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캄보디아 벙깍호수 지역에서 정부의 개발 프로젝트에 따른 강제퇴거에 맞서 활동하고 있는 캄보디아 활동가 보브 소피와 섹 소쿤롯이 한국에 도착했다. 8일 저녁 한국 주민운동센터(KOCO)에서는 캄보디아와 한국의 주민운동 교류회가 있었다. 캄보디아와 한국의 지리적 거리만큼 두 나라의 문화와 생활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 강제퇴거라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었다. 이 날의 만남을 정리했다.
KOCO에 대한 짧은 소개로 시작하겠습니다. KOCO 는 ‘해외주민운동 한국위원회’로 작년 7월에 만들어졌습니다. 아시아를 무대로 인도, 태국, 필리핀, 한국 등에서 가난한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지 주민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하여 지역개발과 활동을 통해 바람직한 주민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고, 한국의 주민활동 그룹을 포함해 해외 단체들이 서로 돕고 주민운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엔, 강제퇴거로 많은 주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캄보디아 벙칵 호수의 주민들을 대표해 보브 소피씨와 캐나다 인권단체 리카도에서 섹 소쿤롯씨가 자리해 주셨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강제퇴거와 관련해 활동하고 있는 부산 대연-우암마을 공동체에서 손이헌씨가, 90년대 철거싸움이 굉장히 활발히 일어나던 서울 성동구의 성동주민회에서 오신 유영우 지부장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주민 지도자 3인이 들려주는 캄보디아와 한국의 주민운동 현장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캄보디아 강제퇴거 활동가 ‘보브 소피’
안녕하세요 저는 프놈펜 벙깍호수에서 온 ‘보브 소피‘입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선 인권과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벙칵 지역은 캄포디아 프놈펜 중심부로 지금은 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년 전부터 이 지역은 재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약 15만 명 정도가 벙깍 호수지역에서 퇴거되었고 3,000 세대 정도가 강제철거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강제퇴거를 당한 주민들에게 보상된 비용은 다시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강제철거는 철거민을 죄인 취급했고, 저는 아직도 강제퇴거의 피해자인 제가 왜 죄인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저를 비롯해 강제퇴거를 당한 주민들은 단순히 나와 내 자식들이 살아가고 있는 집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도 이렇게 진행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강제퇴거에 항의하다 한 달이 조금 넘게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도 캄보디아 강제퇴거 여성활동가 한 명이 240일이 넘도록 수감되어 있습니다.
주거권 문제는 캄보디아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법원의 정당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불공평한 사법시스템 문제가 얽혀져 더욱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강제퇴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발생하지 않아야합니다.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벙깍 호수지역의 강제퇴거 문제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당한 이유없이 시위대들을 강제로 연행하기가 일쑤였고, 약자에 입장에 있는 벙깍 호수 주민들의 목소리는 정부의 권력 앞에 힘없이 묻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다음은 발표자와 참석자 간에 이루어진 질의 응답이다.
#1. 현재 캄보디아 강제퇴거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세요.
캄보디아 정부는 주민들을 위함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강제퇴거를 진행할 뿐입니다.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강제퇴거에 항의하다 수감되면서 그들의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지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주민들이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중에 정부의 공식입장은 무엇인지?
정부는 주민들을 위한 준비한 아무런 대책이 없고, 단지 이 지역을 매입한 회사의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부에서 강제퇴거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대책이라곤 12.44헥타르 정도의 땅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땅도 정부가 주민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어준 것이 아니라 ‘세계은행’으로부터 기금을 제공받지 못할까 염려하여 마지못해 제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 정부차원에서 지원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주민들을 상대로 한 억압과 폭력만 지속될 뿐입니다. 우리는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우리에게 보상하기로 약속한 그 땅을 원하는 것입니다.
**2007년 캄보디아 정부는 벙깍 호수지역을 개발이라는 명목아래 기업- 여당 상원의원이 소유하고 있는 -에 매각하였다. 개발이 진행되면서 약 8,000가구가 강제퇴거 대상에 올랐고 그 중 절반인 4,000가구가 이미 퇴거 당했다. 남아 있는 가구들은 강제퇴거가 시작된 이후로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캄보디아에 기금을 제공하고 있는 ‘세계은행’은 ‘벙깍 지역’에서 일어나는 강제퇴거와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 개입하며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시정조치를 요구했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기금을 주지 않겠다는 강한 입장을 내세웠다. 결국 캄보디아 정부는 강제퇴거 주민들에게 12.44헥타르의 땅을 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 조건으로 정부와 세계은행 간에 계약이 성사 되었다. 하지만 계약성사는 바로 강제퇴거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 않았다. 정부가 약속한 12.44헥타르에 해당하는 지역이 정확히 어디를 나타내는지 주민들에게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게 바로 서류상의 약속이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아직도 ‘벙깍 호수 지역’의 강제퇴거 주민들을 위한 정부의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3. 강제퇴거에 맞선 투쟁과정에서 캄보디아 내의 시민단체 혹은 국제개발 단체들의 지원이나 연대활동이 있었는지, 또한 이 사건을 둘러싼 국내 여론은 어떠한지?
