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리뷰

튤립의 정원에서 현실을 만나다 – 캠페이너 양성과정 프로젝트 2기를 마치며

국제앰네스티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2013년 봄의 끝자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다. 여행이나 방문 목적이 아니라 경유지로 짧게 들렀던 그 도시는, 듣던 대로 걷는 길목마다 튤립이 가득했고 눈길 닿는 곳 어디에나 자전거가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다른 외국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낯선 네덜란드어가 더해지자, 마치 현실이 아닌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낯선 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눈에 익은 노란 촛불을 발견했다.

2013년 5월 30일, 국제앰네스티 네덜란드 지부 입구 ⓒ JooWon KIM

2013년 5월 30일, 국제앰네스티 네덜란드 지부 입구 ⓒ JooWon KIM

타국에서 만난 앰네스티의 노란 촛불은 굉장히 반가웠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앰네스티의 구체적인 사명이나 캠페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내가 느낀 반가움은 궁금증의 다른 모습이었다고 생각한다. 회원도 아니었고 길어야 반나절 가량 허락된 시간에 쫓겨 결국 네덜란드지부의 문을 두드려보지는 못 했다. 하지만 동화 같은 그 도시에서 만난 나의 첫 노란 촛불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네덜란드지부가 국제앰네스티 안에서 가장 활발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부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그 기억이 잠시 흐릿해질 때도 있었지만, 6년 간의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그 날의 궁금증이 종종 떠오르고는 했다. 널리 알려진 국제인권단체라는 점과 선명한 노란색 로고 정도를 막연하게 기억하던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앰네스티는 어느새 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자 에너지가 되었다.

2014년 편지쓰는 밤(레터나잇)을 시작으로, 2015년 정기총회, 새내기 회원모임, 22그룹 활동, 양심수 회원의 면회, 수요극장, 퀴어문화축제, 운영회원 모임 등 앰네스티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인권을 접했다. 오랜 기간 활동해오신 회원 분들에 비하면 내가 쓴 편지의 양과 내가 고민하는 인권의 무게가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작은 촛불이 모여 큰 움직임이 되리라는 앰네스티의 정신을 믿는다.

특히 가장 최근에 참여했던 캠페이너 양성과정 프로젝트 2기는 이런 나에게 회원으로서, 그리고 활동가로서, 앰네스티 안에서의 정체성과 목적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4월 23일 첫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지난 8월 29일 최종 보고회까지 4개월 간의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초반에 스무 명이 넘게 시작했던 본 프로젝트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관련질환)의 여파로 1박 2일 숙박 워크숍이 취소되고 예정되었던 교육 일정이 한 두 차례 미뤄지면서 최종적으로는 아홉 명만이 수료하게 되었다.

2015년 8월 29일, 캠페이너 양성과정 프로젝트 2기 최종 보고회 ⓒ Amnesty International Korea

2015년 8월 29일, 캠페이너 양성과정 프로젝트 2기 최종 보고회 ⓒ Amnesty International Korea

캠페이너 양성과정 프로젝트 2기 <난민팀> 최종 보고회 영상 ⓒ JooWon KIM

비록 인원은 많이 줄었지만 그만큼 열정이 넘치는 몇몇이 남아, 양성 과정 자체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캠페이너 양성과정의 두 가지 세부 주제였던 ‘표현의 자유’와 ‘난민’ 중, 나는 다섯 명의 팀원들과 함께 난민 인권에 관한 캠페인을 준비했다. 사실 이 글은, 각자의 일상과 업무 외 시간을 쪼개어 다같이 열심히 준비했던 캠페이너들과의 뿌듯함으로 경쾌한 후기글이 되었어야 할 글이다. 그러나 최종보고회 직후인 9월 2일, 터키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와 그의 가족들의 소식을 접하고는 무거운 마음에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글이 멈춰있던 시간 동안, 캠페이너 과정이 과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활동을 위한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본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몇몇 분들과 새로운 앰네스티 회원그룹을 꾸리기로 했다. 여러 차례의 온/오프라인 회의를 거쳐, 드디어 우리는 “봄”이라는 이름의 그룹으로 다시 만났다. 봄 그룹은, 흔히 인생의 봄날이라 불리는 청년기를 지나고 있는 앰네스티인(人)들이 모여, 따스하지만은 않은 현실 속에서 진정한 인권의 봄을 찾기 위해 “가치를 보고 사람을 본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봄의 영어단어인 ‘Spring’ 안에 ‘도약’이라는 뜻도 함께 담겨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제 막 씨앗을 뿌린 ‘봄 그룹’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움직이고, 그룹 또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권을 위해서 나중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동화처럼 꿈꾸듯 앰네스티를 처음 만나 지금은 어느새 나의 가장 가까운 현실이자, 길게 호흡하고 싶은 소망이 되었다. 인권의 봄은 아직 시리지만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어 아름답고 따뜻하다.

마지막으로 동화책과 포근한 담요 대신, 차가운 바닷물과 그보다 더 차가운 현실 속에 너무 일찍 하늘로 간 꼬마 난민 쿠르디와, 여전히 목숨을 걸고 인생을 항해하는 전 세계 권리보유자들을 위하여 나의 작은 촛불을 계속 밝히고 싶다.

다가오는 나의 두 번째 ‘레터나잇’을 기다리며,

2015년 10월, 김주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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