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후문 건너에 ‘필름포럼’이라는 극장이 있습니다. 멀티플렉스에 비하면 작고 소박한 규모지만 접하기 힘든 좋은 영화들만을 골라 상영하는 까닭에 ‘영화 좀 본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필름포럼은 매월 첫 째주 수요일, 영화를 통해 인권을 생각하는 <앰네스티 수요극장>을 개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앰네스티의 새로운 파트너 필름포럼은 어떤 곳일지, 이효영 홍보팀장님과 나눈 영화와 극장,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극장이 참 조용하고 아기자기 합니다. 필름포럼은 어떤 곳인가요?
필름포럼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인정하는 예술영화전용관입니다. 예술영화나 한국독립영화를 주로 트는데, 의미없이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영화는 지양하고 있어요. 비록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보다는 규모도 작고, 다른 예술영화관과 비교해도 접근성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소소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배급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상영의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하는 부담이나 제약도 없고요. 매년 봄에는 아가페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춘 ‘서울국제사랑영화제’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앰네스티 수요극장>을 함께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희는 필름포럼을 찾는 관객들이 영화만 보고 돌아가기 보다는 관련 내용을 자기 경험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테마 기획을 시도하고 있어요. ‘비긴어게인’을 상영할 때는 시네콘서트를 열었고, ‘뮤지엄 아워스’는 미술해설사가 직접 영화 속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시기도 했었지요. 요즘은 감독이나 배우가 나와서 전달하는 일방적인 토크 보다는 관객들도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거든요.
음악이나 미술 외에도 영화를 통해 관객들과 나눌 수 있는 소재를 찾고, 함께 엮어갈 수 있는 단체들을 찾고 있었는데 국제앰네스티와 인연이 닿았어요. 저희는 영화관이니까 저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화와 장소를 제공하고, 앰네스티에서는 영화 속 인권 이야기를 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필름포럼에서 상영했던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빈센트: 이탈리아 바다를 찾아’ 라는 독일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 보시면 이광수씨가 틱 발작 비슷한 투렛증후군 환자로 나오는데요, 주인공 빈센트도 심한 투렛증후군이 있어요. 남들에게 자식의 장애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에 의해 요양원에 맡겨진 빈센트가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요양원을 탈출하고, 이탈리아 바다를 향해 떠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영화에요.
이렇게 들으면 왠지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일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눈에 띄는 장애가 있고, 남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지만 병원 밖을 나와서도 자기 자신을 잘 컨트롤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돌아다녀요. 인생을 돌아보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영화여서 저는 인상 깊게 봤어요.
필름포럼에 오는 관객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확실히 일반 멀티플렉스 보다 주 관객 연령대가 높은 편이에요. 3,40대가 가장 많고,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5,60대 분들도 꽤 있어요. 요즘 뜨는 영화가 궁금해서 본다기 보다는 평소에도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을 기다렸다 보는 분들이에요. 같은 영화를 반복 관람하는 분들도 꽤 돼요. 아무래도 20대들은 예술영화 보다는 블록버스터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아요.
관객 연령이나 성향이 다르다보니 멀티플렉스와는 인기 영화가 다를 수 밖에 없겠네요.
맞아요. 요즘은 ‘명량’이 대세라지만, 저희 극장에서 가장 핫한 영화는 비긴어게인과 매직인더문라이트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 두 영화는 예술영화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긴 해요. 전에는 예술영화와 그렇지 않은 아닌 영화의 경계가 분명했지만 요즘은 모호한 작품들이 많아요. 개봉 규모는 작지만 재미와 작품성을 둘 다 갖춘 예술영화, 소위 ‘아트버스터’ 들의 인기가 높은 편이에요.
<앰네스티 수요극장> 첫 번째 영화로 ‘프랭크’를 상영하는데요, 어떤 점을 주목해서 보면 좋을까요?
많은 분들이 ‘프랭크’는 그냥 마이클 패스벤더가 탈 쓰고 나오는 영화로 알고 있는데요, 나름대로 숨겨진 메시지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게 꼭 다른 사람에게도 맞는 것이 아니라는 거요. 누구나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거든요. 존은 스스로 본인이 가장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고, 밴드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런 생각과 행동이 다른 멤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결과를 불러오죠.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괴짜 같지만 다들 아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한국독립영화를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같은 독립영화라도 외국에서 만든 예술영화는 보는데,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독립영화는 더 안보더라고요. 유명 배우가 없고, 연기가 어색하고, 화면이 거칠고, 배경음악이 어색한건 우리랑 똑같은데 외국 예술영화는 그게 문화려니 하고 보면서도, 한국독립영화에는 오히려 기준이 더 엄격한 것 같아요.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좋은 독립영화가 많거든요. 상업영화에서는 보기 힘는 특이한 형식도 많고요. 비긴어게인처럼 세련된 음악은 아니지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이었던 하늘의 황금마차 도 뽕짝 선율이 매력적인, 정말 독특한 영화인데도 많은 분들이 보지 않아서 안타까웠어요. 독립영화가 잘 돼야 그 감독들이 상업영화도 찍고,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어요. 아마 박찬욱 감독님도 처음에는 독립영화를 찍은 시절이 있으셨을 껄요? ^^
사실 극장에서 일하면서 맞닥뜨리는 영화계의 인권 이슈는 영화를 만드는 스탭들에 대한 처우 문제에요. 영화를 만들어서 1억의 수익이 나면 감독이 5천, 그리고 나머지 5천을 수십 수백명의 스탭들이 나누는 것이 현실이거든요. 연봉이 100만원인 분들이 수두룩해요.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도, 먹고 살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만두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고요. 그 분들의 목소리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고, 더 많이 관람해 주세요. <앰네스티 수요극장>에서도 한국독립영화를 한 번 상영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