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인권입문과정은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님의 여는 강의로 시작하였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변화하는 인권’이라는 주제로 인권과 관련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다음은 그 중 인권 개념 재검토와 경제•사회적 권리의 재발견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인권’을 접하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인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대부분의 모범적이고 표준적인 답안은 인권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권의 존재론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설명 방식인데, 그 자체로 엄청난 힘과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기존 인권 개념의 설명 방식과 그 한계>
그런데 철학적으로 이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정말 이러한 설명 방식이 맞는가’, ‘실제로 사람들이 이런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적 설명 방식을 정말 믿는가’, ‘이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하는 의문들이 최근에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인권을 찬성하고, 지지하고, 옹호하면서도 인권의 개념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고전적으로만 접근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인권선언은 자연법적인 인권의 정당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자연법이란, 국가나 사람들이 만든 실존법과는 반대되는, 태어날 때부터 부여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자연법이라는 철학체계는 그리스로마 때는 비 그리스도적인 형이상학 철학이었다. 중세 때부터 기독교 적인 자연사상으로 발전하여, 자연=신이라는 증명 방식이 생겨났다. 이런 기독교적 자연법 사상이 20세기까지 이어지면서,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될 때 신이라는 용어만 쓰지 않았을 뿐, 천부인권 적인 측면으로 인권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독교 자연법적 맥락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 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 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는 세계인권선언 제1조도 인권을 천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천부인권이라는 것이 바로 ‘하늘이 준 인간의 권리’라는 뜻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자연법 사상이 일상에서 쉽게 쓰이는 것을 두고 ‘세속화 된 자연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세계인권선언에 들어 있는 자연법적 사상 자체가 세속화 되어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적인 자연법적 생각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비서구권 세계관을 전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천부인권설이 우리에게는 굉장히 익숙하고, 확실한 논리이지만 사실은 서구적인 기독교 사상이 녹아 있음을 위에서 알아 보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세계인권선언이나 인권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천부인권을 비판하고, 21세기에 맞는 인권관人權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다.
<새로운 인권관의 제시>
새 시대에, 새로운 인권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응한 몇 가지 주장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권에 대해 토론을거쳐 합의하여 인권을 정립하자는 ‘신의적 인권론’이다. 출처나 토대론적인 것을 차치하고, 인간이 직접 인권을 정하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또, 저항적인 담론에서 나온 ‘사회 운동형 인권’이 있는데, 자연권이라는 것 자체가 운동 속에서 불필요한 것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않는 입장이다. 인권을 언제까지나 정의, 평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어떤 상징어 또는 프레임이라고 보는 입장으로, 인권이라는 단어가 정의/민주주의를 불러내는 하나의 기표가 되었다고 본다. 이 주장은 ‘어떤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는가’하는 철학적 질문 자체 보다는, 직관적으로 인권을 판단한다. ‘사회 운동형 인권’은 이론적으로 표현하기는 힘든 부분들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위를 보았을 때 그 행위가 ‘인권적이다 또는 아니다’라는 것을 정서적/직관적/감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면, 2003년 당시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킬 때 4가지 이유를 들었고 그 중 2가지가 민주주의와 인권과 관련된 이유였다. 이 때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하는 것’에 논리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정서적으로 이것을 아니라고 받아들였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정서적인 판단을 했다는 이유로, 또는 인권을 논리적/개념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저항형/사회 운동형 인권은 직관적으로 정의/불의를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인권은 정의를 향해 가는 하나의 공동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인권은 이렇듯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인권이 새 시대에 새롭게 출발하고 있음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천부인권/자연권이 아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인권을 개념화 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있다. 현실적으로 맞아 들어가는 지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개념화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단점도 있다. 천부인권에 기대어 인권을 절대적인 것으로 내세울 때 갖는 권위가 약화되고, 인권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논리적으로 시비를 가리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인권을 재구성했을 때, 실체적으로 다가가기 쉬운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는 장점을 가지지만 범접하기 어렵고 성스럽던 이미지와 반대로 재정의되면 그 품위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생긴다.
