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블로그

강제퇴거에 맞서 싸우는 보파의 이야기 그리고 인터뷰

우리는 왜 용감해져야 할까? 나는 그 용감함이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직해져야 한다고 배웠다. 그 정직함은 정의와 같은 몸을 이룬다. 정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만 존재하는 정글의 동물과 우리는 구별되지 못한다.

내가 스무 살 무렵에 첫 비행기를 타고 세계지도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캄보디아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매년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 집단의 힘을 이용해서 정의로운 소수를 공격하는 똑같은 그림을 본다. 나는 캄보디아의 비극이 비단 이들에게만 국한된 일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다. 지금 우리가 용감해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피해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지키고, 모두 다함께 상처없이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럼으로 지금은 용감해져야 할 때이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캄보디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권 문제를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휴먼로그에서 연재를 시작한다. 앰네스티의 회원들이 함께 행동한다면 그들의 목소리가 허무한 메아리가 되지 않으리라 굳게 믿는다.

[글과 사진 : 이주영]

끝나지 않은 싸움 – 평범한 시민에서 인권 활동가가 된 보파의 삶

강제퇴거에 맞서 싸우는 욤 보파 ©Jenny Holligan

집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나 학교를 집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집이 줄 수 있는 그것만의 온전한 편안함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곳 캄보디아 프놈펜에서도 집은 우리와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그들에게도 집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안식처이고, 그 추억을 간직해야 할 보물창고이다. 나아가 투쟁해서 지켜내야 할 인권이기도 하다. 2011년 9월, 캄보디아 정부는 벙깍(Boeung Kak)호수를 메우기 위해 포크레인을 투입하여 기존 주민들의 주거지 철거를 시작한다. 4,252가구 가운데 85% 가량이 그동안 살아오던 터전을 잃고 충분한 논의 없이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들은 소액의 푼돈을 손에 쥐고 보금자리로 삼아오던 벙깍 호수를 떠나야 했거나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되어야 했다. 그 현장에 평범한 시민에서, 주거권 쟁취를 목놓아 부르는 주거권 활동가가 된 욤 보파(Yorm Bopha)가 있다. 부당하고 불의한 사태를 좌시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보파는 9살 난 아들을 둔 평범한 엄마이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던 소시민이었다.

2011년 9월 16일, 강제 철거가 시작된다. 벙깍 지역은 총 11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대다수의 구역이 불시에 철거되었고, 구역1은 특히 심야에 굴착기를 이용해서 철거를 감행하여 사상자를 낳았다. 벙깍 주민들은 퇴거와 철거로 몸살을 앓으면서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고 여기고 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대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훈센 정부는 벙깍 주민들의 이러한 활동을 저지하고 압력을 가한다. 2012년 5월 24일, 15명의  벙깍 지역 주민들은 강제 퇴거된 거주지에 불법적으로 점거, 임시 주택을 지었다는 이유로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보파는 무고한 15인의 석방을 위한 시위와 집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인 구명활동에 나선 것이다. 공권력의 부당함과 강제 퇴거의 불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미디어를 통해 벙깍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앞장섰다. 주도적인 활동으로 15인을 석방하는데 기여한 보파는 절도범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구속된다. 그러나 당시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보파는 다른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경찰이 보파를 구속하기 전, 이미 정부 당국은 그녀에게 수차례 협박과 압력, 위협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혐의를 증명할 수 있는 단서가 없음에도 지난 12월 27일, 프놈펜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받았다. 보파는 현재 프레이 사 교도소(Prey Sar prison)에 수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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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로 메워진 벙깍 호수 ⓒ이주영

Interview : 다음 세대의 고통 없는 삶을 위해

보파를 만난 곳은 그가 지난 9월 4일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지금까지 6개월간 수감되어 있는 프레이 사 교도소(약칭 CC2로 불림)이다. 교도소에서 만난 그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하루 두 차례, 오전 8-10시, 오후 2-4시에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그 자유시간 내에 면회가 가능했다. 나의 소개를 받은 보파는 귀한 손님을 만난 듯 반갑게 맞이했다.

다음은 2013년 2월 20일에 보파를 직접 만나 인터뷰 한 내용이다.

보파가 수감되어 있는 프레이 사 교도소 입구 ⓒ이주영


수감 생활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까지 62명이 한 방에서 생활하던 때는 공간이 너무나 협소해 제대로 잠을 자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지금은 8명이 수감된 방으로 옮겨와서 한결 나아졌어요. 처음에는 죽 수준의 교도소 음식으로 늘 허기가 져서 고생을 했습니다. 가족이 추가로 돈을 내면서 차츰 나아진 음식을 먹고 있어요. 그리고 만약 감옥 내의 가혹 행위가 있으면 교도소 관계자를 만나 이를 신고할 수 있어서 신변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지난 12월에 법원 판결로 3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때 법정에서 내려진 판결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믿기 어려운 판결입니다. 저는 저의 집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당시 수감되었던 벙깍 주민15인의 석방을 위해서 목소리를 냈을 뿐인데, 법이 저희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정의의 편에 서야 할 법이 오히려 저희를 위협하는 무기로 느껴졌습니다.

