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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거래조약 회의, 이상과 현실 사이

* 뉴욕에서 열리는 UN 무기거래조약 회의(7월 2일~27일)에 국제앰네스티 로비단으로 참가중인 박승호 캠페이너가 뉴욕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몇몇 가지 진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재래식무기에 관해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핵무기에 관한 이슈는 늘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사람들을 생명을 죽이고 있는 재래식무기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2012. 7. 3.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유엔 무기거래조약 회의 개회를 선언하면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지적은 정확했다. 1945년, 두 기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미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이래로 국제사회는 핵무기나 그외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해왔다. 단 한번의 사용으로 수십 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후유증을 남긴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는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각인되어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고 있는 재래식무기는 오늘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가운데 국경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무기거래 문제는 사실 인권단체보다는 평화단체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온 주제였다. 하지만 무기의 사용과 인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 단편적인 기록만 들춰보아도 이같은 관계는 명확히 드러난다. 1991 ~ 2002년 기준 무력분쟁의 영향 하에 있던 10개국을 대상으로 앰네스티가 기록했던 인권침해 사건들 중 60%는 직접적으로 소형무기·경무기의 사용과 관련이 있었다.

앰네스티는 무책임한 무기거래가 인권 보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판단 하에 2003년부터 무기거래조약의 체결을 위한 국제적인 캠페인에 착수했다. 오랜기간의 캠페인 끝내 2012년 7월 25일 현재 국제사회는 사상 최초로 재래식무기의 국제거래에 관한 세계 공통의 규범을 설립하기 위해 뉴욕 유엔 본부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다. 2006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무기거래조약의 향하여”라는 제목의 결의가 채택된지 6년만에 국제사회가 조약 체결을 위한 최종 협상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유엔 본부가 소재한 뉴욕 현지시간으로 24일(화) 오전, 조약의 초안이 회람되면서 조약 체결 협상은 이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앰네스티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인권 규정 (무기가 전쟁범죄나 중대한 인권침해에 사용될 실질적 위험이 있는 경우 당사국은 해당 무기 이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규정)은 현재 문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조약의 이행과 통제대상을 규정하는 조항에는 상당한 허점이 존재한다. 조약의 통제대상에 탄약과 치안용 무기들이 대거 빠져있고 무기의 국제이전의 유형도 ‘국제 거래’만으로 한정되어 있다. 참관인 자격으로 회의 참석 중인 시민사회단체들은 현재 각국 정부 대표단을 접촉하며 이같은 허점들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 각국이 이같은 의견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지난 3주 동안 나는 시민사회의 입장이 이번 조약 협상에 반영될 수 있도록 앰네스티 로비단의 일원으로 수많은 정부 대표단을 만나 로비활동을 진행했다. 여러 주제에 대해서 앰네스트의 입장을 바탕으로 로비활동을 벌이며 여러 정부측 대표단에게 심심지 않게 들었던 말은 “그건 지극히 이상적인, NGO의 생각”이라는 말이었다.

앰네스티 로비단, 유엔 본부 입구

사실 2003년 앰네스티를 비롯한 세계 수많은 시민사회 단체들이 무기거래조약을 만들자고 각국에 요구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정부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그런 조약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인 ‘NGO’의 생각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국가들을 설득해왔고 결국 2006년 61차 유엔 총회에서 과반이 넘는 153개국의 찬성표를 확보해 조약 체결 논의의 시작을 결정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9년이 지난 지금은 조약의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다.

 200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요구는 한결 같았다. 전쟁범죄,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사용될 실질적 위험이 있는 경우, 어떠한 국가도 무기 이전을 허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무기 이전에 적용되는 세계 공통의 기준으로 삼아, 모든 무기와 무기 이전의 유형을 통제하는 국제조약을 만들고 각국이 이에 따른 법적 의무를 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요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요구였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요구를 협상장에 앉아있는 정부 대표단에게 전달할 때면, “현실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라”는 충고를 곧잘 듣게된다. 행정적인 부담, 안보, 기업의 수익 보호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국가들의 현실적인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가 정말 직면해야 하는 ‘진짜 현실’은 따로 있다. 1분에 1명씩, 매일같이 수천명이 무책임하게 거래되는 무기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으며,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다치고 고향에서 쫓겨나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렇다. 일부 분쟁 지역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적의 전의를 꺽기 위한 목적으로 여성들이 조직적인 강간하는 등의 젠더 관련 폭력(Gender-based Violence)도 또 다른 진짜 현실이다. 굳이 분쟁상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2011년 아랍의 봄을 거치며 광범위한 종류의 치안용 무기가 (아랍의 민중들과 ‘연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국가들이 공급한) 평화적인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하는데 사용되고 이로 인해 수천명이 죽어야 했던 것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마주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현실적인(상당한 종류의 무기와 이전 행위를 통제대상에서 제외하고, 엄격한 기준의 적용을 완화시킨) 조약을 만들자는 이들의 주장에 도저히 동조할 수 없다.

우리의 주장이 이상적이라 비판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우리가 원하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조약이 만들어진다면 국가들은 지금보다 더 많은 행정적 부담을 져야 할 것이다. 자국의 영토를 들고나는 무기의 이동을 감시하고 거래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인력을 충원해야 할 것이다. 조약에 따른 의무로 연례적으로 무기거래 내역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업무도 가중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 우리의 주장을 실제로 부담을 져야하는 이행주체인 국가들을 고려하지 않는 유토피아적 주장으로 치부하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조약의 체결은 분명 당사국들에게 새로운 의무와 이에 따른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담이라 주장하는 그 비용은 사실 지금까지 매년 55만명 이상이 자신의 핏값으로 대신 치러왔던 것이다. 이제는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어져왔던 무책임한 무기거래를 뿌리뽑기 위해 각국이 책임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7월 25일 현재 무기거래조약 회의는 마지막 이틀의 일정만을 남겨놓고 있다. 과연 세계는 강력한 무기거래에 합의할 수 있을까? 이번 주 금요일, 우리는 과연 강력한 조약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을까? 부정적인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보이지만,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각국 협상 대표단이 자국의 이해관계와 손익을 따지며 ‘현실적 계산’을 할 때, 우리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진짜 현실’을 정부 대표단에 상기시켜주며 이들의 결단을 촉구할 것이다.

유엔 헌장은 유엔의 존재 목적을 평화의 유지와 인권의 실현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2012년 7월 27일, 유엔 회원국들이 이 숭고한 목적 달성에 핵심적 법적 장치가 될 강력한 무기거래조약 체결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본다.

 

– 박승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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