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 사람들
2014년 4월 16일 8시58분 제주도로 가던 청해진 해운의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가족들도, 지켜보던 이들도 정부가 구해 줄 것이라 믿었다. 오전에 전원 구조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오보였음이 알려지고,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생존자는 172명에 불과했다. 실종자를 포함해 304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눈물에도 많은 이들이 허탈해 했다. 절망했다.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배 안에서 정부와 어른들이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국가’를 믿었다.이렇게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국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희생되고서야 그것을 알았으니 그 대가가 얼마나 큰가”라며 그 참담함을 전했다.
참사가 일어난 후 재빠르게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 구속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회에서도 세월호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파행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관계기관들은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고, 청와대는 요구한 자료 269건 중 13건 만을 회신했다. MBC는 출석을 아예 거부했다. 가족들은 수사권이나 기소권 없이는 면피용밖에 되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해 세월호 특별법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달라고 했으나 전례가 없다고 거절 당했다. 급기야 7월 14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 15명은 “17년 간 키운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 여기 왔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그것만은 알고 싶다”며 국회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청와대로 향하는 사람들
2014년 4월 20일 새벽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며 청와대로 향했다. 더딘 실종자 수색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진도체육관 앞에서 버스를 타려던 실종자 가족을 막았고, 버스를 탈 수 없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결국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진도대교까지 걸었다. 경찰은 다시 진도대교 입구 앞에서 실종자 가족의 이동을 막았다. 진도대교에서 청와대까지의 거리는 384킬로미터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이러냐”며 가족들을 해산시키려 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 시각에 청와대는 무엇을 했는지, 국민을 재난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국가’는 도대체 그 시각에 어디에 있었는지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매직으로 쓴 피켓과 노란색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 주변으로 향했다. 5월 17일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있었던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로 가겠다며 행진을 하다 119명이 연행되었다. 계동 현대사옥 인근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이 막혀서 해산을 하려던 시점이었다. 이 것을 시작으로 18일에는 청와대 만민공동회에 참가했던 97명, 24일에는 보신각 사거리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려던 30명, 31일에는 광화문에서 5명, 6월 10일에는 삼청동과 청와대 인근 곳곳에서 69명이 연행되었다. 이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위험’한 물건이라고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피켓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전부였다.
자신의 의견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거리로 가지고 나오는 것, 즉 ‘집회·시위의 자유’가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라는 원칙은 처참히 구겨졌다. ‘미신고라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해산하게 되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현장 경찰 지휘관에게는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다.
‘미신고집회 = 불법집회 = 범죄행위’라는 등식
세월호 참사 후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어 보인다. 우선 광화문 사거리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향하는 어떤 지역에서도 집회 신고는 금지다. 사실상 집회 ’절대’ 금지지역이다. 만약 금지 통고에도 사람들이 집회를 하면 ‘불법집회’로 규정한 후, 집회 참가자들이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연행과 동시에 집회와 행진을 해산시킨다.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주장을 내걸고 모인 ‘청와대 만민공동회’는 5월 8일에 2회에 걸쳐 집회를 하겠다고 14곳에 대한 집회신고를 냈으나 모두 금지통고를 받았다. 또한 경찰은 5월 18일 집회의 경우 10곳의 집회신고에 대해, <6.10 청와대 만인대회>의 경우 청와대 인근 61곳의 집회신고에 대해 모두 금지 통고했다. 행진의 경우에도 종착지가 경복궁역이나 청운동 등 청와대 인근인 경우 예외 없이 금지 통고 처분을 받았다.
줄줄이 집회를 금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흡사 불복종이라도 감행하듯 청와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노란리본과 노란피켓과 현수막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마다 경찰은 우선 이들을 ‘채증’한 후, ‘미신고 집회’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낙인 찍고, 불법이기 때문에 ’범죄행위’를 했다고 고착한 후 연행·해산시켰다. 그러나 거리로 나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건 ’범죄’가 아니라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다.
“미신고 집회를 이유로 해산시켜서는 안 돼”
국제앰네스티는 미신고 집회에 대해 보고서 『유럽연합 집회에서 경찰력 사용(Policing Demonstration in the European Union, Eur01.022.2012)』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법 위반을 했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를 이유로 집회를 해산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03년 판결에서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 집회의 자유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보호되는 주요 행위는 집회의 준비 및 조직, 지위, 참가, 집회장소·시간의 선택이다. 따라서 집회의 자유는 개인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또는 집회에 참가할 것을 강요하는 국가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를 향한 요구는 청와대 인근에서 그 상징성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비로소 집회의 자유가 온전히 보장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그것이 평화적 수단에 의한 것이라면 국가, 즉 국가를 대리해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찰이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경찰은 공권력을 남용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봉쇄하고 해산했다.
그래도 지지 않는다
6월 10일 삼청동에서는 많은 대학생들이 “차라리 잡아가라”며 게릴라 시위를 했다. 7월 18일에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두고 집회·시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따로 신고가 필요 없는 1인 시위를 125명이 동시에 시도한 것이다. 같은 피켓, 같은 플랜카드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1인 시위를 준비해 청와대로 향했다. 청와대 가는 길이 경찰의 고착에 막힐 때도 꿋꿋하게 기다렸다가 혼자서 10~30미터 간격으로 1인 시위를 했다. 혹여 청와대로 갈세라 10미터 간격으로 경찰이 저지선을 치고 있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노란색 세월호 진상규명 현수막으로 치마를 만든 모녀 뒤에는 여경 두 명이 따라 붙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태극기 모양의 피켓을 든 사람 주변으로는 경찰 5~6명이 둘러서서 피켓이 보이지 않게 섰다. 많은 예술가들도 행동에 참여했다. 한 화가는 경찰이 자신을 둘러싸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호 그림을 그렸다. 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은 길거리에서 피켓을 앞에 놓고 앉아 막걸리한 잔에 전을 먹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외치던 이들이 이제는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얻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이 되지 않자 결국 대학생들은 “나를 잡아가라”고 불복종을 감행했다. 합법적인 시위의 경계에서 새로운 집회를 상상하는 125인 125색의 1인 시위는 그 자체로 진풍경이다.
전 세계 거리가 시민들의 분노로 들끓고 있다. 정치학자 에이프릴 카터(April Carter)는 그의 책 <직접행동>에서 “직접행동은 민주주의의 결여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부가 정당성을 갖추고 있고 의회나 정부를 통한 반대 의견이 잘 전달된다면 직접행동과 같은 시도는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그것을 촉진하고 충족할 의무가 있다.
* 앰네스티 매거진 2014-003호에 게재된 변정필 캠페인팀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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