<인권이라는 단어>
한편, 인권 개념의 재검토를 하는 지금, ‘인권’이라는 말 자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인간권리의 준말임을 우리 대부분은 알고 있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human rights를 19세기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다. 처음에는 rights가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었다. 여러 사전에서도 한 단어로 통일되지 못하고 권리 외에도 ‘염직(廉直)’ 등 다양하게 번역되었고, 1885년에 번역된 ‘권리(權利)’라는 단어를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단어로 번역이 되었던 것은 인권이 그 당시에도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인권을 평소에 많이 접하고 비교적 쉬운 개념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rights는 서양인에게도 어려운 개념이다. ‘Right’은 1. 도덕적으로 옳다라는 뜻 2. 내가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두 개념이 들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2번의 의미로 치중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에게 ‘권리’라고 했을 때, 어떤 도덕적 장중함은 사라지고 법적인 느낌만 남아 있는 것은 단어 번역의 오류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권을 이야기 할 때에는 도덕적인 정당성을 전달할 필요도 있다. 단순히 법적 제도가 있기 때문에 권리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사실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두 번째 의미에서의 권리 보다 첫 번째 의미에서의 권리가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인권에서 말하는 권리는 첫 번째 개념이 우선한다.
2. 경제•사회적 권리의 재발견
최근 1, 2, 3세대 권리 구분론은 인권분야의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2세대 인권으로 분류되는 경제•사회적 권리는 세계인권선언 때부터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심각하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비교적 최근부터다.
보통 현대인권의 출발점을 세계인권선언으로 본다. 실제적으로 세계인권선언이 제창될 당시 1, 2세대 인권이 함께 언급되어 있음에도, 역사적으로는 2세대 인권이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47년 초~48년 말까지 약 2년 동안 세계인권선언 선포를 위한 준비 과정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인권선언제정위원회 내에 미국과 소련 쪽이 매번 의견 충돌이 있었고, 이 때문에 세계인권선언이 무산될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되자 마자 평화로워질 것 같던 세계는 베를린 봉쇄, 중국 내전 등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동서냉전의 최고점을 찍었던 50년 한국전쟁까지 발발하며 혹독한 냉전의 시대를 맞았다.

냉전을 풍자하는 만화 ⓒ CLASSROOM ACTIVITIES LESSON PLAN POLITICAL CARTOON PRIMARY SOURCE DOCUMENTS TEACHER RESOURCES ON MAY 2, 2010
냉전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인권은 발전하지 못했다. 1세대 인권은 자유주의적 전통에서, 2세대 인권은 민주주의적 전통에서 나온 것인데, 세계인권선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함의하고자 하며 인도주의까지도 담고자 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리영희 선생님의 말이 있듯, 인권도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속성 모두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 때문에 한 쪽 날개를 떼어 내고 인권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날개만, 소련에서는 사회주의 날개만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
반쪽 짜리 인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66년 국제인권규약 A, B규약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준되었다. 미국은 지금까지도 경제적•사회적 권리 규약인 A규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냉전 시대의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권을 이야기할 때 불가분성이라는 것은 상식처럼 되어 있으나, 이처럼 상식을 둘로 쪼개는 폭거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
경제•사회적 권리의 재발견은 1990년 동구권, 즉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후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민•정치적 권리는 이야기하기 쉬울뿐더러 법적으로도 해결하기 쉬웠다. 그러나 경제, 사회적 권리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경제•사회적 권리는 인권에서 이야기하는 법적 판단성(justiciability)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는데, 경제•사회적 권리가 법정에서 다루어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학에서는 경제•사회적•복지적 권리를 법적으로 다루는 것이 덜 발달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인권의 대전환』(샌드라 프레드먼, 조효제 옮김)에 경제•사회적 권리를 어떻게 법적으로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을 확실히 제시하고, 몇 가지 개념의 재발견을 통해 법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밝히고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