리카도, SDT, EC, HOUSE RIGHTS TASK FORCE 와 같은 여러 NGO들이 모여 함께 연대하여 활동해주고 있습니다. ‘크메르 루즈’시대 폴 포트 정권을 겪으며 캄보디아 인들은 자기의 문제가 아닌 경우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문과 같은 여론에서 벙깍지역의 강제퇴거 문제를 다루는 것은 아주 극 소수의 언론에 불과하고, 때론 언론감시를 받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도 국제 단체나 한국의 여러 단체들이 보여주는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4. 캄보디아에 벙깍호수와 같이 강제퇴거에 놓여있는 다른 철거지역이 있는지, 있다면 연대해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물론 다른 곳도 강제퇴거를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어림잡아 15만 명 정도가 벙깍 지역의 강제퇴거와 비슷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피해자들 간의 연대가 많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협력하여 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근 프놈펜에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었는데 그의 약속에 의하면, 벙깍호수 지역 강제퇴거 피해주민들에 대한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단체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면 정부를 이길 수 있다고 봅니다.
#5. 지난 일 년 동안 이어진 주거권 투쟁과정에서 캄보디아의 주민들이 감옥에 많이 수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한 명의 수감자는 어찌하고 있는지?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우 60명이 한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질이 낮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위생상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점은 ‘가족들이 그립다’는 부분입니다. 지금 캄보디아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욤 보파’도 무척 힘들 것입니다. 그녀가 속히 석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6. 한국의 시민단체나 정부에 어떤 기대를 갖고 오셨는지?
한국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부에 압력을 넣기 위한 탄원을 진행 중인데 이 부분을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오전 – 5월8일 –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인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7. 정부가 제시한 12.44헥타르의 땅으로 이주 한다면 이 곳에서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
지역 커뮤니티 강화를 위한 기반 시설 마련은 물론, 강제퇴거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는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90년대 강제퇴거운동을 경험했던 성동주민회의 유영우씨와, 현재 강제퇴거에 맞서 주민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대연-우암 공동체의 손이헌씨가 직접 겪은 주민운동 현장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한국 주민활동가 오른쪽 맨 끝에부터 차례대로 유영우, 손이헌씨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성동주민회: 유영우
안녕하세요 성동주민회의 유영우라고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지역주민들이 함께했던 경험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전히 재개발은 개발이익을 중심으로 가난한 자를 위하기 보다는 가진 자들을 배 불리는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는 캄보디아만 아니라 한국에도 진행중인 상황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제도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캄보디아도 정치 부분의 개선과 발전이 이뤄진다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금호 행당 하왕 지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 빈민지역이었습니다. 대다수 주민은 소득수준이 낮은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였으며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독립은 꿈 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개발이 진행되어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987년도부터 이 지역의 활동가들이 도시빈민운동을 주도했으며 재개발에 대비해 주민교육활동, 주민 조직활동 등의 다양한 준비활동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성숙한 주민조직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재개발 사업은 이 3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고 주민조직 또한 자주적으로 협력을 바탕으로 해 조직되었습니다. 철거투쟁을 하면서 주거권을 비롯한 권리운동을 하며 가지게 되었던 가장 큰 고민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철거 투쟁 이후 가지게 될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낮에는 투쟁 밤에는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결론은 주민들끼리 협동해 우리 스스로, 즉 자주적으로 삶을 변화시키자는 “주민협동공동체활동을 조직하자”였습니다. 기획단은 경제협동체, 생산협동체, 소비자생활협동체, 사회복지협동체 이렇게 4가지의 분과를 만들었습니다. 철거투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다음엔 정부가 마련해 준 임시거주시설로 이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공동체 생활이 시작하게 됩니다. 1997년도에 ‘논골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정부인가를 받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말까지 조합원 약 4,000명에 자산 250억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동과 청소년 분과는 공부방 등을 설립하여 지역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2008년도부터 기획단을 중심으로 주민협동공동체운동에 집중하던 흐름을 변경해 새로운 주민운동 활동방향을 고민하게 되었고, 주민운동을 성동구 전체로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지역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주민들의 자치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캄보디아는 물론 한국에도 해당하는 사항인데, 어려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어떤 것이 있고, 가난의 본질적인 문제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는 것 그리고 재개발이 개발이익을 극대화 하여 가진 자를 배불리 하는 사업이며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권리운동, 주민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고려해야 할 점은 투쟁과정에서 주민들의 단결력과 공동체 의식을 투쟁 이후까지 확대하여 고민해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금호 행당 하왕 지역의 주민공동체 활동은 우리 스스로 문제해결을 위해 자주적으로 나섰다는 부분입니다. 