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인 5월 8일 저녁, 성공회대학교에 대학생들과 캄보디아에서 온 두 활동가가 만났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강제퇴거를 알리기 위해 열린 이날 설명회에서, 캄보디아 프놈펜 벙깍(Beoung kak) 마을 대표 보브 소피(Bov Sophea)와 섹 소쿤롯(Sek Sokunroth)은 가장 먼저 참석해 준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처음 학생들 앞에 선 것은 강제퇴거로 주거지에서 쫓겨난 섹 소쿤롯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마을과 현재의 상황에 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벙깍’이라는 이름은 프놈펜에 위치한 한 호수의 이름이다. 130헥타르의 호수로 인공호수가 아닌 자연호수이기 때문에 홍수방지 기능을 하면서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짓는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었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2007년 정부에서 일반 기업에 개발 목적으로 토지를 임대해 주면서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1년 캄보디아 정부는 재개발을 이유로 호수를 메우면서 주민들의 주거지를 강제로 철거하고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켰다. 한 때 호수가 존재하던 곳에는 이제 모래만이 남아있고, 4000가구가 살던 지역에는 겨우 600가구만이 남아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섹 소쿤롯과 그의 가족은 모두 벙깍의 주민이었지만 강제퇴거로 적은 보상금을 받고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NGO 단체인 LICADHO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일말의 배려나 협상, 대화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분별한 강제퇴거가 주민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받아 이야기를 시작한 소피는 강제퇴거가 일어나기 전과 후 달라진 삶의 모습을 풀어 놓았다. 그녀는 강제퇴거가 일어나기 이전, 그녀는 평범한 한 가정의 어머니였고 정부‧경찰 같은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들은 막연히 힘과 권력을 가진 무서운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이 시작된 이후 그녀는 바로 그 정부, 경찰들과 직접 맞서 싸우게 되었다.
그녀가 참가한 시위는 강제 퇴거에 반대하고,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12.44헥타르의 명확한 구획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집을 지키고 주거권과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참가한 시위였지만 그녀 역시 무고한 혐의로 투옥되고 죄인이 되어야 했다. 2012년 소피와 함께 시위에 참여한 13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이 투옥되었다. 감옥에 투옥되고 다시 시위에 참가하는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소피는 생계수단인 직업을 잃었고, 일상적인 생활은 자취를 감췄으며,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소피와 15명의 주민들은 삼십 여일만에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없는 동안 15명의 석방을 위해 활동했던 욤 보파(Yorm Bopha)가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고 3년 금고형을 받았다. 그녀는 현재 240일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다. 5월 8일이 한국의 어버이 날임을 이야기하던 소피는 오늘도 감옥에 있는 욤 보파와 어머니 없이 살아가고 있는 보파의 아이들을 언급하며 눈시울을 붉혓다.
다음은 발표자와 참석자 사이에 이루어진 질의응답이다.
#1. 캄보디아에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이 존재할텐데,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방법은 없는지?
소쿤롯 : 캄보디아는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지만(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으로 총리에게 대부분의 권한이 주어지는 체제임)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현재 많은 정치인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입니다. 재개발로 이득을 얻는 이들이 선거를 통해 정치인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경제적, 정치적 권력간의 유착관계가 너무나 강합니다. 선거 자체가 불공정하고, 국회에서 여당의 권한이 강하기 때문에 철거민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피 : 저희도 정치인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여러 번 그들을 찾아가 호소해 보았지만 정부나 정치인들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를 내쫓았습니다.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들을 내몰고 있으니 부모를 잃은 고아 같은 느낌입니다.
#2. 어째서 시위를 통해 잡혀간 이들 중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지?
소피 : 실제로 여자들이 주축이 되어 시위를 진행하고 있고, 참가하는 비율도 남자보다 여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시위에 남자들이 많이 참가할 경우 경찰들의 대처나 진압 방식이 훨씬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이런 식으로 시위나 진압이 격해지면 육체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소송에 걸리고 감옥에 투옥될 확률도 더 높아지기 때문에 여성들이 주를 이루어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 한국과 한국의 기업들도 실제로 캄보디아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쿤롯 : 우선 개발이나 투자 그 자체를 이유로 국가와 그 나라의 국민들을 모두 비난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의 발언이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님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개발 그 자체는 꼭 필요한 일이고 외국에서 캄보디아에 투자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자를 할 때에 부패한 현지 기업과 손을 잡는다면, 혹은 현지의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비리나 부정과 더불어 인권침해가 발생할 것입니다. 저희가 말하고 싶은 것은 투자를 결정하고 현지 기업 파트너를 선정할 때 더 세심해 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4.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 전반의 동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사회적 지지나 흐름의 변화를 얻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소쿤롯 : 저희는 해외, 국내의 여러 NGO들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제 사례를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저는 LICADHO라고 하는 NGO단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일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은 이런 강제퇴거처럼 옳지 않은 일을 당했을 때 그것이 잘못되었고 자신에게 저항하고 대책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일을 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여성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교육을 시키는 일이 드물고 이 때문에 스스로가 가진 권리에 대해 알려주는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또한 마을의 공동체들과 힘을 모아 재개발에 대응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소피와 소쿤롯은 마지막으로 강연에 참가한 이들에게 아주 간단한 부탁을 남겼다. 자신들을 돕기 원한다면, 다른 어떤 거창한 행동도 할 필요 없으니 그저 캄보디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집은 인권이다. 집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잠 잘 곳이 사라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정한 주거지가 존재하지 않고 공식적인 주소가 없어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학교에 다니며 정규 교육을 받기도 힘들고,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어려워진다. 위생으로 인한 건강 문제나 주거지 불안으로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등 치안 문제도 함께 발생하게 된다. 집이 담보하는 것은 종합적인 삶의 최저수준이기 때문에 우리는 집을 인권이라 말하고,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지지한다.
한국도 밀어붙이기식 개발과 이에 대한 저항이 맞물려 이미 용산에서 끔찍한 참사를 겪었다. 결국 본질은 대화와 조율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들의 요구가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무조건적인 반개발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주거민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재개발이 계속되는 한, 이에 저항하는 시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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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지내며 강제퇴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고 있는 이주영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