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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기획] 앰네스티 역대 언론상 수상작 ③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아 돌아본 한국의 인권 시계

제11회 수상작 <한겨레21 인권OTL>

 

예전에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답니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의 상태에 따라 탄광 속 공기 오염도를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척도라는 뜻으로 ‘탄광 속 카나리아’라는 말을 씁니다. ‘탄광 속 카나리아’는 한 사회의 최약자층, 어떤 문제의 가장 약한 고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제11회 수상작인 <한겨레21-인권OTL>은 한국 사회의 탄광 속 카나리아들을 조명했습니다. 시리즈의 큰 제목인 ‘OTL’은 좌절한 사람의 이모티콘으로 카나리아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가장 좌절한 사람들, 가장 약자들이란 측면에서 말입니다.

‘인권OTL’이 카나리아들을 감지하는 기준은 인권입니다. 이 보도가 세상에 나온 것은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인권OTL’ 시리즈의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60년 전 세계인권선언이 천명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여기 있다’고 고발한 것입니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지만, 이 기획은 사회적 문제 및 개인의 불행을 인권 부재에서 찾은 것입니다.

인권OTL이 시도한 취재 스펙트럼은 한국 인권 보도 역사상 가장 폭넓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처한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같은 주제로 현실을 탐사할 뿐 아니라, 정부 인권 정책의 변화를 반추하는가 하면, 국제 기준에 비추어 한국의 인권 수준을 가늠했습니다. 시리즈에 포함된 소수자 인권 문제나 국가 보안법과 집회·시위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와 관계된 문제들은 여타의 언론 보도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그러나, 한 기획 기사 내에서 이토록 많은 인권 사안이 포괄적으로 다뤄진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탐사 보도 끝에 궁극적으로는 인권을 사회 운영의 원리로서 세우는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진지한 인권 탐사보도로 평가 받을 만합니다. 이러한 획기적인 시도는 이듬해 같은 지면의 ‘노동OTL’ 시리즈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제11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자 ‘인권OTL’ 팀>

 

*<인권OTL> 속 소수자 인권 침해

 

“전 제 자신을 포기했어요.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달라지겠죠.”

슈허(가명)는 10살 때 몽골에서 한국에 왔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던 2002년부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슈허의 부모는 불법 체류 노동자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사정은 점점 나빠졌다. 엄마가 몽골로 돌아간 사이 아빠가 같은 공장 동료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지 몇 달 만의 일이었다. 슈허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뒤 엄마도 단속에 걸려 몽골로 강제 출국됐다. 이후 지금까지 혼자 살며 공장과 건축 현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있다.

– ‘일터로 내몰린 이주·탈북 청소년들’ 중 (2008.05.02)

<합법 체류를 요구하는 이주민 아동>

“한국에는 미리 그만둔다고 말 안 하고 그만두면 돈 안 줘도 된다는 법이 있어요?” 마치르가 물었다. 1년 전, 한 공장에서 3개월 정도 일한 뒤 마지막달 월급을 못 받았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서울에 와서 친구를 만나 놀다가 그냥 쭉 안 갔다. 그래도 마지막달 원급은 받고 싶어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은 “이럴 땐 한국 법으로는 돈을 안 줘도 된다”고 했다.

– ‘일터로 내몰린 이주·탈북 청소년들’ 중 (2008.05.02)

학생들의 일상 구석구석까지 감시와 통제가 작동하는 이 학교에선 급기야 금속탐지기까지 등장했다. 최근 일선 학교에선 교사와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곤 하는데, 1교시 수업 시작 전에 일괄적으로 걷어 저녁에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제출하지 않다 나중에 적발되면 압수당하기 일쑤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고 몸에 감추고 있을까봐 금속탐지기를 동원하기에 이른 것이다. ㄷ고 1학년 박성화(가명)군은 “얼마 전 우리 옆반에서는 휴대전화를 제출했는지 검사하려고 선생님이 금속탐지기를 들고 와 공항 검색대에서 몸을 훑듯이 검색을 한 적이 있다”– ‘시퍼런 가위와 금속탐지기, 무서운 학교’ 중 (2008.05.16)

