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연회장을 찾아주신 많은 분들이 한국의 지뢰·확산탄 실태와 이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먼저 임종진 사진작가가 제작한 영상 상영으로 강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영상은 비둘기 학교 학생들의 1년 간의 학교생활을 담은 영상으로, 그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진솔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캄보디아 지뢰 피해자, 또 그들의 삶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분들도, 많은 설명 없이 쉽게 그들의 실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캄보디아는 상처와 피해의 땅입니다. 가난과 장애, 그리고 피부색 때문에 일반적으로 갖는 동정과 연민 말고, 그들 스스로 그들의 존엄성을 인식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제공하는 것이 비둘기 학교가 하는 주된 일입니다.
모두가 빠르게 오토바이, 자동차 등을 타고 이동하는 바쁜 도로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마른 아이가 절룩거리며 천천히 화면 안으로 들어옵니다. 교정 안으로 걸어오기까지 한참이 걸리지만, 카메라는 고정된 채, 별다른 편집 없이 이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현실에서 그들은 우리와 다른 신체적 조건과 속도에서 살아갑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이 냉정한 사실 그 자체를 고스란히 담은 영상을 통해, 매우 사실적인 ‘기록’일 수 있는 영상이, 상당히 호소력 있는 하나의 ‘매개체’로써 먼 땅 캄보디아의 이야기를, 그 삶의 생생함을 전달해주었습니다.
이 영상에서, 모두가 평등하게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는 모습,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목발이나 휠체어가 누군가의 다리가 될 수 있고, 그것도 부족하다면 내 친구가 제2, 제3의 손발이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참 따뜻해 집니다.
데니스 콜런 수녀 강연
“We really want this ban.”
수녀님은 난민캠프 지원으로 캄보디아와 인연을 맺어, 이후 쭉 이곳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상당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지원해주고, 편지를 쓰는 일을 1994년에 함께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 내 가족과 친구들의 팔다리를 잘라 내버린 폭탄을 제거해 줄 것, 그리고 국가와 마을을 재건축 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편지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이후, 캄보디아지뢰금지운동에 의사, 의족 제작 기술자와 같은 다양한 전문가들,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지금은 약 90개국으로부터 많은 참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Make a noise about this!”
국가는 이후의 추가발생적 전시상황을 위해 지뢰 제거 작업을 미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덕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이 매장 지뢰들로 인해 더 많은 잠재적 부상자가 생겨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과연 어느 것이 진정 국민의 안보를 위하는 길일지 의문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면, 국민 스스로가 그들의 목소리를 내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국제앰네스티 역시 이들과 같은 입장에 서서 그들을 지지합니다.
한국 활동가와 해외 활동가 간의 대담
송 코살은 대인지뢰 금지 활동가이며 동시에 젠더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모으는 캄보디아식 인사로 한국 청중들을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레,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이어나갔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에서 다섯 살 때 다리를 잃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그 날, 제가 더 이상 다른 아이들과 똑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매일 밤, 잃어버린 다리가 돌아오는 꿈을 꾸었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그것은 그저 꿈일 뿐이었습니다.”
“I had no hope.”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 송 코살. 그나마 다른 아이들보다 운이 좋았던 자신은 한 단체로부터 의족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린 피부로 견뎌내기에 의족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목발에 의지한 채 생활합니다. 캄보디아의 많은 지뢰 생존 피해자들은 의족, 의수와 같은 보조기구조차 지원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 당국은 이들에 대한 피해 보상과 위로에 하루빨리 힘써야 합니다.
“I want them to have a dream.”
희망이 없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꿈을 가지길 원하는 마음으로 활동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는 송 코살. 1995년, 누구보다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향하고 나선 비엔나 UN회의 연설에서, 그녀는 정작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어렸던 자신을 탓하며 좌절해있는 그녀에게, 다시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나머지 생존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더욱 강해지는 자신을 보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생겼다고 합니다. 생존자들과 그녀는, 평화가 꽃처럼 피어나길 원하는 마음으로 캄보디아 정부 당국에 환경을 개선해 줄 것을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그 후, 활동가라는 공식 명칭을 얻게 된 그녀는, 캄보디아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해 그들만의 이야기, 그리고 생존자들의 이름을 전합니다. 방한 후 가장 먼저 그녀가 한 일은, 국내 대표적 확산탄 제조 업체 중 하나인 한화에 간 것입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담당자를 만나 얘기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I was crying in my mind.”
그녀가 마음속으로 울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어디에서 누구에게, 또 얼마나 많은 양의 비인도적 무기가 생산·제조되고 있기에 담당자가 이리도 바쁜 것일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끝내 얘기를 끝마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으로, 국내의 대인지뢰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 녹색연합 정인철 간사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현재 DMZ 주변을 중심으로,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채 남겨져 있는 미확인 지뢰들은 비공식적 집계로 약 4,000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특히, 서울 도심 우면산 근처에 14발이나 되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수한 안보 상황”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전시는 물론, 향후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 동안 국민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를 제거하지 않는 것, 그것의 제작·수출을 금지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국민의 생존권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는 행위입니다. 더 나아가, 국내 지뢰피해생존자들에 대한 보상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 회사가 무기제조에 투자하는 것, 아세요?”
국내에서 확산탄에 대한 인지도는 상당히 낮은 반면에, 해외에서 한국의 확산탄은 유명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고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가장 대표적인 확산탄 제조 기업인 한화와 풍산을 비롯한 무기제조 회사들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확산탄을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곧, 확산탄 제작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바탕으로, 무기제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목숨, 또는 팔, 다리를 담보로 이익을 얻는 이 행위를 국내 기업들이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강연회 다음날, 송 코살과 데니스 콜런 수녀는 외교통상부 앞에서 앰네스티, 녹색연합, 무기제로, 참여연대 등의 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한국의 지뢰피해자 고준진씨도 함께 했습니다. 고준진씨는 지뢰 피해로 두 다리를 잃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피해보상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송 코살은 전날 한화 공장에 방문했던 소회에 대해 “저 공장 안에서 만들어지는 끔찍한 무기들이, 어디로 가서 얼마나 오랫동안 땅 속에 숨어있다가 누구를 죽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슬프다”고 밝히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팔과 다리와, 생명을 잃어야 하는가” 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한 캄보디아에서 바로 올해 일어난, 지뢰피해로 눈과 팔을 잃은 소년과 즉사한 친구의 이야기를 설명하며 함께 세상을 치유하는데 한국도 동참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지뢰와 확산탄에 관련된 이 불편한 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지뢰와 확산탄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땅에 남아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수 있는 끔찍한 무기입니다. 전세계 160개국 이상이 조인한 확산탄금지협약에 한국정부도 함께하기를 호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