조직력과 공동체를 가난한 사람들이 주민운동을 통해 계승하고 시민운동으로 확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과정은 진행 중입니다. 이 지역의 철거투쟁은 우리사회의 가난한 자들이 담고 있던 본질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스스로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몸부림 그리고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도전과 실험은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한 작은 소망의 실현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연-우암 마을공동체의 활동과 미래: 손이헌
내일, 모레 아니면 1년 후에 철거가 언제 이루어 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대연 우암의 도시빈민들이 자주공동체를 만들어 23년의 투쟁과정에서 습득하게 된 것은 “사람은 혼자 갈 수 없다. 함께 가야 우리의 희망과 꿈이 분명히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대연-우암 공동체 주민은 무허가 주택 소유자들입니다. 하지만 강제퇴거가 일어나기 전에 당시 주택을 지을 때는 개인소유지가 아닌 국유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후에 부산외대와 정부 간 주거지역을 학교부지로 매입한다는 계약을 맺었고, 그 곳에서 거주하던 73세대 주민들은 한 순간에 무허가 주택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1990년 10월 26일 부산외대와 부산 남구청 직원들과 경찰들이 들이닥쳐 아무런 예고 없이 13세대의 주택을 강제 철거했고 이를 계기로 남은 53세대의 주민들이 함께 모여 대항하고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조직의 제대로 된 구성은 1996년도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주민들은 부산외대를 점거하며 농성을 하였고, 학교 측으로부터 철거당한 13세대의 주택을 다시 지어도 좋다는 구두 된 협약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이 후로 계약 과정에서 문서화 된 서류가 없다는 부산외대 측의 주장으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학교 증축 예정부지를 둘러싸고 경비를 세우는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2000년 2월 부산외대로부터 땅의 소유권 문제를 두고 다시 명도소송이 제기 되었고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이라는 단체를 만나게 된 이후로 대연.우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활동과 주민조직 개편 등을 거쳐 보다 효율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무허가 부지에 주택을 세웠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무허가라는 이유로 이 지역에는 전기와 수도시설이 공급되지 않았고, “토지가 무허가라고 주민들도 무허가는 아니다”라고 대응하며 전기와 수도시설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연-우암 마을 공동체가 처한 상황은 ‘철거예고장’ 없이도 강제적인 철거를 당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민들을 상대로 “왜 우리집이 철거되면 안 되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학교와 정부가 불법을 저지르면서 우리를 핍박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은 물론 주변 대학교의 학생연대와의 소통을 지속하고 있고, 부산 청년회 봉사 팀과 함께 마을 벽화 그리기 등의 활동은 물론 아시안 브릿지에서 받고 있는 지원금으로 마을 길을 포장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살기 좋은마을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개발과 관련된 강제퇴거는 비단 캄보디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09년 1월 대한민국의 용산에서도 강제퇴거와 관련해 경찰과 현지 주민들 간 충돌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이 날 전 MBC 앵커 신경민의 클로징 멘트는 많은 이들이 잊고 있었던 점을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용산의 아침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사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빠뜨린채로 행동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서로 다른 지역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강제퇴거’라는 공통의 아픔이 서려있었다. 그렇기에 서로의 환경과 문화 그리고 언어가 달라도 어색함 보다는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응원할 수 있었다. 또한 강제 퇴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빈부의 격차에서 나오는 불평등과 같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각자가 속한 공동체가 겪어온 어려움들을 어떻게 헤쳐나갔고, 공동체 의식을 어떻게 마련했으며, 무엇을 고민하는지에 대해 지속적인 공유가 이루어진다면, 전 세계에서 강제퇴거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참여‘라는 부분이다. 얼마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집을 잃고 허탈한 표정에 잠긴 코알라의 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동물도 집을 잃는다는 슬픔을 느끼는데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을까? 슬픔에 빠진 코알라의 사진을 보고 친구가 남겨두었던 글이 있다.
불쌍해 하고 말지만, 모른 척 외면해버려도 아직 여기 내 삶에는 영향이 없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미래의 나의 모습이고 현재의 이웃의 모습인 것을.. 신념 때문이든 마음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서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거창하지 않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는 것.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세상은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큰 도움이나 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만큼의 힘과 관심이 보태진다면 이렇게 고통받는 이들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늘부터 참여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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