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의 남편, 소성욱입니다. 오늘의 기쁜 소식이 징검다리가 돼 성소수자도 평등하게 혼인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소성욱의 남편, 김용민입니다. 항상 남편이라고 하지만, 남편이라는 자격을 한국에선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대법원 판결문을 읽을 때, 동성 동반자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 11년 동안 함께한 동반자고, 앞으로도 함께할 배우자고, 동반자이며, 내 사랑입니다.
그런 관계를 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지난 18일,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오후. 대법원에 무지개가 떴다. 대한민국 대법원이 최초로 동성 배우자의 사회보장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날 동성 배우자의 건강보험공단 피부양자 자격과 관련한 대법원 최종심에서 대한민국 대법원은 동성 배우자의 사회보장 권리를 인정하고,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불인정한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은 평등원칙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이 국내 LGBTI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송을 지켜봐 온 앰네스티 캠페이너의 소회는 어떨까. 명희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를 만나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LGBTI 인권 관련 한국지부의 활동에 대해 물었다.

명희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명희수라고 합니다.
소송의 당사자인 소성욱, 김용민 부부는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거주하고 있는 커플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동성 커플이 동사무소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불수리’ 처리를 받게 됩니다. 두 사람도 법적으로 ‘부부’라고는 부를 수 없지만, 혼인의 의사를 갖고 실제로 그것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생활을 하고 있지요.
둘 중 김용민 씨는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이고, 소성욱 씨는 지역가입자입니다. 법적으로 등록된 부부의 경우에, 한 명이 직장가입자고 한 명이 지역가입자이면,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보험료 감면 등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법적 부부뿐만 아니라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이런 혜택을 주고 있어요. 아까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 사례를 설명할 때 말한 것처럼, ‘법적 부부는 아니지만 두 사람이 혼인의 의사를 갖고 실제로 그것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생활을 하고 있음’이 입증될 경우입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에서 요구하는 몇몇 서류가 있는데, 두 사람의 관계를 입증하는 제3자의 인우보증서*와 경우에 따라 주소지 등 두 사람의 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김용민 씨는 이 자료들을 제출했고, 2020년 공단을 통해 소성욱 씨를 본인의 직장가입 피부양자로 등록합니다.
*인우보증서: 가족이나 이웃 등 대상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특정 사실에 대하여 증명하기 위해 작성하는 서류. (국가보훈부)
두 사람은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혜택을 다른 동성 커플들도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소식을 기사화합니다. 그러자마자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등록을 취소해 버립니다. ‘담당 직원이 실수했다’면서, 심지어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있던 몇 달간 혜택을 받은 금액을 일시불로 납부하라는 요청까지 소성욱 씨에게 보냅니다. 이에 소성욱 씨가 행정소송을 걸면서 본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18일 오후 대법원 최종심 판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 부부가 활짝 웃으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원고인 소성욱 씨와 변호인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피부양자 자격을 주는 ‘이성 간 사실혼 관계’와 김용민 소성욱 커플처럼’ 동성 간 사실혼 관계’ 혹은 ‘혼인의 의사가 있으나 법적 혼인만 하지 못하고 유사한 생활을 하는 관계’를 다르게 볼 수 있는가를 계속해서 질문했어요. 1심 행정소송의 판결은 전형적인 내용입니다. ‘동성 간의 결합과 이성 간의 결합은 같게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죠. 이에 대해 소성욱 씨는 고등법원에 항소합니다. 그리고 2심 고등법원에서 소성욱 씨가 승소하게 됩니다.
