우승으로 월드컵 최다우승국이라는 빛나는 명예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가장 최근의 우승이었던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전승(全勝)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바로 그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브라질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브라질은 현재 식료품부터 공공요금까지 부문을 가리지 않고 가격이 치솟으면서 6%가 넘는 물가상승률을 기록중이다. 브라질인들의 식탁에서 뺴놓을 수 없는 토마토가 몇 년 사이 150% 넘게 가격이 뛰었다. 당장의 먹을거리와 버스요금이 올라서 생활이 힘들어지는데에 사람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월드컵과 올림픽(2016년)을 치르기 위해 쏟아붓는 막대한 재원을 국민들의 직접적인 생활과 연결되어있는 의료와 보건, 교육 등에 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가 월드컵 개최에 쏟아부은 돈이 남아공월드컵보다 4배나 많은 약 11조 8512억인데(이나마도 약 5조원 가량 축소해서 발표한 것이라고 FOLHA DE S.PAULO가 보도했다) 경기장 주변의 기반시설은 모두 취소되었으며 월드컵 예산에 관련한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빈민촌에 주거하는 사람들이 강제퇴거까지 당하고 있으니 아무리 축구를 사랑하는 브라질인들이라 해도 월드컵에 화가 나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1300620-brazil-protests-02.3803807700 Brasil-protest-graffiti-against-the-2014-World-Cup-599x368 image we-don't-need-a-world-cup 다운로드 (1)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불만을 가지고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브라질 정부가 무력으로 탄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월드컵 진행을 방해하거나 테러 위협이라도 했는가? 그저 월드컵에 반대한다는 구호만을 가지고 평화롭게 행진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브라질 경찰은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쏘며 폭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브라질 경찰관이 시위현장에서 하늘을 향해 실탄까지 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은 이 갈등이 쉽게 봉합될 수 없다는걸 예상하게 하는데, 그때마다 경찰은 거리에서 의사표현을 하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막아세울 것인가? Bp8W7FCIgAAXQwx b01_99042328 article-0-1A56472F000005DC-971_634x425 brazil-protest_2590536k g-brasil-6-940x628

모두의 삼바를 위하여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브라질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월드컵을 마냥 즐겨도 좋은 것일까? 경기장 안의 환호하는 관중들 밖으로, 절망하고 억압 당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것을 성공한 월드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축구가 정녕 모두의 것이라면, 월드컵이 진짜 세계인의 축제라면 그 이면에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관중이 되지 말기를. 16강 진출팀, 8강 진출팀만큼이나 더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할 것이 경기장 밖의 더 큰, 진짜 브라질이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배웠다”는 그 유명한 까뮈의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브라질의 모두에게 삼바를, 축구에 오로지 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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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 기간 동안 브라질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한 즐거운 파티, “모두가 행복해지는 쌈바!” 에 참여하기

축구로 인권 보기 : 공 하나에 담기는 질문들

Kids Playing Football Around The World

우리는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 : go발뉴스

FIFA와 브라질월드컵의 ‘뒷면’ : 뉴스토마토

누군가에게 축구공은 악몽이다 : 오마이뉴스

축구공 꿰매다 눈이 먼 ‘소녀 노동자’ : 오마이뉴스

브라질 대통령의 ‘우민화’ 드리블 : 시사in 

축구가 밥 먹여줍니까? : 시사in

브라질 철거민의 눈물…“우리에게 월드컵은 퇴거를 말한다”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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