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낡은 옷, 피곤에 쩌들고 배고픔에 초점을 잃어 버린 멍한 눈 그리고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파리떼? 하지만 현실 속의 난민들은 이와 같은 모습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난민은 제 3세계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해 비교적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에서도 여전히 난민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매년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 로 지정되어 있다. 난민보호는 몇 나라의 책임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도 어떠한 일들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다른 나라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이를 해결하고 또한 지속적으로 난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려 난민의 날이 탄생하였다.
지난 겨울 한 달 동안 유엔 난민기구(UNHCR)에서 F2F(Face to Face) 캠페이너로 활동한 적이 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을 한 달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 볼 수 있었던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 거리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난민들이 처한 긴급한 상황을 알리고 왜 이들을 도와야 하는지 동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우리가 하던 일이었다. ‘난민을 보호’하고 이들이 필요한 집과 음식 그 밖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하는 구호 활동’이 라는 취지도 그 동안 내가 바래왔던 것이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던 몸서리치게 추웠던 날씨만 제외하고 말이다. 핫팩을 온몸에 두르고도 부족해서 양쪽 주머니까지 핫팩을 넣어 두었음에도 내가 기억하는 건 몹시 추웠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입이 얼어 발음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계속 입을 녹여야 할 정도의 추위였으니 말이다. 여기에 목, 기침, 두통으로 옮겨다니며 나를 괴롭혔던 감기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코맹맹이 소리로 캠페인을 하는 날이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이 때가 가장 행복하게 일했던 시간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나보다 몇 십배는 더 열악한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난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가끔 힘이 들 때마다 캠페인 홍보를 위해 설치해 둔 판넬에 나와있던 귀여운 난민 소녀와 마음 속으로 이야기 하곤 했다. ‘그래도 너 때문에 힘이 난다, 열심히 살아야 해! 이렇게 너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

왼) 6.25 당시 우리나라 난민의 모습, 오) 종교박해의 이유로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버마 로힝야 난민들. 세월은 흘렀어도 난민의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그 숫자는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AFP
거리에서 만나는 시민들은 캠페인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생각보다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마치 캠페이너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움을 주지 못해 죄송해요”라며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는 분들 그리고 “내가 난민이다”라며 캠페이너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시민 분들에게 ‘난민’이 무엇인지 되물어볼 때마다 “아니,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우리에겐 ‘난민’이란 단어가 익숙하지 않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이것이 1951년에 맺어진 난민협약에 따른 난민의 정의이다. 하지만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최근 들어 성적 지향성 또는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캐나다로 난민신청을 하신 분이 있었는데 바로 위와 같은 이유였다.
대한민국 법무부에서 나온 2012년도 12월 자료를 기준으로 한국정부로부터 난민으로 받아들여진 숫자는 지금까지 대략 320명에 달한다. 1994년부터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해 지금까지 한국정부를 상대로 한 난민지위 신청자만 5,000명이 넘는다. 신청 절차가 복잡하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난민지위를 얻기까지 보통 십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 세월 동안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한 기본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단순히 생명을 위협하는 박해로부터 간신히 몸만 피해온 상황과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을 거쳐 난민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모든 어려움이 끝나지 않는다. 주류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차별과 어려움처럼 또 다른 종류의 박해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탈북자들 중에는 한국 사회로 부터 ‘탈북자’라는 이유로 받게되는 차별에 따른 피해 때문에 다시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이 존재한다고 나와있다.
사실 정부 입장으론 난민을 수용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 난민을 받아 들이는 것에 반발하는 국내 여론과 부딪혀 정부의 입지는 물론이고 난민들의 처우 또한 공중에 붕 떠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난민은 여러모로 다루기 힘든 어려운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가끔 거리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 사람을 도와야 하는 건가요?” 사실 이 질문을 되짚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저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 대한민국도 전쟁으로 고통 받던 때가 있었다. 6.25 전쟁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서도 사람이 이렇게도 끔찍한 일들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가족을 잃고 초점 없는 눈으로 길을 헤매는 사람들과 부모를 잃고 주저 앉아 울고 있는 아이들 사진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몇 십 년 전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사람이 대체 어느 정도까지 비참해 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전쟁.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는 소식에 서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모여 귀한 생명을 바쳤다. 전쟁이 진행되었던 때부터 끝난 후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식량, 주거지, 의료지원을 비롯한 해외 원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 수 있었을까? 서로 돕고 사는 원리, 우리는 이미 과거에 많은 나라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세상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 있기에 돕고, 목적 없이도 돕는 것을 떠나 도움이 필요한 이의 외침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장 근본적인 해결법은 난민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종식시키는 것에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일들은 이미 역사를 통해 충분히 반복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테러 빈번한 자연재해와 같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은 지금 이 글을 읽어나가는 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 당하며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야상곡으로 유명한 ‘프레드릭 쇼팽’, 레 미제라블을 만들어 낸 소설가 ‘빅토르 위고’,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前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이 모든 사람들은 한 때 난민이었다. 아무도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을까? 난민을 돕는 행위는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단지 난민이라는 이유로 꿈을 가질 자격조차 박탈당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집, 일터와 같이 이미 많은 것들을 잃은 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이다.
유엔난민기구에서 함께 일하던 캠페이너의 글을 보았다. 동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글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들을 왜 도와야 하나요?”라는 한 시민의 질문에 “시민 분께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그 동안 이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마음의 불편함을 덜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돕는다 자기만족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선행을 보이기 위해,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불쌍한 마음에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시작했던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우리의 행동 그 자체로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거나 다시 일어설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사실,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물론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한 달에 15,000원을 후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루에 500원씩 한 달을 모아보면 15,000원이 된다. 이 정도 금액으로 영화는 2편 아니면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다. 우리에겐 없으면 불편하지만 이 돈으로 수 십 명의 난민들이 하루를 살아가고 도움의 손길이 더 모인다면 일주일 그리고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굳이 재정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재주가 좋다면 난민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이나 교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혹은 갓 태어나는 신생아들을 위해 뜨개질로 모자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 있는 난민들을 위한 손길도 많이 필요하다. ‘난민인권센터(Nancen)’나 ‘피난처’와 같은 난민과 관련된 비정부기구(NGO)들은 프랑스어, 아랍어, 중국어와 같은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분야의 번역이나 통역 자원봉사자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내가 가진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매년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난민과 관련된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들이 모여 ‘난민주간’ 행사를 열었다.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다. 이렇게 조금씩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어느덧 추웠던 겨울이 지나 여름이 시작되었다. 2년 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시작한 시리아 내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내전이 시리아 전역으로 확대 됨에 따라 사상자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보내주는 구호 물품들의 숫자는 부족한데 반해 난민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지도상으로 멀다고 하여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돕고자 하는 대상이 꼭 난민이 아니어도 좋다.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를 보며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선의 도움을 주는 것처럼 값진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선행을 하려는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이게 바로 ‘함께 사는 세상’이라 부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