이 판결에서는, 두 사람을 ‘사실혼 관계’라고 법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합니다. 민법상 혼인은 ‘남녀간의 결합’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논리에서요.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배우자’와 ‘혼인 의사를 가지고 동거하는 동성 커플’(판결에서는 ‘동성결합 상대방’이라고 칭합니다)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 고등법원 판결은 소성욱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두 집단을 자의적으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이라는 판시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이 고등법원 판결은 사회보장 영역에서 동성 파트너(배우자, 커플, 동성결합 상대방…)의 권리를 인정한 국내 첫 번째 판결입니다. 사회보장기관의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대우’를 지적한 첫 판결이기도 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원심인 고등법원 판결을 인용하여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이 성적 지향을 기반으로 한 차별일 뿐 아니라 행복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헌법상 평등원칙으로 동등하게 보호할 영역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해석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이 판결에서는 두 사람을 ‘동성 배우자’라 칭하며, 사회보장정책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해야 하는 법적 이유와 근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사회보장권리를 누리는 데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항소심 당시 고등법원 2차 변론에 한국지부 활동가들도 연대방청을 갔었는데요, 공단 측 변호사가 성소수자 차별적인 논지의 주장을 계속하는 와중에 원고 소성욱 씨는 공단 측 변호사와 판사를 대면하고 자기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야 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이 소송을 하기로 한 결정과 모든 과정이 당사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순간의 연속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당사자 커플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 무엇보다 다행스럽고 기쁩니다.
2021년 추운 겨울에 시작된 소송이 2024년 여름의 한가운데에 이르러, 드디어 마지막 대법원 판결까지 왔다. 이번 결과는 소송 당사자인 소성욱 씨 부부와 소송 대리인단을 비롯해 시민사회, 국회, 그리고 성소수자 및 앨라이 지지자들의 값진 노력과 응원의 결실이다.
국제앰네스티의 인권활동은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규약에 명시된 인권사항의 준수 여부’를 기준으로 이뤄집니다. 한국에는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제도 내에서 규정하고 법적으로 보호하는 부분이 부재하기 때문에, 제도와 법을 만드는 위주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무엇보다 국내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과 많이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미 커뮤니티와 인권단체가 다수 존재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들의 지형, 욕구, 활동 방향을 파악하고 한국지부가 협력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크게 두 가지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제도적, 법적 싸움’과 ‘대중화’의 측면입니다. 아무래도 앰네스티는 오랜 시간 다양한 주제로 인권운동을 해 온 단체다 보니, 좀 더 넓은 대중에게 이 의제를 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요. 또한 입법, 사법 등 제도를 만드는 기관에서의 신뢰도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따라서 퀴어문화축제 참여, <미워해도 소용없어> 등 콘텐츠 제작을 통한 캠페인처럼 LGBTI 인권 의제를 대중적으로 전하는 활동, 탄원, 입법로비, 법률의견서 제출 등 제도적이고 법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함께 가져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혼인평등, 동성혼 법제화 문제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편적으로는 ‘동성 파트너십 관계에서 사회보장 정책의 적용 여부’를 다뤘지만, 결국 혼인평등의 문제예요. 당사자 커플도 계속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번에는 건강보험, 다음에는 응급상황에서의 보호자 지위, 그다음에는 상속에 대한 권리, 이런 식으로 혼인이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하나하나 소송을 통해 부여받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혼인평등법 입법으로 동성 간에 결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결되는 시급한 문제이지요.
두 번째는, 작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네 번째로 합헌 결정이 난 ‘군형법 92조의 6’ 문제입니다. ‘한국에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고 하면 놀라는 분들도 있는데, 바로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는 군형법 92조의 6*이에요. 심지어 최근 위헌법률심판에서는 헌법재판관들이 ‘군인 동성 간의 성관계는 군 기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선고하여, 기존의 군형법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인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군형법 제 92 조의 6 ‘추행’ 조항은 군대 내 남성 간 성적 행위에 대해 최대 징역 2년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성추행’ 관련 처벌조항과 별개로, 남성 간의 성적 행위에 대해 합의 여부에 무관하게 처벌하는 조항이다. 즉 남성 간 이루어진 합의에 의한 성적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된다.