 

2005년 청송보호감호소를 나온 전과 4범 이상필(가명)씨도 2년 전 살인사건 수사차 찾아온 경찰에게 구강 상피세포를 건네주고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씨는 살인 전과도 없었던 데다, 경찰이 직장까지 찾아와 위압적으로 구는 바람에 하마터면 전과 사실이 직장 사람들에게 알려질 뻔했다. 이씨는 “청송에서 함께 나온 사람 하나는 일하던 공장에 경찰이 쳐들어와 결국 잘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국가인권위의 2006년 조사에서도 출소자의 절반가량인 48.5%가 ‘전과로 인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경찰서 조사 요구를 받은 적이 1번 이상 있다’고 답했다.

– ‘교도소 밖, 갈 곳이 없다’ 중 (2008.07.04)

 

인권 침해의 구조적 요건을 돌아보다

인권OTL 보도의 특징은 단지 방대한 취재량이 아닙니다. 이렇게 방대한 사례들을 통해서 인권 침해를 야기하는 사회 구조적 요인들을 드러냈다는 것이 인권OTL 시리즈의 의의입니다.

보통의 인권 보도에서 인권 문제란 가해자에 의한 피해자 인권 침해입니다. 가해자는 대부분 악덕 업주, 그보다 훨씬 큰 대기업, 나아가 국가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가해자가 불분명한 상황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빈곤 문제입니다. 폐지 줍기를 하며 살아가는 노인들, 아직도 무수한 판자촌들, 정부 지원을 받아도 빈곤하게 되는 탈북민들. 빈곤이야말로 특정한 가해자가 없지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사안입니다. 구조적 문제인 것이죠. 이러한 구조적 요인들은 사회의 무관심에 의해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가해자 없이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행위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일일 것입니다.

 

빈곤층 말기암 환자들에게 삶의 반추는 사치일 뿐이다. (중략) 김씨가 하는 일은 하루 다섯 번 남편인 이씨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루 두 번 밥을 챙기는 일이다. 밥은 하루 두 끼,기저귀는 다섯 번만 간다. 10개들이 6천원인 기저귀 값만 한 달에 9만원쯤 된다. 노령연금 13만7천원, 기초생활급여 31만원, 장애인 아들에게 나오는 돈 15만원이 생활비의 전부인 이들에게 방세 30만원을 빼고 나면 그나마도 남는 돈이 없다.

– ‘인간답게 죽고 싶다’ 중

한국은 이주아동의 권리를 침해해 유엔의 권고를 받는 수모도 당했다. 2003년 1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그제야 미등록 이주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이 허용됐다. 하지만 이주아동이 중등교육을 받을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아동권리도 좀 글로벌 스탠더드로’ 중 (2008.05.02)

 

왜 지금 세계인권선언인가?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라고 선언한다. 제2조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및 그 밖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선언한다. 이 두개의 조문은 세계인권선언의 근본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 인권 OTL 조국의 선언 ‘항변하라, 나도 사람이라고’ 중 (2008.05.16)

 

무엇보다 인권OTL 시리즈의 공로는 우리 사회 카나리아들을 조명하여 세계인권선언이 천명한 인권의 보편성을 되새겼다는 점일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권리는 많습니다. 사람에 따라 소유한 권리도 많지요. 그런데 인권은 단지 인간이란 이유로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보편적이지 않은 인권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권OTL시리즈는 그러한 보편적 인권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끈기 있게 추적했습니다.

“마지막 양심수가 풀려나고, 마지막 고문실이 폐쇄되고, 유엔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권이 실재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우리의 일도 끝이 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한 앰네스티 설립자 피터 베넨슨의 말처럼, 인권 보도 또한 인권의 보편성이 실현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합니다. ‘인권OTL’이라는 30회 연재 기획은 탄광 속 카나리아를 의식하지 않는 순간 인권의 보편성은 실재하지 않으며, 그 위험에서 우리도 자유롭지 않음을 알렸습니다.

 

*기사 원본링크

인권OTL 시리즈 (2008.05.02~200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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