강제퇴거를 반대하는 활동가로 나서기 전에 당신은 평범한 주부였고, 장사를 하는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벙깍 주민을 대표하는 인권운동가로 역할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족은 나름대로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이 고통 속에서 저는 무언가 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 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가하는 압력과 폭력은 결코 좋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이런 위협을 두려워한다면, 다음 세대는 더 많은 공포를 느끼고 더 많은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저는 불의에 맞서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파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 ⓒ이주영

수감 생활 중에 노래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노래이고 노래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지금 제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저의 정신은 벙깍 주민과 함께 있습니다. 정부와 회사측이 저와 벙깍 주민에게 가하는 탄압은 끝없는 항의를 불러올 뿐입니다. 또한 강제퇴거가 벙깍 호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에 저의 이런 뜻을 전달하고자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익숙한 멜로디에 제가 가사를 붙여 지었습니다. 4곡의 제목은 ‘Life like a bird in a cage, When will my freedom show, Life without justice, BKL residents are the real owner of the land’ 입니다.

수감 생활이 끝난 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캄보디아에서 저와 같이 강제퇴거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할 것입니다. 크고 작은 마을이 지금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시민들의 안정이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만을 쫒고 있습니다. 그들(나의 형제와 자매인 캄보디아 사람들)의 인권이 짓밟히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일에 앞장 설 것입니다.

보파의 석방을 위한 집회에 나선 남편 ⓒ이주영

평범한 주부로 살아오던 당신의 삶은 지금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지금까지의 인권운동가로의 활동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사태와 현재의 삶이 믿기 어렵기도 합니다. 가끔 아침에 눈을 뜨면, 제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헛갈릴 때도 있습니다. 제 삶은 정말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벙깍 퇴거 문제로 싸우고 있는 저의 몸과 다름없는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면 그들과 같이 싸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체적으로는 갇혀 있지만 제 정신과 영혼은 자유롭습니다.

보파의 9살 아들 ⓒ이주영


 

프레이 사 교도소 면회장소에서는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었다. 그래서 보파를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인터뷰 말미에 보파는 캄보디아 국내외의 인권단체의 도움이 지금까지 큰 버팀목이었다고 말하면서 앰네스티 회원들과 캄보디아 퇴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인권에 눈 뜨고,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고 여러 차례 말하면서 계속적인 관심이 용기를 잃지 않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보파를 수감함으로써 더 이상의 시위를 막고 강제 퇴거와 관련된 집회를 잠재우려 하고 있다. 또한 주거권을 사수하려는 일반 다수의 퇴거민들에게, 또한 앞으로 정부가 진행할 개발 정책에 반대하는 잠재된 퇴거민들에게 누구라도 정부의 개발 정책에 반기를 들면, 이와 같이 ‘법적인 절차’를 통해 감금된다는 시그널을 보낸다. 자신과 그 가족의 보금자리를 지키고자 바른 목소리를 낸 보파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의 손아귀에서 이렇게 신음하고 있다. 이제는 강제 퇴거로 일상을 잃어버린 보파와 벙깍 주민이 제 자리를 찾도록 손을 잡아 주어야 할 때이다.

LICADHO Canada 의 협조로 수감된 보파를 인터뷰 할 수 있었다.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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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Mai, 49. 주부): 더 자세한 이야기

“너무나 놀랐어요. 신발을 신지도 못했고, 짧은 소매셔츠와 스커트만 입고서 피 흘리고 있는 나를 그냥 차로 끌고 갔죠…. 아프고, 출혈도 심하고 고통스러운데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힙(Heap, 26. 주부): 더 자세한 이야기

“남편이 잡혀간 뒤로 나는 ‘둥지 잃은 새’ 같은 느낌이었어요. 남편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그럼 미칠 것 같거든요. 내일 뭘 해서 돈벌지, 어디서 먹을걸 구할 지 그것만 생각해요.”

홍(Hong, 39.선주민): 더 자세한 이야기

“이 숲은 주민들의 쉼터 같은 곳이에요. 풍요로움이 가득한 내집 같죠. (마을주민들이) 모두 숲에 생계를 의존하는데, 프레이 랑이 사라지면 우리도 살길이 없어요”

소팔(Sophal, 32. 네일아티스트): 더 자세한 이야기

“강제퇴거가 있던 날 새벽, 철거반원들에게 짐을 챙길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건진거라곤 재봉틀뿐 이에요. 지금은 직장도 없어 돈도 못 벌어요.”

바니(Vanny, 32.자영업): 더 자세한 이야기

“2008년에 이미 개발이 시작되었음에도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았어요. 회사 사무소가 들어서고 나서야 알았죠. 우리 같은 진짜 피해자, 무고한 사람들을 위해 계속 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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