최근 인권단체들과 각 정부 부처 담당관들의 미팅에서 제가 해당 조항에 대해 국방부 담당자에게 질문하자 ‘영내에서, 근무 중에 이뤄진 성관계만 처벌하는 법률이기에 과도한 사생활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대답했는데요. 국제앰네스티에서 발간한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만 보더라도 이 조항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군내 문화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직 내에 어떤 인권 의식을 가진 관리자가 있는지,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관리자가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해서 처벌하기 위해 악용할 수도 있는 조항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한국지부에서는 지속적으로 해당 조항의 폐지를 요구하며 보고서 발간, 캠페인, 탄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입니다. 이 법은 장애, 병력, 출신국가 등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외에도 다양한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라는 조항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두고 제정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법은 기존에 처벌하던 것을 처벌하지 못하게 하거나 기존에 안 되던 것을 되게 하는 앞의 두 법처럼 당장의 실용적인 법은 아니지만,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선언이자 국가의 인권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의미가 있는, 다른 많은 인권 관련 법과 조항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이라는 조항이 문제가 되는 것은 더더욱 대한민국 정부와 입법자들의 LGBTI 인권 의식에 대한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고, 해당 조항이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지요.
현재 캠페인 중인 혼인평등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면, 전 세계 총 36개국에서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 혼인으로 인정합니다. 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하는 국가도 64국이나 되는데요, 이 국가 중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고,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인해 동성애 처벌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지배국가들은 해당 처벌법을 다 없애고 각종 국제인권규약과 소수자 보호를 위한 자국법을 만들었지만, 피지배국가들의 LGBTI 개인들은 아직도 성적 지향과 정체성으로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행히 남성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취급하던 나미비아에서는 올해 6월 고등법원이 해당 법률을 위헌으로 판단하는 결정이 있었는데요. 나미비아 정부 측에서는 해당 법률을 유지하려는 입장인 만큼 상고심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고등법원 판결에서 이미 위헌판단에 필요한 논지가 다 나와 있어서, 좋은 소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성혼이 법제화된 국가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올해 6월에는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는 첫 번째로 혼인평등법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좋은 소식이 있었지요. 2023년 네팔에서는 대법원 판결로 ‘별도 입법이 있기 전까지 동성 커플을 비롯한 성소수자 커플의 혼인신고를 수리할 것’을 정부에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비판받을 점이 있는 법률이긴 하지만 ‘성소수자 이해증진법’이 작년 통과되었고, 4곳의 지방법원에서 동성결혼 법제화를 위한 입법을 촉구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대만은 2023년 제한적으로 동성 부부의 입양을 법제화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아시아 지역의 변화는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도 어서 변화에 동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방콕 프라이드 페스티벌 참가자가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특별히 무엇에 동기부여나 힘을 얻어서 캠페인을 하기보다는, 이번 건처럼 ‘당연히 되어야 하는데 아직 안 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늘 답답한 마음으로 일합니다. 이 답답한 상황에 무엇을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를 고민하면서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이번 건보공단 v. 동성커플 소송 건이나, 앞서 언급드린 나미비아의 동성애 처벌법 위헌판결처럼 사법 영역에서 이뤄지는 인권상황의 개선은 국제인권규약, 법해석 관점 등 논리적으로 싸워볼 여지가 많은 캠페인입니다. 하지만 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줄 수 있는 혼인평등법 제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국민의 법감정’, ‘대중의 인식’이라는 모호한 영역이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캠페인입니다. 인권활동가와 LGBTI 당사자들의 싸움만으로는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 어려운 캠페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동성 간에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 정체성을 비롯한 정체성으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걸 큰 소리로 주장하는 것까지는 조금 부담돼’라고 생각하시는 많은 ‘소극적 지지자’분들의 참여가 어느 때보다 힘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하고, 관련 기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관련 탄원에 서명하는 등 참여할 수 있는 활동부터 참여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백민하(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