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헌법소원 청구

 [보도자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헌법소원 기자회견

♦ 일시 : 2015년 3월 5일(목) 오전 11시
♦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지하 1층)
♦ 주최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쟁없는세상, 천주교인권위원회, 청년좌파

♦ 순서

  • 사회 :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
  • 헌법소원 청구 취지 설명 : 김현성 변호사 (헌법소원 대리인)
  • 병역거부권 인정 촉구 발언

박유호 (최근 병역거부 선언)
최하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 코디네이터)
전박길수 (전쟁없는세상, 출소한 병역거부자)
최승현 (노동당 부대표)

  • 기자회견문 낭독 : 여옥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힌 박정훈씨가 지난달 23일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5일 우리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헌법소원의 취지를 설명하고 각 단체의 지지 입장을 밝혔습니다.

군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묵묵히 감옥행을 택했던 병역거부자들의 사연이 2001년 공론화되었습니다. 이후 하급심의 무죄 판결, 국가인권위의 대체복무제도 도입 권고와 국회의 법안 상정,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허용 방침과 무기한 연기 방침, 유엔의 반복된 권고가 잇따랐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과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대해 합헌이라는 결정을 반복했습니다. 대법원 또한 여러 차례 유죄 판결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서 도출되지 않고 이를 처벌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럼에도 총을 들기를 거부하고 감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만 명 이상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았습니다. 2014년 말 현재 재판이 확정된 수형자 612명과 미결수용자 43명이 감옥에 있다고 합니다. 2013년 6월 유엔 인권최고대표부가 배포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분석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수감자 723명 중 한국인이 669명으로 92.5%에 달합니다. 헌재의 잇따른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도 서울동부지법, 서울남부지법, 창원지법 마산지원 등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결정하여 다시 헌재의 판단을 묻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는 양심에 반하지 않는 행위를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합니다. 병역거부자는 무력 충돌의 상황에서도 타인의 생명을 박탈하지 않겠다는 절박하고도 구체적인 양심에 바탕을 두고 집총 훈련을 포함한 병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채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고 있는 현행 병역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위반됩니다. 한편, 민간 영역에 종사하는 병역특례 등 다른 분야에 이미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점을 고려할 때 평등권에 위배되기도 합니다.

병역법은 국제법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6조 제1항에도 어긋납니다. 유엔 자유권규약 제18조는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4년 12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유엔 자유권규약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살상무기의 사용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규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도출된다고 본다”며 “한국정부는 향후 유사한 자유권규약 위반을 회피할 의무가 있으며, 여기에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결정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침해를 문제 삼던 기존 결정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자의적 구금’에 해당하여 자유권규약 제9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 박씨는 병역법 위반, 최저임금 투쟁에 따른 집시법 위반 등으로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이 확정되어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박씨는 대법원 계류 중 병역법에 대한 위헌제청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이번 헌법소원을 청구한 것입니다.

이 소송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유현석공익소송기금(아래 ‘기금’)의 지원으로 진행됩니다. 기금은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서, 약자들의 벗으로서의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故유현석 변호사의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천주교인권위는 유족의 뜻을 받아 2009년 5월 故유현석 변호사의 5주기에 맞춰 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소속 변호사들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별첨2. 故유현석 변호사가 걸어온 길)

많은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끝

2015 3 5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쟁없는세상, 천주교인권위원회, 청년좌파

※별첨 1. 기자회견문

  2. 故유현석 변호사가 걸어온 길


 [기자회견문] 양심의 감옥행을 멈추자

 병역거부자 처벌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감옥에 수감 중인 박정훈씨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했다그동안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2004,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그 이후에도 동일 조항에 대한 일선 법원과 개인들이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헌법소원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국가안보라는 헌법적 이익과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충돌하는 경우 국가가 그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하며대체복무제 같은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양심의 자유행복추구권과잉금지원칙침해의 최소성 등에 반한다는 것은 판사들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는 7년 만에 동일 조항에 대해 또다시 합헌결정을 내리며그동안의 많은 사회적인 변화와 진전들을 후퇴시켰다특히 수없이 반복되어온 국제사회의 권고를 깡그리 무시한 것을 보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킨다는 헌법재판소가 국제인권규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 수준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 정부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던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최근 한국 정부의 병역거부자 처벌이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침해를 문제 삼던 기존 결정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을 처벌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국제무대에서는 유엔 사무총장 배출국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등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자국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 중 대다수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유엔의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지만법원은 여전히 재징집되지 않을 최소형량인 1 6월을 일괄적으로 선고하고 있고이러한 상황에서 병역거부자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감옥밖에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렇게 병역거부자 처벌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아도 국회나 정부법원 어느 누구도 대안 마련을 위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그 사이 총을 들 수 없다는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감옥에 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해방이후 2만여 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다녀왔고현재 약 6백여 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있다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했고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최근에는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난민이 되어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이번 병역법 헌법소원이 “헌법을 수호하고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헌법재판소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고민이 필요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할지 스스로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평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젊은이들의 감옥행을 멈출 수 있는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2015 3 5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전쟁없는세상천주교인권위원회청년좌파


故유현석 변호사가 걸어온 길

1유현석 변호사는 1927년 9월 19일 충남 서산군 운산면 거성리에서 출생했다. 1945년 경성대학 문과을류(법학과)에 들어갔으나 1946년에 하향, 서산법원 서기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1952년에 제1회 판사 및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했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무장교, 육군고등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고등법원판사, 서울지방법원부장판사 등을 지낸 후 1966년에 한국최초의 로펌인 ‘제일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변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70년대 남민전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했다.

1987년부터 1991년 2월까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직을 역임했으며, 1991년 서울지방변호사회 법률실무연구회 운영위원장에 선임됐고, 1999년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으로 취임했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원로회원으로, 언제나 든든한 배경이 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큰 힘을 실어줬다.

1950년 서산성당에서 유봉운 신부님에게 세례(세례명 사도요한)를 받은 이후,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을 했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는 한국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장,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직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창립해 후배를 키운 선각자이자 1992년 이후에도 고문으로 재직하면서 늘 천주교인권위원회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또한, 1992년 한겨레신문 자문위원장을 비롯해, 1997년 경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199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고문, 2002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등 여러 사회단체의 좌장으로 신실한 신앙인이자 용기 있는 법조인으로, 지혜로운 예언자의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았다.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지난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사건의 대통령 대리인단 대표로 법정에 선 것이 마지막 재판이 됐다.

유현석 변호사는 2004년 5월 25일 선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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