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림, 그리고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
네팔 이주노동자 캠페인, 이제 네팔 지부를 만나러 갑니다
지난 해 이맘때쯤 네팔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고서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렜습니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 캠페인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네팔을 고향에 둔 이들의 얼굴이 스쳐갔습니다.
이주노동자 캠페인을 하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는 건 ‘왜 이들은 머나먼 한국땅으로 향했나’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을 밟기 전까지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누군가는 학교 선생님을 하다 다른 삶을 찾아 이주노동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삼촌을 따라, 사촌 형을 따라 왔다고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누군가는 고향에서 정치적인 운동을 하다가 잡혀갈까 무서워 부모님이 억지로 고향을 떠나 보내, 이주노동자가 되었다고도 전했습니다. 단순히 ‘높은 실업률’이라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이들이 고향을 떠난 이유를 설명한다면, 그건 이주노동을 선택한 만인만색(萬人萬色)의 삶을 무채색으로 덧칠해 버리는 꼴이 될 겁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을 선택하는 많은 이유들 중 하나는 분명 이들이 고향에서 가족을 안정적으로 부양하고 미래를 기약할 만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일 겁니다.
“저는 배운 게 없어서 (네팔에서는) 농사 외에 일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근데 농사로 먹고 살기 힘들죠.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제가 그냥 위험을 무릅쓰고 외국에 나가 일을 구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더라고요.”
– DK, 43세 남성, 네팔 치트완 지역
작년 12월 발표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 ‘거짓약속: 네팔이주노동자의 착취와 강제노동’이 출발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46퍼센트나 되는 높은 실업률, 해외 이주노동은 이들에게 희망이 됩니다. 그러나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출국하기 전에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취업알선업체와 브로커입니다. 한국 돈으로 160만원 정도 되는 취업 알선 수수료를 마련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이 좋으면 친척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엄청난 수수료를 마련하기 위해 빚을 집니다. 이자에 대한 법적인 상한선이 14퍼센트로 정해져 있지만, 연평균 35퍼센트에서 60퍼센트까지 이자를 요구하는 고리대금업자고리부터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취업알선수수료를 내기 위해 4,900 달러의 빚을 졌어요. 취업알선업체는 제가 한 달에 720달러를 벌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공항에서 막상 계약서를 받아보니 한 달에 215 달러밖에 못 받는 거에요. 취업알선업체가 저를 속였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엄청난 빚을 갚을 길이 없기 때문이지요.”
-SN, 29세 여성, 네팔 카트만두 출신
[네팔 당국의 도움을 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Amnesty International]
빚도 문제지만 이주노동자들을 발목을 잡는 건 허위계약입니다. 중개인 역할을 하는 취업알선업체와 브로커는 이주한 국가에서 일할 업종이나 임금, 노동시간, 노동조건을 속이고 허위계약을 체결하기 일쑤입니다. 허위계약은 어쩔 수 없는 강제노동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취업알선 수수료를 내기 위해 사채를 썼고, 빚을 갚기 위해서는 싫더라도 일을 해야 하는 덫에 걸리기 때문이지요.
‘네팔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을 막아주세요’ 캠페인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번 캠페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이주노동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주로는 네팔과 가까운 두바이와 리비아 카타르 같은 중동지역을 향하는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을 향하건 본국에서 발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침해를 막지 못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한국과 같은 유입국에서의 인권침해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고, 이주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이 네팔에서 중요한 만큼 이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네팔 정부와 정치인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었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우리의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이주노동자의 목소리로!
이번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건 바로 우리 캠페인 속에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아닌 권리를 가진 이들의 목소리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네팔 이주노동자 캠페인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캠페인 자료집과 서한, 우편 엽서도 네팔어로 만들었습니다.
[네팔어로 된 캠페인 자료집과 서한]
그래서 만난 사람이 바로 민주노총 활동가인 우다야 라이. ‘네팔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맛있는 인권’을 통해서 만나보신 분들도 있겠네요. 고향이 네팔인 우다야 라이씨는 두 팔을 걷고 네팔 공동체에게 이번 캠페인을 설명하고 서한과 엽서를 부지런히 모아 국제앰네스티에 전달해 주셨습니다.
[우다야 라이]
국내 이주노동자 관련 인권 단체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와 이주인권연대 대표님들도 네팔 정당 지도자들에게 송출국에서의 인권침해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주셨습니다. 네팔노총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민주노총에서도 위원장 명의의 서한을 보내주셨습니다.
[단체서한]
무엇보다도 소중한 건 4월 29일 이주노동자 노동절에 탄원 서명을 받기 위해 함께 해 주신 회원 여러분과 엽서 서명에 동참해주신 여러분들입니다.
이제 이 1,100여장의 엽서, 19개 네팔 공동체 대표의 서한, 7개 이주인권단체 대표 명의의 서한과 민주노총 위원장 명의의 서한은 비행기를 타고 네팔로 향합니다. 이 서한과 엽서는 국제앰네스티 네팔 지부로 전달될 예정입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또 한국에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네팔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와 착취를 막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명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